"형님이 가신 길, 나도 가리라"
  • 김 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4.1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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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2002년 노무현처럼 '영남 일부+호남' 지지에 소수 정예로 승부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의 고향은 경북 경주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 김해다. 노대통령은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 후보였고, 반도의 서부 벨트와 영남 일부를 얻어 당선되었다. 한나라당이 경북 출신인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을 대선 후보로 뽑는다면 범여권, 특히 노대통령의 선거 구도는 정해져 있다. 바로 ‘영남 포위 구도’ 또는 ‘경북 포위 구도’다. 이 지역을 대선 구도에서 왕따시킨다는 전략이다. 이회창 후보가 영남 출신이 아닌데도 반영남 기류를 묶어 50만 표 차로 당선된 노대통령이다. 그는 누구보다 ‘반 영남’의 위력을 잘 안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을 상대로 유장관 같은 영남 출신을 내세우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한나라당은 철옹성인 대구·경북과 경남 일부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운 영남 후보 뒤에는 영남 일부와 충청·호남·제주를 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있다. 수도권은 언제나 중립적이었다. 이미 한나라당을 포위하는 ‘서부 연합’이 꿈틀대고 있다. 게다가 경남 출신인 노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영향력으로 경남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지금 지지율은 무의미, 막판에 오르면 된다”


노대통령에게 영남 출신 비밀 병기로는 유시민 장관과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가 있다. 그러나 김 전 지사는 한나라당 출신이다. 노대통령이 취임 초 국무총리로 내정했으나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해야 했다. 노대통령에게도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지사는 거의 벌거벗고 시베리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변절과 배신의 정치의 끝을 손 전 지사에게서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김 전 지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장관은 일관된 ‘노의 남자’이다. 그래서 더욱 유장관을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유장관 지지율은 미약하다. 1% 안팎이고, 때로는 아예 여론조사 항목에 오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2002년 초,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를 역추적하면 유장관의 지지율은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2002년 대선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대선 결과와는 큰 편차를 보였다. 2002년 1월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30%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당에서는 이인제 고문이 거의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되어 있던 시점이다. 한국일보가 ‘차기 대통령감으로 적합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31.7%, 민주당 이인제 고문이 16.8%로 2위,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8.3%)-민주당 노무현 고문(8.2%)-고건 서울시장(4.6%)-무소속 정몽준 의원(4.4%)이었다. 노무현 고문에게는 돈이나 조직도 없었다. 권노갑·박지원 씨 같은 ‘보이지 않는 손’도 없었다.
노대통령은 올 연두회견에서 “2002년 대선 이맘때 지지율 5%였던 내가 후보가 됐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 구도는 바뀔 수 있다. 이제는 막판에 바로 올라가도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름 없는 지지자들, 상대적으로 덜 행복하고, 덜 가졌고, 덜 성공한, 그러나 수적으로 훨씬 많은 유권자들의 힘으로 당선되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마치 유장관의 현재 지지도와 진로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높은 지지율에 안주하는 선두 주자의 불안정성과 추격하는 후발 주자의 여론 폭발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경우처럼.

 
선거 전문가들은 선거는 ‘구도’와 ‘인물’ ‘캠페인’ 세 가지의 종합 예술이라고 분석한다. 그중 인물(후보)도 캠페인(홍보)도 중요하지만, 선거 구도가 절대적이라는 설명이다. 유권자들은 제일 먼저 선거 구도를 고려하고, 다음으로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비교한다. 이에 비해 선거 캠페인은 액세서리쯤에 해당된다. 즉, 선거 구도가 후보자 당락의 60% 정도를 좌우한다는 것이 정론이다.
선거 구도는 지역 대립 구도와 이념적 특성 등을 말한다. 우리나라처럼 지역적 대립 구도가 고착화된 경우에는 후보자의 지역적 정치 환경이 당선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호남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어렵고, 영남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후보 당선도 난망하다. 이렇게 보면 인구가 많은 영남이 유리하다. 그러나 두 번의 대선에서 졌다. 그 이유는 지역 구도와 이념 구도가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지역 구도로 보면 한나라당은 영남, 과거 민주당과 지금의 열린우리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보면 쉽다. 한나라당의 경우에는  호남 출신으로 후보를 내세울 때도 호남에서 궤멸되었다. 호남 유권자들은 호남 출신자라도 한나라당의 옷을 입으면 뽑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영남 출신 후보를 뽑아도 호남에서는 통한다. 호남 유권자들은 비록 타 지역 출신이라도 반한나라당이라는 대척점에만 서 있다면 영남 출신이어도 지지를 보낸다. 영남 출신 후보이지만 이념으로는 호남과 통한다고 양해를 해주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는 구도상 ‘호남’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영남 온리(only)’보다 ‘영남 일부분+호남’이 이길 확률이 크다. 김대중·노무현 후보가 산 증인이다. 아마 한나라당이 지금과 같은 높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대선 본선에서 패한다면 바로 선거 구도를 잘못 꾸렸기 때문일지 모른다. 유장관이 설 땅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유장관, 비토 세력 탈당 원하나


문제는 유장관에 대한 열린우리당 내 비토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이 유장관의 복귀를 꺼리고 있다. 대규모 추가 탈당설도 나돈다. 그렇다고 노대통령이 유장관의 열린우리당 복귀와 후보 등극을 망설일까?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노대통령은 ‘도움도 안 되고 말만 많은’ 중진들이 자진해서 당을 떠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노대통령은 2002년 외롭게 선거를 치렀다. 민주당 후보 경선 당시 현역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천정배 의원이 노후보 지지를 선언했을 뿐이다. 취임 후 국회의장으로 예우한 김원기 의원도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노후보를 지지했을 정도다. 김원길·박상규·설송웅 의원 등 10명 이상의 중진 의원은 이회창 대세론을 따라 노후보 곁을 떠났다.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노사모’이고 인터넷이다.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중진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듯한 태도는 이래서 굳어졌다. 노대통령은 이번 선거도 소수 정예로 승리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국회의원 수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게 아니다”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얻은 노대통령이다. 걸림돌을 차라리 치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02년의 노무현 후보는 2007년 유시민 장관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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