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벌린 사과, 큰 배 채울까
  • 노진섭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3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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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사, 아이팟 기세 몰아 휴대전화 시장에도 진출…한국 공략은 여전히 ‘숙제'

 
2초에 1대씩 팔리는 물건.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로고로 유명한 애플 사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iPod)’의 판매량이 전세계적으로 1억 대를 넘어섰다. 2001년 11월 출시되어 5년6개월 만에 이룬 성과이다. 과거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휴대용 카세트 ‘워크맨’이 1억 대를 돌파하는 데 14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실적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파산 위기에 몰렸던 애플은 1998년에 선보인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컴퓨터 ‘아이맥’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고비를 넘겼다. 10억 달러 적자가 1년 만에 4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애플은 컴퓨터만 고집하지 않고 MP3 플레이어 시장에도 과감히 진출했다. 심플한 디자인을 무기로 한 아이팟은 애플이 기사회생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미국 MP3 플레이어 시장의 70%를 석권한 아이팟으로 애플은 미국 디지털 음악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다.
아이팟의 후광은 대단해 보인다. 아이팟 주변 기기와 액세서리 제품군이 4천 가지가 되며 올해 출시된 미국 신차종의 70% 이상이 아이팟과 연동하는 오디오 시스템을 달고 있다. 포드코리아는 2007 서울모터쇼에서 아이팟을 즐길 수 있는 차량을 전시했다. 자동차 운전석 오른쪽 팔걸이대 안에 전용 잭을 통해 아이팟과 같은 MP3 플레이어를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 포드코리아가 출시하는 모든 차종에서 아이팟 감상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스포츠 용품 업체인 나이키는 운동을 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마트 슈즈’로 매출이 증가했다. 운동화에 부착된 전자 태그로 애플의 아이팟과 연결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이키는 올해 출시되는 대부분의 운동화 모델에 아이팟 호환 기능을 장착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애플은 MP3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IT(정보통신) 제품을 속속 출시할 예정이다. 6월에는 ‘아이폰’이라는 이름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출시해 휴대전화 시장에도 뛰어든다.
아이폰은 숫자판을 없애고 터치스크린 방식을 채택해 벌써부터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의 한 투자은행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85%가 아이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며 5백 달러라는 가격에도 응답자 중 25%가 아이폰을 꼭 구입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PC에서 내려 받은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TV로 관람할 수 있는 일종의 셋톱박스 단말기 ‘애플TV’도 공개했다. 또 하드 드라이버가 아닌 플래시 메모리를 장착한 노트북 PC도 올해 출시할 계획이다.
애플이 하드웨어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니다. 이 회사는 지난 5년 사이 온라인 음악 판매 프로그램인 아이튠스를 통해 25억 곡을 판매했다. 오는 10월에는 매킨토시 컴퓨터의 업그레이드된 운영 체제인 ‘레오파드’를 출시한다. 디즈니 등과 손잡고 영화 등 동영상 콘텐츠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최근 “전세계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되살려내는 데 아이팟이 기여했다는 사실에 흥분을 느낀다”라며 1억 대 판매 돌파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애플은 2008년까지 1천만 대의 아이폰을 팔아 시장점유율 1%를 달성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 이름도 ‘애플 컴퓨터’에서 ‘애플’사로 바꾼다고 선언했다. 애플이 컴퓨터 메이커에서 본격적인 가전·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애플이 파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제품의 디자인 혁신 덕이다. 디자인을 단순화해 소비자들의 눈길을 잡았다. 복잡한 기능과 버튼이 많아 혼란스럽게 보였던 기존 MP3 플레이어와 차별화한 것이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능보다는 소비자 중심의 편리성을, 기술보다는 디자인을 지향했던 것이 주요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디자인만 단순화하거나 보기 좋게 만든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했다. 소비자들이 아이팟의 클릭 휠을 손가락으로 돌려가며 원하는 음악을 듣는 데 푹 빠지도록 한 것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의장은 “향후 5∼10년 동안의 기술 흐름은 기술보다 사용성이 이슈가 될 것”이라며 설명서를 읽지 않고도 쉽게 쓸 수 있는 아이팟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덩그렇게 검색창만 있는 구글이 야후·알타비스타·라이코스 등 라이벌을 따돌리고 검색 엔진 시장을 제패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한국 소비자, 애프터서비스 미흡 등에 불만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있는 애플 제품 매장. 매장 중앙에 마련된 진열대에서 소비자들이 애플 제품들을 직접 시연해보고 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클릭 휠을 이리저리 돌리며 아이팟을 작동해보는 사람에서부터 웹캠으로 찍은 사진을 즉석에서 사진 파일로 저장해 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애플 제품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다. 각종 액세서리가 전시된 주변 진열대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그러나 매장 직원은 소비자가 요청할 때만 달려가 필요한 설명을 해주거나 물건을 재진열하는 정도의 일만 한다.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는 소비자를 방해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애플 제품에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마케팅이다.
맞춤형 주문 서비스(CTO)도 고객의 구미를 당기는 역할을 했다. 고객이 컴퓨터를 주문하면 고객의 요구에 맞게 옵션과 액세서리를 갖춰 집까지 배달해준다. CTO와 함께 애플이 내건 또 하나의 서비스는 인그레이빙 서비스이다. 아이팟에 소비자가 원하는 문구나 그림을 새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애플이 계속 거침없이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경쟁사의 추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애플은 경영에 융통성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MP3 플레이어와 인터넷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애플이 고전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1억 대가 팔린 아이팟이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4만 대 판매에 그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삼성이 50만~60만 대를 판매한 것과 비교된다. 지역 특성을 고려한 마케팅이 약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애프터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아이팟 오작동 때문에 소비자 김 아무개씨는 애프터서비스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추가로 돈을 내고 제품을 교환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수리가 아닌 교환이 애플 본사의 일관된 애프터서비스 정책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제품 수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제품 가격의 3분의 2를 부담하고 새 제품을 구입하라는 것은 소비자로서 분통 터지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영국·일본 등의 온라인 스토어는 애플 본사가 관리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온라인 스토어는 그렇지 않다. 애플코리아의 공식 온라인 스토어라고는 하지만 아이코다나 링코 같은 재판매업자보다 상품이 수주일 이상 늦게 입고된다. 또 신제품 출시도 더딘 편이다.
애플이 고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온라인으로 음악 파일을 내려 받는 일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음악 파일이나 동영상 파일을 내려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 아이튠스가 우리나라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10년 전 우리나라에 애플코리아를 설립하면서 ‘헬로 코리아(Hello, Korea)’라는 카피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국내 MP3 플레이어 생산업체들은 애플을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아이팟의 지난해 MP3 플레이어 국내 시장점유율이 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장 조사 기관 GFK에 따르면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삼성이 28%, 레인콤이 2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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