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의 ‘마력’에 빠져봅시다
  • JES 제공 ()
  • 승인 2007.05.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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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결혼>(김성욱 감독)은 김수미의 웃음 필살기와 내공이 잘 드러난 로맨틱 코미디다. ‘안 봐도 비디오’일 것 같은 진부한 소재와 얼개이지만 짜임새 있는 드라마와 배우들의 곁눈질하지 않은 연기 덕에 비틀거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일등공신은 역시 김수미. 부동산 열풍 덕에 강남 졸부가 된 그녀는 말끝마다 콩글리시를 구사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복부인 말년 역을 유려하게 소화해냈다. 어디까지 김수미이고 어디부터 말년인지 헷갈릴 정도의 호연이다. 그녀는 건배할 때마다 “치어스(Cheers)” 대신 “찰스”를 크게 외치고, 호주산 와인을 마시며 “역시 와인은 프랑스 명품 샤토가 최고”라며 금세 드러날 바닥을 내보인다.


임채무의 유연한 연기 돋보여


 
김수미가 돋보이는 것은 단순히 순발력으로만 웃기려 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오! 해피데이>에서 욕쟁이 할매를 시작으로 영화에 노크한 그는 <위대한 유산>과 <슈퍼스타 감사용>, <맨발의 기봉이>에서 가슴 시린 어머니 연기로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얻어왔다. 말년과 사사건건 으르렁거리는 풍수지리가 지만 역의 임채무도 힘을 주어야 할 곳과 빼야 할 곳을 적절히 안배하며 중견 배우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에서 만나 호감을 갖게 된 은호(유진)와 기백(하석진). 럭셔리의 상징인 성형외과 전문의인 남자와 닥종이 공예가인 여자는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지만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말년의 눈에 지만은 촌스럽기 그지없는 한심한 인물이고, 지만에게 말년은 돈밖에 모르는 속물로 비쳐질 뿐이다.
이질적인 문화 때문에 겪는 양가의 좌충우돌과 불협화음은 이 영화의 웃음 저수지 구실을 한다. 나이트클럽과 태껸, 벼루와 루이비통 핸드백 등 이들의 취향과 수집품도 1백80° 다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반된 문화와 사람이 서로 스며든다는 것이 이 영화의 흥미가 출발하는 지점이다.
리턴 매치하듯 김수미와 임채무가 서로의 집을 방문하는 공방전은 가장 큰 폭소 뇌관이 묻혀 있는 하이라이트다. 비데를 본 적 없는 지만이 말년의 집에서 “수도가 터졌다”라며 봉변을 당하고, 말년은 “서울특별시에 아직도 이런 가옥이 있냐. 쥐 나오겠다”라며 몸서리를 친다.
 
아이러니한 것은 말년이 골프장 건설을 위해 매입하는 땅 중 일부가 지만의 소유라는 사실. “죽어도 안 판다” “알박기 그만두라”며 부딪쳐온 두 사람은 후반부 그 땅에 감춰진 비밀을 알게 된 뒤 서로를 이해하며 손을 내민다.
하석진도 신인치곤 무난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유진은 요즘 나온 가수 출신 연기자 중 두각을 보일 만큼 정갈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김수미와 임채무의 철없는 딸과 동생 역을 맡은 안연홍·윤다훈도 입담과 재치를 보태며 힘을 실어주었다. <스파이더맨 3>와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사이에 개봉해 한국 토종 영화의 매운맛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12세 관람가를 원한 영화사의 바람과 달리 강남과 강북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15세 등급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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