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열광시키는 '신데렐라 대기실'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4.16 09: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인 가수 발굴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인기 폭발

 
내가 너무 잘해서 떨어뜨린 것으로 알아요.” 미국 시청률 최고 TV 프로그램이자 최고 신인 가수 선발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시즌6’에서 탈락한 슈퍼스타 지망자 지나 글록센의 말이다. 글록센은 지난 1월부터 수천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종 톱 나인(9)에 올랐다가 4월 첫주 콘테스트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글록센의 이같은 반응은 진짜 승부는 다음에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우승자가 미국 가수 세계에서 슈퍼스타가 되는 지름길이자 탈락자가 우승자보다 더 유명한 스타가 될 수 있는 우회의 길이기도 하다. 지난 2002년 시즌1 우승자 켈리 클락슨은 플래티넘 디스크 두 차례,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 네 차례, 빌보드 뮤직 어워즈(BMA) 12차례, 그리고 그래미 어워즈(GA) 두 차례를 받은 데 이어 라디오 방송 회수 3백30만 회를 상회하는 초특급 가수가 되었다. 2005년 시즌4 우승자인 캐리 언더우드는 최고 컨트리송 가수로 자리를 굳히며 AMA 1차례, BMA 8차례, GA 2차례를 받았다. 클락슨과 언더우드는 3개 상을 모두 석권한 발군의 실력을 가진 신인 가수다. BMA와 AMA를 수상한 팬테이지아 배리노도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3 우승자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최고 가수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클레이 에이켄이나 도트리 등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아메리칸 아이돌>을 거치며 플래티넘 가수가 되었고 제니퍼 허드슨은 영화 <드림걸스>에 출연해, 골든 글로브상을 받은 데 이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는 등 다른 방식으로 미국 연예계를 휩쓸고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미국 폭스TV에서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된다. 이 방송은 한 번에 5천만명이 시청하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방송이 끝난 직후부터 두 시간 동안 실시되는 시청자 투표에는 최대 5억명이 참가한다. 이 방송은 매주 세계 100개 국가에서 생중계 또는 녹화 방식으로 방송된다.
이 방송의 광고에는 코카콜라, 포드 자동차 등 미국의 대형 기업들이 7억원을 서슴없이 투척하며 줄지어 참여하고 있다. 또 소니, VMG 등 미국의 세계 정상급 음반 제작사들이 참여한 나인틴 엔터테인먼트 사가 이 프로그램의 우승자에게 100만 달러짜리 음반 제작 계약을 할 뿐만 아니라 우승은 하지 못했어도 톱10에 든 후보자들과도 음반 제작 계약을 잇따라 맺는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미국의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논평 그리고 비평과 비판이 서로 격렬하게 맞부딪치는 데서도 나타난다. 가장 단적인 예가 ‘다이얼아이돌닷컴’이나 ‘보트포더워스트닷컴’ 등 <아메리칸 아이돌> 때문에 생겨난 각종 웹사이트와 블로그들이다. 매주 방송되는 콘테스트를 둘러싸고 장외 심사와 논평 비방 그리고 찬사가 엇갈린다. 미국의 유수 신문 방송들도 매주 탈락자에 대한 기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라스베이거스 도박사들 역시 <아메리칸 아이돌> 우승자 맞히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잡지 <피플>은 이번 달 <아메리칸 아이돌> 우승자만으로 1백46쪽짜리 컬러 화보집을 냈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2002년 6월에 처음 방송되었다. 기획사인 아이돌 프랜차이즈 사가 새 프로그램을 기획해 미국 주요 방송에 후원을 타진했다가 모두 퇴짜를 맞고 폭스TV가 줍다시피 해서 시작했는데 대박 프로가 되었다. 아이돌 프랜차이즈가 이 프로와 관련해 제작·판매한 음반 등 매출액이 지난 5년 동안 이미 1억 달러(약 1천억원)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아이돌 가수들의 수입과는 별개다. <아메리칸 아이돌> 콘테스트는 매주 미국의 주요 도시를 돌며 오디션 방식으로 1차 심사를 하고 본선에서 24명을 선발해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참가자 연령 제한은 16세에서 28세.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예선에서 결선까지 총 19주가 걸리는 대장정이다. 전국 오디션에는 보통 1천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린다.

 


“청소년에게 허황된 환상 심어주는 무대” 비판도


 
콘테스트는 1명의 사회자와 3명의 심사위원이 함께 진행한다. 현재 사회자는 폭스TV의 라이언 시크레스트, 심사위원은 음반 제작자이자 베이스 연주자인 랜디 잭슨과 팝 스타 폴라 압둘, 그리고 영국인으로 제작자이자 매니저인 사이먼 카웰 등이다. 카웰은 심사위원 가운데 비평이 신랄하고 가장 입이 거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본선부터는 심사위원 평가보다 시청자 투표가 당락을 결정한다. 예선을 거쳐 준결선에 오르는 숫자는 시즌마다 다르지만 모두 20~32명이다. 준결선 진출자들은 남녀 2개 조로 나뉘어 별도로 심사가 진행된다. 매주 2명씩 시청자 투표로 탈락자를 결정하고 각각 6명씩 모두 12명이 남으면 결선에 오른다. 할리우드에서 진행되는 결선에서 이들은 매주 시청자 인기 투표 꼴찌 순서로 1명씩 탈락된다. 이때부터 최종 우승자가 결정되기까지 11주가 피크다. 심사위원들은 매주 2차례의 방송 공연에서 지망자 하나하나씩에 대해 논평을 한다. 이 논평은 탈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투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의 촌평 중에는 지나치다 못해 인신 모독에 가까운 것도 있다. 사이먼 카웰은 결선에 오른 신인 가수들에게 “지금 가라오케 하느냐”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여자 심사위원인 폴라 압둘은 무대 위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논평을 기다리는 흑인 신인 가수에게 “당신이 입은 (조명 반사가 강한) 연한 초록색 의상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하느냐”라며 음악과 상관없는 질문을 던져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심사평은 ‘최고’를 가려내는 것이 아닌 ‘최악’을 가려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이 프로그램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일기도 한다.
할리우드의 연예계에서는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신인 가수들의 성공 스토리에 대해 비아냥 섞인 반응도 나온다. 라디오 연예 프로 사회자 닉 하콧은 “대형 TV 방송과 언론에서 19주에 걸쳐 대대적으로 선전을 해주는데 그같은 마케팅 효과에도 뜨지 못할 가수가 어디 있느냐”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성공 이면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 측면이 있다. 그중 하나가 노래 재주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 하루아침에 세계적 톱스타가 되는 신데렐라 증후군이다. 모두가 눈앞에서 벼락 스타가 탄생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공주나 왕자가 되는 환상에 빠진다.
다른 하나는 프로그램의 철저한 상업주의다.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 도덕성이나 사회 정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흥행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바로 시청자 참여 유도다. 시청자가 톱스타와 슈퍼스타를 직접 뽑는다는 참여 의식과 여기에서 얻는 자기 만족은 더 많은 시청자들의 인기 투표 참여를 이끌어낸다. 더 중요한 것은 우승자만이 마지막에 웃는 자가 아니고 제2인자나 제3인자도 더 노력하면 우승자보다 더욱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의 재확인이다. 제니퍼 허드슨이나 클레이 에이켄의 예가 그러하고 지나 글록센의 인터뷰가 이를 증명한다. 글록센은 인터뷰에서 “지난 두 차례의 공연은 내가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나는 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다른 경쟁자들에게 표를 주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톱 에이트(8)에 들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결코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글록센의 말은, 진정한 <아메리칸 아이돌>은 TV 화면 속에 있지 않고 거친 미국 연예계 그 한가운데에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