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수사' 그물로 6자회담 건지다
  • 조홍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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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작전 방불한 'BDA 계좌 추적' 막전막후 / 미국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입금된 북한 자금 2천5백만 달러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한 것은 13개월 전이었다. 베이징에 온 북한 대표단은 이 자금이 해제되기 전에는 협상을 할 수 없다며 귀국했다. 6자회담은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2천5백만 달러에 목을 매는 북한의 태도는 세계를 의문 속으로 몰아넣었다. 북한이 아무리 가난한 나라이기로서니 그 정도의 돈에 사활을 거는 모습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미스터리는 엉뚱하게도 북한이 관련된 밀수 사건 수사에서 실마리를 드러냈다. 
2005년 9월, 북한에서 위조된 100달러짜리 미국 화폐, 담배, 마약이 미국으로 밀수되고 있다는 첩보가 수사 기관에 입수되었다. 중국과 북한의 범죄 조직이 개입된 상황이 수사진을 긴장시켰다. 미국 재무부가 주축이 되고 연방수사국(FBI)과 국무부가 공조하는 합동 수사팀이 발족했다. 전 암호명은 ‘로열 참 앤드 스모킹 드래건’(Royal Charm and Smoking Dragon). 그로부터 장장 20개월, 6백 일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집요한 추적이 시작되었다. 미국과 중국 대륙을 누비는 ‘007 작전’이었다. 용의자를 유인하기 위해 위장 결혼식도 연출되었다. 몇 달 만에 10여 명이 체포되고 확고한 증거들이 수집되었다.
밀수에 관련된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도박 휴양지 마카오가 수사 선상에 떠올랐다. 북한과 선이 닿은 범죄단이 돈을 세탁하고 있었다. 이같은 불법 거래에 대해서는 마카오 금융 당국도 알고 있었다. 규모도 방대했고 거래는 여러 은행에서 이루어졌다. 수사망이 좁혀지자 마카오의 은행들과  몇몇 깡패 조직 그리고 마카오에서 활동하는 북한인들이 용의 선상에 올랐다. 미국 국무부에서 북한 문제를 담당하면서 수사에 참여했던 데이비드 애셔는 돈세탁 커넥션의 규모를 보고 내심 놀랐다. 수사 결과를 종합한 미국은 애국법을 근거로 BDA를 돈세탁의 주거래 은행으로 지목했다. 사실 BDA는 가족 단위 소유의 중소 은행이다. 중국은행의 마카오 지점을 포함한 몇몇 큰 은행도 의심을 샀다. 부시 행정부는 그러나 중국에서 세 번째 큰 은행인 중국은행까지 계좌 동결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피했다. 마카오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파장을 줄이고 중국과의 충돌을 염려해서였다. 최종적으로 BDA에 개설된 북한 관련 계좌에 입금된 2천5백만 달러가 동결되었다.
베이징에 있는 중국은행은 수사 결과에 묵묵부답이었다. BDA도 처음에는 잘못이 없다고 버텼다. 마카오 공보국은 BDA 수사와 관련된 질문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마카오 금융 당국 책임자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BDA에 대한 조처는 즉각적이고 파격적인 파장을 가져왔다. BDA 예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억3천3백만 달러가 즉시 인출되었다. 마카오 금융 당국은 BDA 경영 책임자를 교체하고 불법 금융 거래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카지노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마카오에는 매년 미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투자 자금이 들어온다. 마카오로서는 미국의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미국 자금이 빠져나가고 마카오는 금융 공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이를 본 각국 은행들은 기절초풍했다. 미국과의 금융 거래를 차단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의 요구대로 북한 관련 거래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20여 개 은행이 동참했다.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가 발효된 것이다. 구체적 증거가 없었다면 BDA의 북한 계좌 동결은 불가능했다. 당시 이 조처가 북한 핵 프로그램을 해체하려는 국제적 노력의 전환점이 될 줄은 수사관들도 몰랐다.
그때가 지난해 10월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 북한은 핵 실험을 단행하고 동결 자금 해제를 조건으로 6자회담에 복귀했다. 이 요구를 미국이 수용한 후에야 북한은 2·13 합의에 서명했다. 미국이 동결 자금 해제에 붙인 유일한 조건은 인도적 목적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용도에 사용되는지를 확인할 길은 없다. 미국은 비핵화라는 큰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동결을 풀었다. 
부시 행정부는 처음에 자금 동결이 불법 돈세탁에 대한 법 집행일 뿐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2005년 10월까지 그런 주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다. 그것이 외교적 카드였으며 북한이 핵 폐기에 동의한 이상 동결 자금은 예금주인 회사와 개인에게 반환된다고 밝혔다. 미국 재무장관의 보좌관 제임스 윌킨슨은 문제의 자금을 풀어줌으로써 북한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 기회가 많아졌고 따라서 이 결정은 옳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베이징 협상에도 참석한 사람이다. 그쯤 했으면 무기 확산, 돈세탁, 화폐 위조를 차단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북한에 전달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자금 동결 주체는 미국 아닌 중국·마카오


 
그의 말대로 미국의 금융 제재 효과가 얼마나 막강한지 국제 사회는 실감했다. 해제된 돈이 실제로 언제 소유주에게 전달될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2천5백만 달러 중 1천3백만 달러는 17명의 개인과 회사에 반환된다. 이들은 미국 재무부에 의해 불법 활동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된 대상자들이다. 나머지 1천2백만 달러는 합법으로 분류된 35명의 소유자에게 돌아간다.
미국 행정부의 태도 변화는 다소 파격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1월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복귀시키기 위해 동결을 해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여보게, 협상에만 복귀하면 달러를 위조할 수 있네”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부시는 선을 그었다.
뉴욕 타임스는 4월8일 북한에서 에티오피아로 가는 무기 선적을 미국이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유는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에서 이슬람 반군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는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처사였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윌킨슨과 라이스 국무장관은 동결 자금 해제 문제를 협의한 후 6자회담 성사를 위해 해제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비판이 있다. 그러나 라이스와 그의 특사 힐 차관보는 이를 외교적 성과라고 주장한다. 
알고 보니 자금을 동결한 측은 미국이 아니었다. 동결 조처는 중국과 마카오 당국이 취했다. 그러나 해제 신호가 나오자 중국은 이 돈을 중국의 또 다른 은행으로 이관하는 데 반대했다. 밀수 자금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이 돈이 인도적 목적에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중국은행으로 이체하려던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의 시도는 중국측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밀수 수사가 외교 수단으로 둔갑했다. 미국 행정부의 전 북한 담당관 찰스 프리처드는 “2천5백만 달러 문제만 해결되면 당장 협상에 응하겠다고 북한이 노래를 부르다시피 했다”라고 말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 돈은 북한의 생사를 좌우하는 상징적 자금이다. BDA가 해결되지 않으면 김정일 위원장의 돈줄은 막힌다. 그러니까 2천5백만 달러는 25억 달러 혹은 그 이상의 위력이 있다. 김 위원장에게는 미국의 선제 공격 위협보다 재무부의 금융 제재가 더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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