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와 여우'가 싸우니 대박 나네
  • JES 제공 ()
  • 승인 2007.04.3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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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삼성 선동열·LG 김재박 감독 '라이벌 대결' 후끈...관중 증가에 '효자' 노릇

 
5시간, 12회 연장 혈투가 펼쳐진 지난 4월22일 삼성과 LG의 잠실 경기. LG 이대형이 12회 말 2루수 쪽 깊은 땅볼을 때리고 1루로 전력 질주했다. 누 앞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 감행할 정도로 살고자 하는 의욕이 가득했다. 하지만 1루심은 아웃을 선언했다. 김재박 LG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달려나와 거칠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내려졌고 경기는 끝이 났다.
전날 LG의 6연승 행진을 가로막은 삼성. 그리고 삼성의 사령탑은 오프시즌 동안 김감독과 격렬하게 설전을 펼쳤던 선동열 감독. 김감독은 정말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모자를 바닥에 집어던지는 과격한 모습까지 보인 것도 이러한 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 순간 삼성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던 선감독이 몹시 얄미웠을 것이다. 하지만 김감독은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삼성은 확실히 강하다. 투수력도 좋고 경험도 많고. 좋은 경기를 했다”라고 총평했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 단지 상대 팀에 대한 칭찬뿐이었을까.
마음속에는 ‘다음번에는…’이라는 승부욕이 요동치지 않았을까.
두 감독의 라이벌 의식은 선감독이 삼성 수석 코치로 부임한 2004년 이미 싹을 틔웠다. 그해 현대와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고 세 차례 연장 혈투를 포함해 10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다. 선동열 당시 수석 코치는 김응룡 삼성 감독에게서 마운드 운용의 전권을 위임받아 배영수·권혁·권오준 등 ‘선동열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노련한 현대 마운드에 결코 밀리지 않는 맞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결국 우승컵은 현대의 몫. 김감독은 현대를 한국시리즈 2연패로 이끌며 명장 대열에 올라섰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선동열의 자존심에는 큰 상처가 되었을 터이다.


두 감독은 ‘죽을 맛’, 팬들은 ‘살 맛’


 
2005년 선감독이 5년 계약으로 삼성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5년 안에 세 번 이상 우승하겠다”라고 밝힌 포부에는 ‘타도 김재박’의 기치가 숨어 있었다.
선감독의 부임과 함께 삼성은 공격적인 자유계약선수(FA) 영입으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공격 대상은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자금줄이 막힌 현대. 그해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의 공백은 심정수로 메웠고 당대 최고의 유격수 박진만도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심정수와의 재계약은 포기하고 있었던 김감독이지만 애제자 박진만마저 빼앗기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삼성은 선수를 수집하고 있다”라는 노골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성적이 최고 가치다. 선감독은 구단의 든든한 지원 아래 2년 연속 한국시리즈 패권을 거머쥐었고 2005년 7위, 2006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든 김감독은 2000년대 명문 구단을 이끌던 명장에서 ‘선동열에 대한 도전자 중 한 명’으로 전락했다.
재정난에 울분을 터뜨려야 했던 김감독이 2007년 날개를 달았다. 김감독은 지난해 말 현대를 떠나 LG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2006년 충격적인 꼴찌를 기록한 LG는 “전폭적 지원을 하겠다”라는 약조 속에 김감독을 ‘모셔’ 왔다. 뒤가 든든해진 덕분일까. 김감독은 삼성과 선감독을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LG와 계약하자마자 “돈을 주고 선수들을 모았는데 그 멤버로 우승 못하면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포문을 열더니 “삼성을 꼭 꺾겠다”라며 의도적으로 삼성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수년간 하위권에 머물러온 선수들의 패배 의식을 지워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어느새 부쩍 커버린 선감독을 누르고 싶은 개인적 목표 의식도 담겨 있는 듯했다.
무반응으로 대처하던 선감독도 집요한 김감독의 공세에 “그 정도 투수력이면 우승할 수 있다”라고 반격을 가했다. (김감독 영입 전에 결정된 사항이지만) 미국 무대에서 활약하던 봉중근을 영입했고 지난해 FA 최대어였던 두산 에이스 박명환도 데려왔다. 또한 삼성 2연패의 주역이었던 하리칼라도 LG 유니폼을 입었다. 이렇게 마운드를 높이기 위해 LG는 100억원 가까운 거액을 들였다. 선감독을 수세로 몰아넣던 ‘돈 문제’를 김감독도 짊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선감독은 전력 대 전력으로 김감독과 맞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단 공식적인 첫 맞대결에서는 선감독이 적지에서 6연승을 달리던 LG를 연패로 몰아넣으며 김감독에게 또 한번의 상처를 남겼다.
한 시즌 1백26 경기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프로야구 감독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여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신경전을 펼쳐야 하는 두 감독의 부담은 배가된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팬들은 즐겁다.
4월23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4월22일까지 정규 리그 56경기를 치르며 총 49만6천7백2명의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1만1천5백23명보다 8만5천1백79명(20.7%)이 늘어난 수치이다.


장외에서는 설전, 그라운드에서는 혈전


 
이러한 상승세에 두 스타 감독들의 라이벌 구도가 한몫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삼성과 LG의 경기가 펼쳐진 21, 22일 잠실구장에는 평균 2만4천9백78명(21일 2만4천6백17명·22일 2만5천3백39명)의 관중이 찾았다. 지난해 LG의 주말 평균 관중(1만5천7백66명)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 짧게는 김감독의 LG 부임, 길게는 선감독의 삼성 입단 이후 계속된 두 감독의 ‘라이벌 효과’가 가시적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
최근 LG의 성적이 부진해 그 정도가 약해지기는 했지만 삼성과 LG 팬들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이 흐른다. 4월23일 현재 두 팀이 나란히 2위 자리를 함께하면서 그 감정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첫 맞대결 1차전에서 삼성은 LG의 연승을 끊었고, 2차전에서도 뜻하지 않게 심판 판정의 도움을 받으며 연장 혈투의 승자가 되었다. 그 결과 선감독은 승자로 남았고 김감독은 도전자로 다음 대결을 준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LG 팬들은 올시즌 팀의 체질을 바꿔놓은 김감독이 삼성도 넘어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삼성 팬들도 선감독이 디펜딩 챔피언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앞으로 2007 프로야구 정규 시즌에서 양팀이 치러야 할 맞대결은 열여섯 차례. 매 경기 한 명의 감독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려야 한다. 어찌 보면 잔인한 얘기. 하지만 두 감독의 이런 피 말리는 승부가 올 시즌 프로야구를 흥행으로 이끌 최적의 카드다. 4백만 관중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한국야구위원회는 이렇게 외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김감독·선감독이여, 장외에서는 설전을, 그라운드에서는 혈전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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