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에 약골이 되어…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4.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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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비만·성인병 증가 일로…전자 기기·구형 책걸상도 건강 위협

 
"뚱땡이 형, 밥 먹어.”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병현(12)이는 별명으로 불린다. ‘뚱땡이’‘퉁퉁이’‘돼지’‘삼겹살’ 등이다. 자신의 인터넷 아이디는 ‘날으는 삼겹살’이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별명을 애칭처럼 달고 다닌다.
병현이는 비만이다. 키 1백62cm, 몸무게 78kg으로 웬만한 성인보다 몸집이 크다. 또래들의 평균 키보다 11cm 크지만 체중은 35kg이나 더 나간다. 비만의 원인은 과다한 음식 섭취와 운동 부족이다.
병현이 어머니의 말을 빌리면 “손 닿는 대로” 먹는다. 과자, 튀김, 라면, 고기 등을 가리지 않는다. 먹고 나면 잔다.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서 운동에는 관심이 없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게임을 즐긴다. 보다 못한 부모가 러닝머신까지 사주었지만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을 뿐이다. 병현이는 벌써부터 비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거울 보는 것과 사진 찍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또래들이 흔하게 갖고 있는 스티커 사진도 한 장 없다. 스스로 외톨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멍들고 있다. 파릇파릇하게 자라야 할 새싹들이 일찍부터 병에 시들고 있다. 어른들에게 주로 걸리는 성인병이 아이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어린이 성인병은 해마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비만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을 위한 비만 클리닉이 성황을 이룰까. 방학 때면 초등학교나 지방자치단체는 ‘어린이 비만 교실’을 잇따라 열고 있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말이다. ‘살은 키로 간다’는 안일한 생각이 아이의 건강과 성장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이가 살이 좀 찐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하고 말한다면 10점짜리 부모이다. 비만아의 경우 정서적 장애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놀림의 대상이 되므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쉽다. 자신감이 결여되어 정서 발달에 장애가 초래될 수도 있다.
어린이 비만은 성인 비만과 마찬가지로 고지혈증·지방간·고혈압·당뇨병 같은 성인병을 유발하기 쉽다. 특히 고도 비만아(비만도 50% 이상)에게는 당뇨병 등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도 심각하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 성인병 증가세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 10세 이하 어린이가 최근 5년간 고콜레스테롤증, 당뇨 등 5가지 병으로 진료받은 건수는 10만1천7백51건으로 진료비만도 1백14억2천만원에 이르렀다.
김정신 압구정 함소아병원 원장은 “엄마들의 과잉 보호가 아이들을 비만으로 내몰고 있다. 성장기 아이에게는 키와 균형이 맞는 체중 관리가 중요하다. 비만이 심하면 몸 안에 노폐물이 쌓이고 성인병이 찾아온다.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 인스턴트 식품 섭취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 부모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어린이 성인병에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제 자식 감싸기가 문제이다. ‘내 자식은 무조건 잘 먹여놓고 봐야 한다’라는 부모의 어긋난 사랑이 아이들을 약골로 만들었다.
어른들의 장삿속도 한몫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는 기름기 많은 음식과 화학조미료가 범벅이 된 음식은 위험 식품들이다. ‘남의 아이가 먹는다’는 생각이 제 자식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아이들의 식생활을 통제하기가 힘들어진 것도 문제이다. 밥보다 과자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어린이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이들은 맘 놓고 뛰어놀 만한 시간과 장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학교 체육시간은 시간표에만 있다. 일부 학교는 수행평가라는 시험 형태로 대체되고 있다. 학교 운동장까지 아이들의 차지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뺑뺑이 과외’로 스트레스 만성화


 
대다수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 버스를 탄다. 영어, 논술, 피아노, 태권도 등 1명당 2~3개의 과외는 기본이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찾는 것은 컴퓨터이다. 밤늦게까지 게임 삼매경에 빠진다. 일부 아이들은 학원 중독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부모들의 광적인 사교육 바람에 몰려 무언가에 쫓기는 듯 초조해하고, 깜짝깜짝 놀라며, 신경질적이거나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심하면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고 한다.
잠자는 시간, 꿈속만이 아이들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어른들은 “어린이를 컴퓨터와 TV에서 떼어놓으면 해결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부모들이 TV 앞에 있는 한 아이들도 컴퓨터 앞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학교 환경도 아이들을 괴롭힌다. ‘아이들은 신세대, 책걸상은 구세대’라는 말까지 있다. 초등학생들의 체격은 갈수록 커지는데 교실 안 책상과 의자는 옛날 그대로이다. 덩지 큰 학생들은 책상 안에 다리를 넣지 못해 옆으로 빼고 앉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책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학교 책걸상이 서구형으로 변해버린 학생들의 체격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1년부터 학교 책상의 KS 규격을 상향 조정했다. 최장신 학생의 키 기준을 1백76㎝에서 1백80㎝로 늘리고 책상 높이를 다소 높였다. 아직도 많은 학교의 책상과 의자는 예전 그대로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전국 초등학교에서 KS 규격 책걸상을 사용하고 있는 비율을 알지 못했다. 규격은 정해놓았지만 어느 정도 규격에 맞게 사용하는지는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심하게 부서지거나 사용하기 어려운 책상, 즉 교체 대상 책상은 지난해 2월 기준으로 ‘책상 1백54만8천 개, 의자 1백59만9천 개’라고 밝혔다. 아직도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책걸상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2005년까지 별도 환경 개선 사업비가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없어졌다. 책걸상 교체는 지자체가 필요에 따라 자체 예산을 편성해서 집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사정은 뻔하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는데도 예산 타령만 한다. 낡고 오래된 책상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전북 익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몸집 큰 아이가 작은 책걸상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흔하다. 옛날 책상이 아이들의 체구를 따라가지 못한다. 수업하는 교사가 더 불안하고 안쓰럽다. 아이들을 우선해서 배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 체육교사들에 따르면 초등학교 체육 시설도 아이들의 신체 발육 상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설치되고 있다. 몸집에 비해 턱없이 작은 책걸상은 아이들의 허리를 망가뜨리고 있다. 척추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책가방은 무거워지는데 운동이 부족하다 보니 10대 이하의 척추 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초등학생 허리 디스크 환자가 병원 문턱을 넘나드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최혜윤씨(47) 가족은 ‘안경잡이 가족’이다. 최씨 부부를 비롯해 3남매 모두 안경을 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유치원생 막내아이도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최씨 부부는 아이들이 안경잡이가 된 것을 유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생활 습관을 문제 삼지 않았다.
최근 안과에서 아이들의 시력을 측정해보니 모두 0.5 이하로 나왔다. 최씨는 이제서야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아이들의 시력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곰곰이 짚어보았다. 공통점은 휴대전화와 컴퓨터 게임이다. 세 아이 모두 컴퓨터광이다. 컴퓨터 게임을 하기 위해 싸움도 잦았다. 초등학생 두 아이는 휴대전화를 장난감처럼 사용한다. 휴대전화 게임에 빠져 있거나 친구들과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흡연·음주 경험자 상당수


 
최씨 부부는 오랜 고민 끝에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일단 TV를 없애기로 했다. 컴퓨터는 사용 시간을 대폭 줄이고, 아이들에게 사용 시간을 배정해주었다. 휴대전화도 요금제를 정액제로 바꿨다. 대신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일요일에는 가족이 함께 등산을 가거나 나들이를 한다.
최씨는 “지금은 모든 게 가족 위주다. 아이들도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빠져 있지 않다. 부모의 역할이 새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만 바뀌기를 바라는 건 부모의 욕심이다. 전혀 교육 효과가 없다. 반대로 부모가 바뀌면 아이들이 바뀐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최근 초등학생들의 성 경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 연구회와 전교조 보건위원회가 전국 초·중·고 학생 1천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 태도와 의식 조사’, 전국 초·중·고 보건교사 6백86명을 대상으로 한 ‘학교 보건 교육의 실태’에 따르면 성 경험이 있는 초등학생은 2.5%, 중학생은 2.4%, 고등학생은 4.0%로 나타났다. 초등학생이 중학생보다 더 많게 나온 점도 충격적이다.
담배를 처음 피운 시기는 중학교(54.4%), 초등학교 고학년(26.5%), 초등학교 저학년(14.1%), 고등학교(5.1%) 순이었다. 또 42.9%는 술을 마셔본 적이 있으며, 처음 마신 시기는 중학교(54.6%), 초등학교 고학년(37.2%), 고등학교(8.2%) 등의 순이었다. 초등학생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조사 자료이다. 어른 같은 초등학생이 많아졌다는 뜻이 된다.
김영식 한국웃음연구소 소장은 “아이들에게는 각자 살고자 하는 세계가 있다. 맘껏 뛰놀고 싶은 자연 같은 세상이다. 지금은 어떤가. 아이들이 아파트 같은 성냥갑에 갇혀 있다. 부모와 사회가 아이들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꽁꽁 닫아버렸다. 갇힌 세상을 벗어나고파서 일탈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문제는 곧 어른들의 책임이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답을 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어린이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도 결코 건강하지 못하다. 어린이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대리 만족의 희생양이 되게 해서도 안 된다.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어린이들의 건강이 지금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는 모두 어른들의 책임이다. 이제 어린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주자.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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