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이 쇼를 하네 쇼를 해
  • 김지은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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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날 맞아 '절묘한 행사' 풍성...남이섬 '세계 책나라 축제' 볼 만

 
4월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책의 날을 기념해 도서관과 서점, 관련 기관들이 마련한 행사들이 눈길을 끈다. 올해 선보이는 행사들은 모두 독서 권장 차원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즐기는 문화 행사로 엑스포를 방불케 하는 책 축제도 있지만, 서점이나 도서관의 작은 행사들도 제각기 특색 있는 프로그램들을 내세우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광고 카피처럼 ‘쇼를 하라’는 특명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조용하던 도서관이 조금 시끄러워졌다. 책을 빌려 얌전히 앉아서 보던 조용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각종 문화 행사를 접하는 문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영화 상영관을 따로 만들고,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행사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려 애쓴다.
서울 지역 22개 공립도서관(평생학습관 포함)은 최근 각종 생활 강좌와 교육 프로그램을 대폭 보강했다. 외국인을 위한 한글 교실이나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공부방이 설치된 곳도 있다. 특히 5월을 맞아 어린이 연극, 동화 구연 등을 준비해 많은 어린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기존 열람실이 공부방으로, 토론 마당으로, 전시회장으로, 각종 강좌가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 기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에게는 ‘문화 놀이터’로, 어른에게는 ‘문화 센터’로 더욱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도서관의 참신한 변신이 주목된다.
5월 가정의 달을 앞둔 터라 책의 날 행사는 가족과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많다. 교보문고는 4월21일부터 ‘가족 맞춤 독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각 가정의 특징과 성향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서비스로 가족 구성원들의 연령과 성별, 관심과 독서 수준, 성향을 점검한 뒤 전문가가 엄선한 최적의 도서를 제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책의 날에 장미와 책을 무료로 나눠주는 일회성 이벤트만 해왔는데, 올해에는 ‘독서 권장’이라는 본래 취지도 살리고 좀더 의미 있는 행사로 독자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의도도 함께 살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The whole Island is a Library!” 섬 전체가 도서관으로 탈바꿈한다. 5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강원도 춘천의 남이섬에서 두 달 동안 국내 최대 규모의 어린이 도서 페스티벌인 ‘세계 책나라 축제’가 열린다. 이 행사는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두고 세계 70개국의 어린이 책 출판사 및 작가·화가·도서관 관계자·교육자 등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의 한국위원회(KBBY)가 마련했다. 올해는 특히 70개 IBBY 회원국 중 19개국의 위원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연 속의 도서관 만들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아이디어 세미나를 개최한다.
올해 세 번째를 맞는 세계 책나라 축제는 세계 68개국의 어린이 책 전시회를 비롯해 세계 관광 이미지전, 그림책 원화 일러스트 전, 노마콩쿠르 수상 작가 초대전, 세계의 어린이 교과서전 등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각 나라 국가의 날 행사, 국내외 유명 가수와 배우들의 모습을 밀랍 인형으로 재현한 전시, 노래 공예 상품전, 동요 일러스트전, YMCA가 준비한 녹색가게 종이 만들기 체험, 국내외 출판사와 기관이 선정하고 추천하는 어린이 청소년 선정 도서전 등 다양한 전시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이에게 책은 친구이자 장난감


 
국내외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 ICLC(국제식자문화센터)의 가족 인생 지도 그리기 워크숍, 그림책 워크숍 같은 독특한 프로그램들도 선보인다. 많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기대되지만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들이 단연 돋보인다. 어린이들의 동화 나라 ‘나미나라공화국’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넘쳐나는 아동 도서들 속에 파묻혀 놀 수 있다. 풀잎 또는 도자기로 책을 만들기도 한다. 그곳에서 책은 장난감이 되고 벤치가 되고 집이 된다. 책을 먹고 마시고 베고 깔고 찢고 붙이고 접고 날리면서, 어린이들이 책 속에서 뒹굴게 한다.
세계 책나라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KBBY 강우현 위원장은 “남이섬을 순수하고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꾸몄다. 어린이 책을 만드는 모든 사람과 책을 읽고 보는 모든 어린이, 어린이와 미래를 사랑하는 모든 어른들,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며 오늘의 환경을 소중하게 남겨주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뜻을 모았다”라고 ‘책나라’ 건설의 취지를 밝혔다. 이번 세계 책나라 축제는 지난해에 비해 내용과 질적인 면에서 풍성하리라는 전망이다. 주최측의 일방 통행으로 끝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 펼치는 도서전이 있는가 하면, 책에서 나아가 제2 창작 세계를 보여주는 연극·영화·음악인들의 축제가 벌어진다. 일반인들도 책을 만들어볼 수 있는 워크숍에다 순수한 동화 세계 속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춤추고 노래하는 페스티벌이 연일 벌어진다.
강위원장은 “어린이에게 책은 장난감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책을 보거나 읽기만 하는 데 그친다면 창조적 상상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책 바깥 세계를 상상해낼 수 있게 하는 데 책은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에게 그냥 놀다 가라는 게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얻어가는 창조의 장으로 꾸미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이 장차 자유롭게 상상력 교육을 받은 세계의 친구들과 당당히 견주려면 책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행사 기간에 6세 미만 어린이는 ‘안 보거나 다 본 동화책 세 권’을 ‘나미나라공화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기증하면 공짜로 입장할 수 있다. 또 왕복 뱃삯이 무료다.
이곳을 다녀오면 책과 아주 친밀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서점 한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던 어린이들이라면 따스한 햇볕 아래서 마음껏 책을 향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육체적으로 부자유한 어린이들에게도 꿈과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어 어린이 문화 축제로서 더할 나위 없다. 다만 주최측이 상혼이 개입하지 않도록 애쓰고는 있다지만 축제 분위기를 흐리는 잡음은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 같다.
책은 삶의 지표를 열어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귀하게만 여기면 책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에게 책은 친구이자 장난감이어야 한다. 놀이터이면서 선생님이어야 한다. 5월에 쑥쑥 자랄 어린이들이 동화의 주인공이 되고 작가가 되는 순간, 꿈과 희망도 쑥쑥 자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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