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탈출’ 줄 잇는 미국 '알파 맘'들
  • 조홍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0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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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육아 위해 ‘집으로’…정부, 대책 없어 ‘난감’

 
세계화의 지지자나 반대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한 가지는 여성의 노동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다. 여성의 노동력은 경제 성장과 세계화의 핵심 요소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경제 정책을 입안할 때 여성 노동력을 주요 요인으로 반영한다. 흥미로운 것은 다국적 투자자들이 여성 노동력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융통성이 첫째 매력이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남성보다 더 융통성을 보이고 창의력도 발휘한다. 더욱 금상첨화인 것은 노조 활동이 온건해 투자자들로부터 환영을 받는다. 물론 여성들의 노조 운동이 더 극렬한 경우도 있다. 여성의 저임금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1980~90년대에 여성들의 취업률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증가했다. 이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 욕구를 높여주어 결과적으로 성의 평등화에 기여했다. 다만 일부 유럽과 아시아에서 여성 취업이 증가하면서 여성의 신체가 성의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성단체들이 병폐를 근절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으나 여성 취업의 부작용이 주로 가난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다.
미국은 인권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교육·정치·보건 면에서 남녀 평등 순위는 세계 34위, 여성의 입법 참여율은 68위다. 여성의 급여는 남성의 77%, 저임금 직종의 98%는 여성의 차지다. 대기업 임원의 여성 비율은 15% 미만이다. 이런 격차 때문일까. 요즘 미국에서 아이를 가진 여성들이 직장을 떠나고 있다. 특히 나이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이 이직을 많이 한다. 기혼 여성의 취업도 줄었다. 이 문제가 아직 대선 이슈로 떠오르지는 않았으나 유권자들은 민주당 대권 주자 힐러리 상원의원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지켜보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취학 전 아이를 둔 주부들의 취업률은 60%이다. 2차 세계대전 전인 1940년의 28%보다는 크게 늘었지만 1997년보다는 4% 줄었다. 엄마들의 이직은 2000년 경기 침체 때 시작되었다. 하지만 경제가 살아난 지금도 이직이 계속되는 것이 문제이다.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자의적 이직에 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젊은 엄마들이 직장을 탈출하는 원인은 무엇이며 그 대책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헤더 부시 소장은 이런 이직 붐을 이변으로 표현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엄마들의 이직이 중단되는 것이 정상인데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결혼한 엄마들은 왜 일터를 떠나는가? 노동통계국 보고서에 의하면 갓 엄마가 된 상위 20%의 여성들이 일을 제일 적게 하고 많이 이직한다. 소득이 높은 엄마들이 이직할 자유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대학을 중퇴하거나 임신을 포기하는 식으로 무엇인가를 단념하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쉬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늘 쉬운 것만 선택하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직장과 가사의 부담이 너무 커서 엄마들의 이직이 일어난다는 분석이 나왔다. 근무 시간이 길어져 직장 생활에 매력을 잃었다는 얘기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일반 여성들이 주 평균 42.2시간 일하는 데 비해 전문직 여성들은 45시간 일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전문직 여성들이 한때 주 80시간 일했던 적도 있다. 소득이 적은 엄마들의 이직으로 인한 노동 손실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소득 상실이 가계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이 추세는 1997년 이후 변하지 않았다.

 

여성 인력 풀 고갈될까 걱정


지난 10년간 주부들의 취업은 증가해왔다. 변한 것은 1965년부터 육아에 쏟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주부의  취업 기회가 많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주로 여성의 짐으로 돌아오는 육아 시간이 증가하면서 여성 취업률이 한계점에 도달했을지 모른다고 시사했다. 엄마의 역할이 주는 압력은 엄청나다.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편이다. 여성들이 돈 버는 기계로 전락했다고도 한다. 심지어 엄마가 직장에 있는 동안 탁아소에 맡겨진 어린이들의 행동이 나빠진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미국 국립아동건강연구소는 엄마의 취업으로 인해 어린이가 빗나갈 확률은 겨우 1% 상승한다고 반박했다.
겨우 1%? 이에 대해 일부 엄마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1% 때문에 하버드로 갈 수도 있고, 비행 청소년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엄마들이 아기를 돌보는 시간은 1965년 주 10.2시간에서 요즘 14.1시간으로 늘었다. 훌륭한 자식을 만드는 데는 엄마의 보살핌이 소중하다는 얘기이다. ‘100점 엄마(Alpha Mom)’ 운동도 그 일환이다. 이 운동은 대학 교육을 받은 엄마들이 직장 경험을 살려 자녀 교육에 헌신하겠다는 다짐이다. 돈을 덜 벌더라도 자식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하겠다는 모성애의 발로이기도 하다. ‘알파 맘’은 어느새 브랜드가 되었다. 광고계는 미국 가계 지출의 80%를 이 엄마들이 결정하는 것으로 보고 여기서 나오는 잠재 구매력 1조7천억 달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100점 엄마 타령은 그러나 저임금 엄마들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여성의 이직은 방관할 일이 아니다. 여성의 사회 참여는 능력을 활용할 기회를 주고 사회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일단 이직하면 다시 취업하기 힘들고 종전의 지위를 회복하기도 어렵다. 전문직 여성들도 한 번 직장을 떠나면 복귀율은 40%에 불과하다.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들이 더 많이 직장을 이탈하는 현상은 여성 자원의 활용에 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다음 세대의 여성 인력 풀이 고갈될지도 모른다. 대책은 없는가? 일부 여성 단체들은 근무 시간의 융통성과 유급 양육 휴가제를 제의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 노동자들의 이직을 막지는 못한다. 남성들이 태도를 바꾸어볼 만하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여성들은 직장 근무와 육아 두 가지 일을 한다. 육아는 남편도 할 수 있으나 주로 아내의 몫으로 돌아온다. 이런 인식이 변화할 조짐은 없다. 심지어 미래 세대 남성들은 가사를 위해 직장을 희생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한다.
단기적 대책으로는 세제 개혁을 생각해볼 수 있다. 대다수 미국 가정에서 아내의 소득은 남편보다 적다. 부부 합산 소득 과세가 실시된 이후 아내의 소득은 남편의 소득에 추가되어 거의 50%가 세금으로 나간다. 세금을 빼면 엄마의 소득은 가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마의 소득을 별도로 과세하면 이들의 이직을 조금은 완화할 것이라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희망이다. 
19세기 독일 정치인 클라라 제트킨은 여성의 취업에 부정적 견해를 피력해 욕을 먹었다. 그는 여성 노동자의 장점으로 싼 임금과 순종을 들었다. 저임금 여성의 취업이 늘면 늘수록 남성의 임금도 낮아지며 따라서 남성들은 자신의 급여 수준을 낮추거나 여성 취업을 막으라고 했다. 현대에서 여성 취업은 불가결의 요소다. 자식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을 미국 사회는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환영할 수도, 말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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