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입 ‘째지게’ 생겼네
  • 김 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5.0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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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낙마로 범여권 대선 구도 장악 가능해져…30%대 지지율도 큰 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출마 포기로 대선 구도가 간결해졌다. 범여권이 갈망해온 ‘외부선장론’이 일거에 함몰되었다. 정운찬 같은 블루칩이 퇴출되는 마당에 ‘변호사 출신 시민운동가’나 ‘성공한 CEO’ 정도로 명함을 내밀 얼굴 두꺼운 제3의 후보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눈만 뜨면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이른바 자천 타천 대권 후보들의 쟁투로 12월 대통령 선거 구도가 압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 전 총장이 퇴장한 날, 노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화합 기원 대법회에서 마이크를 잡자마자 “입이 째지려고 한다” “분위기 참 좋다. 편안하고 따뜻하다” “운이 나쁜 것 같지 않다. 된고비는 넘어간 것 같다”라고도 했다. 노대통령은 딱히 정 전 총장 낙마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의 출마 포기, 그에 앞서 한나라당의 4·25 재·보선 참패 같은 정치 환경의 급변은 확실히 노대통령에게 엔도르핀이 돌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30%대를 넘나드는 지지도는 잘 차려진 밑반찬이다.
노대통령의 ‘입이 째지는’ 상황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12월 대선에서 후계자를 내세워 참여정부를 승계할 정권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점점 익어가고 있다. 정말 노대통령은 ‘운이 나쁜 것 같지 않다’. 정 전 총장 낙마로 범여권의 대선 구도가 서서히 노대통령 손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통합신당파는 정 전 총장 퇴출로 사실상 대선 참여 의욕을 잃었고, 민주당도 독자 후보가 없다. 정 전 총장만 바라보던 열린우리당 각 계파들도 목표를 상실했다. 정운찬 텐트에 합류하려던 의원들은 싫으나 좋으나 열린우리당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은 노대통령에게 ‘처분’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정 전 총장이 출마를 포기한 지 이틀 만에 김근태·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탈당 의사를 밝혔다. 두 사람은 열린우리당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정 전 총장이 출마를 선언하면 의원들을 이끌고 ‘제3 지대’에 합류했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역으로 정 전 총장이 주저앉자 탈당을 서두르고 있다. 그것은 열린우리당이 다시 노대통령의 장중으로 빨려 들어가 자신들의 퇴로가 막히기 시작했다는 불길함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노대통령의 FTA 드라이브에 딴죽을 걸었거나, 재를 뿌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노대통령의 의중에 누가 차기 대권 후보로 자리 잡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훤히 안다. 앉아서 고사당하기보다 몸부림이라도 쳐야 할 처지이다. 정동영 전 의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대통령이 나까지 공격할 것”이라고 예감했다.
 
들뜬 세력이 있다면 열린우리당 내 친(親)노대통령 세력이다. 정 전 총장이 주저앉자마자, “충청도가 비었다”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무슨 소리냐. 이해찬이 있다”라고 나섰다. 그 틈새로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김혁규 의원·김두관 전 행정자치부장관 등이 보인다. 하나같이 노대통령 직계이다. 범여권에 관한 한 12월 대선이 철저히 ‘노무현 연출’로 치러질 것이라는 예고다.
열린우리당 탈당파가 노대통령의 역할을 수용할지 여부를 의심하는 것도 사실상 무의미하다. 우선 그들에게는 수단이 없다. 정 전 총장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얘기다. 손학규 전 지사가 남아 있다지만 한나라당을 이탈한 정치인을 앞세우기도 쉽지 않다. 혹시 손 전 지사를 띄울 수 있는 ‘치어 보이’들이 자원한다면 흥행판을 한번 벌여볼 생각도 없지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정 전 총장만한 카드는 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 열린우리당을 벗어날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이나, 이미 탈당한 천정배 의원 중 하나를 후보로 내세워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들이 손 전 지사와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면 좋지만 그것이 가능할지 확신도 안 선다. 결국 노대통령이 주도할 열린우리당 후보 중심으로, ‘대통합’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합이 아니라 ‘도로 열린우리당’에 불과하다.


열린우리당 지키며 ‘후계자’ 내세울 듯


 
노대통령이나 그 직계들이 이미 만신창이가 된 탈당파들을 만나줄지도 의문이다. 노대통령은 탈당파들을 향해 “당부터 깨고 보자는 것은 파괴의 정치”라고 비난했다. 머리만 숙이다 자칫 정치판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 노대통령에게 이들은, 2002년 노후보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추락하자 ‘후보 교체’를 주장하며 흔들어댔거나 한나라당으로 이탈한 국회의원들과 다를 바 없다. 탈당파들은 이래저래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까지 엎드려 있다가 국회의원 배지나 달 궁리를 하는 수밖에 없게 된 상황으로 몰렸다.
한명숙 전 총리도 ‘5월 중 대권 선언’을 예고했다. 여의도 국회 앞에 사무실을 내고 참모들도 대거 포진시켰다. 4월30일 코리아리서치센터의 범여권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그는 10.2%로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17.5%의 손학규 전 지사. 줄곧 2위를 달려온 정동영 전 의장(8.2%)은 3위로 말려났다. 이변이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전체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는 2.3%로 6위를 기록했다. 미미한 수치이다. 그러나 범여권 고정 지지 계층에서는 그의 가능성이 점점 높게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노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총리”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는 특히 박근혜 전 대표의 가장 유력한 대항마로 꼽히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 역시 북한으로, 미국으로 부산하다. ‘평화-개혁’이 그의 컨셉트이다. 이 전 총리는 사실상 노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만났다. 남북 정상회담도 언급했다. 최근에는 남북한과 미·중 4개국 정상회담을 발설하고 있다. ‘8월 중’이라는 시기도 언급했다. 이 전 총리와 함께 북한을 다녀온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은 이 전 총리를 ‘최고의 대선 후보감’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이 전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깝다. 평양 방문도 DJ의 재방북 문제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올 정도이다. 특히
 
그는 충청도 청양 출신이다. 충청도와 DJ의 결합은 충분히 위력적이라고 여길 수 있다.
김혁규 의원의 방북도 흥미롭다. 그는 노대통령이 재임 중 국무총리를 시키지 못해 못내 아쉬워한다는, 그야말로 직계이다. 그는 기업인들을 이끌고 평양에서 경제 관련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다음 대선이 ‘북한과 통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행동이다. 그의 한계는 자생력보다는 ‘부르심’을 고대하는 타입이라는 점이다.
이 밖에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도 ‘대망론’에 몰입해 있을지 모른다. 아마 노대통령의 신뢰로 따지자면 유장관이 ‘0순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대통령이 완벽하게 대선판을 장악하고 승리를 확신한다면, 가장 먼저 유장관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5월2일 노대통령의 청와대 브리핑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두 가지의 분명한 메시지가 보인다. 첫째는 열린우리당을 굳건하게 지키겠다는 것이다. 자신감도 있어 보인다.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정치에서 중요한 건 후보보다 정당”이라고 했다. 또 4·25 재·보선에서의 민주당-국민중심당 승리를 ‘지역주의 산물’로 규정했다. 민주당과의 통합은커녕 아예 ‘정계 개편’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이 지점에서는 아들 홍업씨를 출마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틈이 보인다. 열린우리당을 사수하겠다는 것이 제1 순위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에게는 현재 자신의 직계 후보들의 지지율이 2~3%대에 머무르는 것 정도는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누가 후보이든 간에 전체를 놓고 보는 것이며 당이 순리로 정치하는 모습을 보여야 당내 후보도 뜨고, 당외 인사도 들어오고 정치 원칙을 지키면 금방 뜬다”라고 말했던 그다.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의 지지도 합계가 60%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 뭐 대수냐는 식이다.


대선은 노무현 대 한나라당 후보의 혈투?


 
두 번째 메시지는 ‘알곡과 쭉정이를 확실하게 가르겠다’는 것이다. 그는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을 향해 “책임을 따진다면 이미 당을 깨고 나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여전히 ‘통합 노래’를 부르며 떠날 명분을 세워놓고 당을 나갈지 말지 저울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있다”라고 폭격을 퍼부었다. 같은 날 김근태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은 해체하고, 민주당도 담을 허물어야 한다”라며 열린우리당 해체를 주장했고, 정동영 전 의장도 “5월은 정치권 전체에 빅뱅이 불가피하다. 그걸 위해서 내가 할 역할은 하고자 한다”라고 주장했다. 노대통령이 장악하기 시작한 열린우리당의 해체 없이는 자신들의 활로가 없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두 사람은 노대통령이 고건 전 총리를 “실패한 인사”라고 했고, 자신들에 대해 “링컨식 인사를 흉내 내 두 사람을 장관에 기용했는데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라고 했을 때 결단을 내렸거나, 꼬리를 감추었거나 양자 택일했어야만 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을 밟고 올라서려는 정치인 가운데 성공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라고 단언했다. 두 사람이 곧 여기 해당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말이 좋아 탈당 감행이지, 실질적으로는 내쫓기는 모양세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아들들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지지도도 한 자릿수에 불과한 ‘식물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다르다. 30%대의 안정적 지지율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루하루 국민들 반응도 다르다. 그는 “그동안 여러 차례 공격받고 참아왔지만 앞으로는 하나하나 해명하고 대응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노대통령이 누리는 30%대의 지지율은 ‘외부의 공격에 참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무기다. 2~3%의 보잘것없는 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근거이다. 거기에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이 있다. 그는 2007년 대선 프로젝트를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갈 것이다. 12월 대선은 범여권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 간의 싸움이 아니다. 노대통령과 한나라당 후보 간 혈투가 될 소지가 크다. 노무현 총감독-연출의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시나리오가 그 얼개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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