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가물 멀어지는 전통 차 향기
  • 김지은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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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중국차 사이에서 설 자리 잃어...'즐기는 차 문화'도 함께 시들

 
지난 4월5일 스타벅스 코리아의 200호점으로 서울 이태원점이 문을 열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1999년 사업을 시작한 지 8년도 안 되는 기간에 고속 성장해왔다. 하루에 국내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8만5천여 명. 스타벅스 코리아가 스타벅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시아 지역에서 10%, 비영어권에서는 3위, 점포 수만으로는 세계 6위다. 최근 몇 년 사이 테이크아웃 커피 열풍과 프리미엄 커피 전문점의 확산을 등에 업고 커피 문화도 일상화했다. 인스턴트 커피는 대형 마트의 차 판매 코너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 차를 마시려면 집에나 가서 드세요.” 전통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릴 문화 공간이나 찻집을 찾다가 발만 아플 것 같다. 전통 찻집에 가서도 세작이나 우전차가 있느냐고 묻지 말고 그냥 “녹차 주세요”라고만 해야 할 정도이다. 녹차도 티백이 싫으면 “대추차 주세요” 해야 한다. 우리 전통 차는 이제 일부 애호가의 전유물인 양 여겨져 전통 찻집에서조차 밀려난 현실이다. 우리나라 차 시장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녹차 소비층의 감소로 녹차 산업 또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차나무에 새순이 돋는 봄, ‘그래도 인사동에는 우리 고유 차 문화가 살아 있겠지’ 생각하며 발길을 옮겼다. 인사동 거리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뒤섞인 행인들로 붐볐다. 전통 다기와 전통 차를 파는 한 가게에는 우리나라 사람보다 일본·미국 등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더 많이 이어졌다. 점포 주인은 요즘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 전통 다기를 한국 사람보다 훨씬 많이 사가고, 최근 세계적인 중국의 보이차 열풍에 힘입어 ‘자사호’라는 중국 다기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된다고 말했다.


인사동에서조차 보기 힘든 전통 찻집


지난해 인사동에도 스타벅스가 들어서면서 화제가 되었다. 전통의 거리라 해서 인테리어에 전통 문화를 접목시키고 간판 표기도 한글로 하는 등 배려를 한 것도 얘깃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통 음료까지 취급했던 당시의 그런 마음 씀씀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느 매장과 다를 바 없다. 이유는 물을 것도 없이 인사동 거리가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탓이다.
당시에도 우리 전통 찻집의 위기에 대해 얘기가 오가기는 했는데, 지금은 위기를 떠나 이미 메뉴를 변경했거나 한창 공사 중인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살아남은 찻집 가운데서도 우리 전통 차를 파는 곳은 별로 없다. 한방 건강 음료와 커피를 섞어 팔고 그나마 녹차 하나만 달랑 메뉴에 올렸을 뿐이다.
또 몇몇 찻집에서는 우리 전통 차는 제쳐두고 중국 보이차를 적극 홍보하면서 보이차 마니아를 양산하고 있다. 보이차를 앞세운 중국 발효차의 시장 점유율도 늘어나 우리 전통 차 문화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차 문화를 즐기려면 사전에 정보를 얻어 지도 검색까지 해서 찾아가야 할 지경이다. 결국 우리 전통 차 문화는 대중의 일상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차인’이라 말하기도 하는 애호가들만이 가까스로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일제 때 명맥이 끊어질 뻔했던 우리 전통 차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광복 후 각계에서 나타났었다. 그러나 ‘덖음 녹차’를 중심으로 우리 고유 차 문화가 본격 재시동을 건 것은 불과 20년 전쯤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동안 다도와 다례를 배우는 행렬도 이어져 생활 속에 자리 잡는 듯했다. 또 전통 차를 활용한 음료도 등장하면서 산업화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고유 차 문화 복원과 관련해 저술 활동도 꽤 있었다. 최근 류건집 교수의 <한국차문화사>가 발간되어 자료와 기록이 부족한 현실을 채워주고 있다. 웰빙 바람을 타고 차 관련 단행본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잡지로는 계간 <차와 문화>를 필두로 계간 <차 생활>, 월간 <차의 세계> <Tea & People> 등이 있다. 차 애호가들은 이 밖에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 많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지방에서는 올해도 여전히 차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차 생산지에서는 보성다향제(5월4~7일)와 하동야생차문화축제(5월17~20일)가 열리고, 대구에서는 제1회 대한민국 차 박람회(5월25~27일)가 열린다. 문경의 한국전통찻사발축제(4월28일~5월6일)와 김해의 2007 가야차문화한마당축제(5월15~16일)도 눈길을 끈다.

 

“차 즐기는 사람은 차 도구도 단출”


그러나 차인들은 이 모두 뭔가 부족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커피 문화의 강세와 중국 보이차 애호가의 확산 등으로 우리 고유의 차 문화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인사동에 우리 차 문화를 꿋꿋이 지키는 곳이 있기는 하다. 그 중에서도 ‘한지차향가’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우리 전통 차와 천연 향, 그리고 우리의 멋이 담긴 생활 소품을 연구·개발해 옛 멋을 우리 생활 속에 담으려 애쓰는 곳이다. 이 건물 3층에 있는 한국발효차연구소도 전통 차에 대한 위기감을 조금은 누그러뜨려준다.
차인들은 차 문화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에 뿌리내리게 하려면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계간 <차와 문화> 김환기 발행인은 “차가 주인공이 아니라 값비싼 차 소장품을 자랑하는 일이 차 문화인 것처럼 유행하는 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는 “차를 즐기는 사람은 차 도구도 단출하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차에 빠져 차를 섭렵하지만, 차를 즐기는 사람은 차와 함께한 기억을 사랑한다”라며 ‘즐기는 차 문화’를 강조했다.
다도(茶道)니 다례(茶禮)니 하는 말은 실용적인 말이 아니다. 예의도 중요하지만 차 교육을 한다며 지나치게 강조해 차 따르는 법, 마시는 법에만 매달리면 차를 즐기는 법에서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 김발행인은 “차를 즐기는 나라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다도와 다르다. 인도·네팔·중국 등에서는 차가 생활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일본 다인들이 마시는 차는 일본 차 문화의 특징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일본 차의 모든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차 문화는 1970년대 몇몇 동호인에서 시작해 현재는 3백만명이 넘는 차 소비 시장으로 그 규모를 키워왔다. 김환기 발행인은 “그동안 전문가들을 양산하긴 했지만 차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해결할 생활 차 문화의 틀은 만들지 못한 것 같다”라면서도 “근래 들어 단순히 음료에서 현대인들의 생활 문화와 건강을 지키는 쪽으로 틀을 짜는 움직임이 있어 다행이다”라며 안도감을 표출했다.
그는 또 “우리 차 문화가 정리 안 된 현실에 국적 불명의 차 문화들까지 자리를 위협해오는 현실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즐기는 문화로 뿌리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차 문화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정립되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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