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정신' 뒷자리 대입 열망이 채운다
  • JES 제공 ()
  • 승인 2007.04.2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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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복서 등용문 '프로 테스트'에 대학 체육과 진학 희망자 몰려

 
일본의 강타자 도카시키 가쓰오를 9회 TKO로 쓰러뜨릴 때 파마 머리 장정구(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의 변칙 복싱, 얼굴만한 주먹을 자랑했던 전주도(전 IBF 주니어밴텀급 챔피언), 18차 방어에 성공한 유명우(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의 속사포….
1980년대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를 기억하고 있는 올드 스포츠 팬들의 머리에는 전설적인 파이터들의 영상이 이렇게 남아 있다. 한때 국민 스포츠였던 프로복싱, 아이에서 어른까지 주말 타이틀전이 열리면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복싱의 열기가 사라진 지금, 그들이 떠난 자리는 누가 채우고 있을까.
지난 4월12일 서울 송파구 서울체고 복싱체육관에서 열린 제150회 KBC(한국권투위원회) 프로 테스트 현장은 한국 프로복싱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프로 테스트는 아마추어 복싱대회와 전국대회 규모에서 입상 자격이 없는 재야의 강자들이 프로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이다. 중국집 배달부 생활을 하면서도 세계 챔피언을 꿈꿨던 추억이 남아 있는 현장으로 장정구·유명우도 이 자리를 거쳐갔다.


“합격증 따면 입시에 도움될까 봐 출전”


 
하지만 2007년 프로 테스트 무대에 오른 상당수는 학생들이었다. 대학 체육과 진학에 프로 테스트 합격증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프로 테스트 참가가 처음이라는 노민혁군(수원동원고 2)은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출전했다. 세계 챔피언도 꿈꾸고 있지만 일단은 대학 진학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강자를 만나 탈락한 노군은 올여름 테스트에 다시 참가하기 위해 재수를 할 계획이다. 현장에서 만난 인천대우체육관의 신갑철 회장은 “요즘 애들은 우리 때 훈련량보다 절반도 운동 안 해. 복싱에 목숨 건 친구들이 없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에는 6명의 여자 세계 챔피언이 있다. 반면 남자 챔피언은 딱 한 명. 여자 복싱의 세계 챔피언 경쟁이 훨씬 덜하다는 요인도 있지만 요즘 여자 복싱에 대한 인식 변화도 큰 역할을 했다. 이날도 프로 무대에서 자리를 잡을 만큼 잠재력 있는 선수는 여자 부문에서 나왔다. 라이트급에 참가한 김지연양(인천가정고 3)의 기량은 군계일학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남자 참가자들의 입에서도 김양의 안정된 자세에서 나오는 스트레이트 연타에 탄성이 터져나왔다.
격세지감을 느끼면서도 한국 복싱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제2의 장정구·유명우를 키우기 위해 인재 발굴을 서둘러야겠지만 복싱을 생활 체육으로 즐기는 분위기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지금은 복싱의 뿌리를 키울 수 있는 ‘즐기는 복싱’ 문화를 생각해볼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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