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결정판’ P램을 잡아라
  • 이헌 (고려대 교수·신소재공학과) ()
  • 승인 2007.05.0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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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코제나이드 이용한 상변화 메모리 소자 개발 경쟁 치열…속도·용량 등 ‘만능'

 
칼코제나이드란 황·셀레늄·텔루륨 등의 칼코젠 원소의 화합물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칼코제나이드 재료로는 게르마늄-안티모니-텔룰라이드(GST, Ge2Sb2Te5)나 은-인듐-안티모니-텔룰라이드(Ag-In-Sb-Te)가 있다.
보통의 고체 재료는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금속 같은 결정질 재료와 원자 배열이 불규칙적인 유리 같은 비정질 재료로 나눌 수 있다. 칼코제나이드 재료는 이 결정질 상태와 비정질 상태를 모두 오갈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칼코제나이드 재료를 상변화 재료라고 부르기도 한다.
칼코제나이드 재료가 가열되어 융점에 다다르면 원자 배열이 흐트러지며 녹게 되는데 이때 재료를 급히 냉각시키면 원자의 규칙적 배열이 깨진 비정질 상태가 되고, 이러한 비정질 상태의 재료를 다시 가열하면 흐트러진 원자 배열이 재정렬되어 결정질 재료로 돌아온다.
다시 말해 칼코제나이드 상변화 재료는 외부의 조작에 따라 결정질에서 비정질로, 비정질에서 결정질로 자유롭게 변화하는데 이때 재료가 결정질인지 비정질인지 알 수 있으면 각각의 상태를 ‘1’과 ‘0’에 대응시켜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 가능하다.
이 상변화 재료의 특성을 이용해 레이저와 결합시키면 광학 기억 저장 소자로 사용할 수 있다. 레이저로 강하고 짧은 펄스를 상변화 재료에 쏘여주면 재료가 급격히 가열되어 용융되었다가 냉각되면서 비정질 상태로 변화하고, 다시 비정질 상태의 칼코제나이드 재료를 약하고 긴 펄스의 레이저로 쏘여주면 비정질 상태의 재료는 용융점 이하의 온도까지 서서히 가열되어 원자 배열이 규칙적인 상태로 돌아가 결정질 상태로 된다.
상변화 재료는 결정질일 때와 비정질일 때에 따라 여러 가지 물성이 변하게 된다. 광반사도도 그중 하나이다. 재료의 상태가 변화하지 않을 정도의 빛을 일정한 강도로 쏘여주면 재료가 결정질일 경우에는 반사율이 높으므로 많은 양의 빛이 반사된다. 하지만 재료가 비정질이라면 재료의 반사율이 낮아 적은 양의 빛만 반사하게 되어 반사되는 빛의 양으로부터 재료 상태가 결정질(1)인지 비정질(0)인지 알 수 있다. 즉 레이저 소자를 이용해 ‘0’과 ‘1’의 디지털 데이터를 칼코제나이드 재료에 쓰고 지우고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CD-RW 같은 광저장 매체의 작동 원리이다.
한편 저항기(resistor) 형태로 가공된 칼코제나이드 재료에 레이저 소자 대신 전기적으로 펄스를 주어 상변화를 일으켜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꿈의 반도체인 ‘상변화 메모리’의 작동 원리이다.
상변화 메모리, 즉 PRAM (Phase-change Random Access Memory) 소자에 대한 최초의 논문은 1970년 미국의 오브신스키라는 과학자에 의해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지에 처음 발표되었다. 그는 1985년 칼코제나이드 상변화 재료를 광학 저장 매체로 상용하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했으며 니켈(Ni) 전지, 태양전지, 광 메모리 재료 등의 분야에서 2백50개가 넘는 미국 특허를 취득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후 1997년 미국 굴지의 DRAM 제조회사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타일러 로레이 부회장이 오브신스키가 만든 오보닉스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PRAM이 반도체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99년에는 인텔사가 오보닉스에 투자하고 PRAM에 대한 라이선스를 맺음에 따라 PRAM은 차세대 메모리 소자로서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삼성전자, 유럽의 ST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도 본격적으로 PRAM 연구에 뛰어들었다.
반도체 메모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PC의 예를 들어보자. 중앙연산장치인 CPU의 계산을 돕기 위한 캐시 메모리로서는 빠른 속도가 요구되는 SRAM이, 대용량의 정보를 값싸게 저장하기 위해서는 DRAM이, 그리고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보존되어야 하는 PC 주변 기기들을 위해서는 비휘발성의 플래시 메모리가 각각 사용되고 있다.
만약 어떤 새로운 메모리 소자가 SRAM처럼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고, DRAM처럼 값싸게 대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며, 플래시 메모리처럼 비휘발성의 특징을 갖는다면, 그리고 가격 경쟁력도 갖춘다면 모든 메모리 반도체를 대체하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것이다. 이러한 꿈의 메모리 반도체로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것이 바로 칼코제나이드 상변화 재료를 이용한 PRAM이다.


한국도 정부 지원으로 학계 등에서 연구 박차


 
앞에서 설명한 광저장 매체와 마찬가지로 칼코제나이드 상변화 재료로 만든 저항기에 강하고 짧은 전기적 펄스를 흘려주면 강한 저항열이 발생되고 칼코제나이드 재료는 급격히 가열되어 융점에 다다라 녹게 된다. 그리고 급랭되어 원자 배열이 흐트러진 비정질 상태로 된다. 비정질 상태의 상변화 재료에 상대적으로 약하고 긴 전기적 펄스를 주면 상변화 재료는 가열되지만 융점에는 다다르지 못한 채 원자들의 배열을 정렬시켜 비정질 상태를 결정질 상태로 변화시킨다.
즉 칼코제나이드 상변화 재료로 이루어진 저항기에 인가되는 전기적 펄스를 조절해 재료의 상태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상변화 재료의 결정 상태가 변화함에 따라 재료의 전기 전도도도 같이 변화한다. 원자가 정렬된 결정질 상태에서는 전자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전기 전도도가 높으며, 원자의 정렬이 흐트러진 비정질 상태에서는 전자의 이동이 방해받게 되어 전기 전도도는 낮아진다.
이를 이용해 상변화 재료 저항기에 재료의 결정 상태가 변하지 않을 정도로 약한 전기적 펄스를 인가하게 되면 재료의 결정 상태가 결정질인 경우 전기 전도도가 높고 전기 저항이 약하므로 전기적 펄스는 전압 강하 없이 상변화 재료 저항기를 통과할 것이다. 하지만 재료의 결정 상태가 비정질이라면 비정질 재료의 높은 전기 저항도로 인해 인가 전 전기적 펄스의 전압이 떨어진다.
따라서 상변화 재료 저항기를 통과한 전기적 펄스의 전압을 측정하면 재료의 결정 상태를 쉽게 알 수 있다. 상변화 메모리는 구조가 간단하므로 DRAM이나 플래시 메모리같이 초고집적도로 만들 수 있고 SRAM에 이르는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다. 상변화 재료의 결정 상태는 외부에서의 전기적 펄스 인가 없이는 변화하지 않으므로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비휘발성을 갖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읽고 쓰는 데 소용되는 에너지가 높지 않으므로 전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휴대용 정보통신 기기를 중심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판도를 바꿀 신제품으로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상변화 메모리에 관한 최초의 아이디어는 미국 오브신스키 박사에게서 나왔으며 이는 일련의 특허를 통해 보호받고 있다.
세계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PRAM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연구 주제이다.
PRAM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2002년도부터 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 등의 지원으로 시작되어 연구소에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학계에서는 고려대·연세대·서울대·한양대 등이 주축이 되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체에서는 삼성전자가 연구를 하고 있다.
비록 원천 아이디어는 국내에서 나오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수년 늦게 시작되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정 기술과 엔지니어들의 열정이 맞물려 머지않아 쾌거를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시의적절한 정부의 지원과 산업체-연구소-대학교를 아우르는 협동연구가 결합되어 PRAM의 국내 기술은 이미 세계 최정상급에 올라서 있다.
삼성전자는 인텔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반도체 회사들을 제치고 1~2년 내에 PRAM 소자의 양산화를 이룰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칼코제나이드 상변화 재료를 이용한 꿈의 메모리 반도체 PRAM은 앞으로 국내 기술, 국내 회사에 의해 상용화되어 우리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게 될 것이다. DRAM을 뛰어넘고, 플래시 메모리를 초월하는 새로운 반도체 신화는 이미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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