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한 ‘첩혈쌍웅’ 사생결단 ‘샅바 전쟁'
  • 김 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5.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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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갈등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내놓은 경선 규칙 중재안은 두 사람의 혈투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다. 유리한 고지를 미리 확보하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이 이들의 대립을 더욱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대결은 자칫 10, 11월까지 지리하게 이어질지 모른다. ‘경선 목장의 결투’ 결말은?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멀고도 먼 사이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내놓은 경선 중재안은 두 사람의 혈투에 기름만 더 부은 꼴이다. 당장 한나라당이 깨지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어느 쪽도 탈당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여론조사 수치가 이를 말해준다. 5월5일 조선일보가 한국TNS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박근혜 전 대표가 탈당해 출마하면, 지지율이 이명박 25%, 박근혜 15%, 손학규 14%다. 이명박 전 시장이 탈당해 출마할 경우는 어떠한가. 이명박 35%, 박근혜 30%, 손학규 14%다. 언뜻 보면 이 전 시장은 탈당해도 대통령이 될 것 같아 보이지만 이는 함정이다. 5%포인트 앞서는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다. 게다가 최근 들어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하락세이다. 그가 돈과 조직을 앞세워 정당을 급조한다 해도 지지율 40%인 한나라당을 전복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전 시장 역시 탈당을 생각하기 힘들다. 결국 이들의 목표는 상대 후보를 꺾거나 한나라당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사람은 때로는 당을 협박하고 때로는 국민 여론에 호소하며 10월에 끝날지 11월이 끝날지 모르는, 긴 전쟁에 돌입했다.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을 두고 싸우는 두 사람의 혈투는 제1장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경선은 개그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선 후보 경선 규칙을 둘러싸고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강재섭 대표가 벌이는 ‘난장’이 그렇다. 누구 하나 더하고 덜하고가 없다. 경선 규칙 때문에 한나라당이 깨지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다면 그 책임을 세 사람이 분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등 떠밀다 실패한 박근혜


경선 규칙만 두고 보자. 처음부터 박 전 대표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한 반면, 이 전 시장은 ‘몽니’를 부리는 것처럼 되어 있다. 박 전 대표의 “세 차례나 양보했는데 또 뭘 양보하라는 말이냐”라는 되풀이·강조 어법이 먹힌 결과다. 특히 “고스톱도 도중에 룰을 바꾸지 않는데 하물며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규칙을 바꾼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라는 주장도 나름으로 설득력 있어 보인다. “민심 반영 비율을 높여야 본선 경쟁력도 생긴다”라는 이 전 시장의 반격은 결정된 룰을 깨기 위한 핑계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경선 규칙에 관한 한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은 뒤죽박죽이다. 예를 들면, 지난해 여름만 해도 박 전 대표는 ‘조기 경선’을 주장했고, 이 전 시장은 “경선을 늦추자”고 요구했다. 박 전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서 습격을 당한 후 “대전은요?”라는 말 한마디로 지방선거를 압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가 대표를 그만두고 테러당한 얼굴의 상처 관리에 들어가면서부터 이 전 시장의 맹렬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박 전 대표 입에서 ‘조기 경선’ 주장이 나왔다. 유리할 때 후딱 해치우려는 계산에서였다. 그 후 이 전 시장은 여론조사에서 앞서자, 여론조사 결과 반영 비율을 높이자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다. 그러자 박 전 대표가 ‘원칙 준수’로 돌아선 것이다.

 

‘친박’에서 ‘친이’로 전향한 강재섭 대표


4·25 재·보선 참패는 한나라당 경선 규칙을 둘러싼 시비에 기름을 더 끼얹는 꼴이 되었다. 기대했던 대전 서구 을 국회의원 보선에서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에게 참패하자 “민심을 잘못 읽었다”라는 공격이 이 전 시장측으로부터 쏟아졌다. 처음 타깃은 강재섭 대표였다. 강대표는 공천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하는 처지였다. 이 전 시장측의 ‘강대표 흔들기’는 친 박근혜인 강대표를 낙마시켜 불리한 당내 경선 구도를 뒤집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강대표 체제 결사 보호로 이 전 시장측의 시도는 실패했고, 강대표는 자리를 지켰다. 박 전 대표 진영은 기고만장했고, “이명박을 꺾었다”라는 승전보를 전하는 데 바빴다. 한편에서는 “그 정도면 이 전 시장이 당을 떠날 만도 했는데…”라는 아쉬움도 흘러나왔다. 결국 박 전 대표측의 강대표 체제 사수는 ‘이명박 등 떠밀기’였다.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의 ‘강대표 흔들기’를 온몸으로 저지한 이유는 분명하다. ‘친박’이어서다. 적어도 며칠 전까지는 그랬다. 지난해 대표 경선에서 이명박 전 시장 진영의 이재오 의원이 거의 대표가 될 뻔했지만, 이를 뒤집고 오늘의 강대표를 있게 한 것은 전적으로 박 전 대표의 힘이었다. 박 전 대표측이 강대표에게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상황이 반전되었다. 이 전 시장측이 끈질기게 요구한 대선 후보 경선 규칙과 관련해 강대표가 박 전 대표 입장을 무시하고 이 전 시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선 후보 선거인단 확대 및 전국 동시선거, 여론조사 결과 반영 방식의 일부 조정이 골자다. 그 중에서도 이 전 시장이 줄곧 요구해온 ‘민심’ 반영 비율을 높인 것이 핵심이다. 이 전 시장은 중재안이 나오자 불과 몇 시간 만에 수용키로 한 반면, 박 전 대표측에서는 “강대표가 배신했다”라는 불만이 흘러나왔다.
강대표는 13대부터 17대까지 내리 5선을 하는 동안 항상 ‘힘’을 좇았던 인물이다. 월계수회 2인자였던 그는 박철언 의원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탈당했을 때, 동반 탈당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빚어진 한나라당 공천 파동 때도 마찬가지였다. TK(대구·경북)의 맹주로 불려온 고 김윤환 전 의원이 공천 탈락에 반발해 탈당하면서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 나섰지만 그는 김 전 의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이번에도 그는 여론조사 2위 후보가 아닌 1위 후보를 선택했다.
실제로 강대표 중재안의 시뮬레이션 결과도 이 전 시장에게 유리하게 나왔다. 이 전 시장 진영이 “수백 표밖에 유리하지 않다”라고 물러났을 정도이다. 박 전 대표는 “다 어그러졌다. 기가 막히다”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강대표는 1주일 사이에 ‘친박’에서 ‘친이’로 ‘딱지’가 바뀌었다. 이 전 시장의 “수백 표밖에 유리하지 않다”라는 주장에 대해 오죽했으면 박 전 대표는 “차라리 (이 전 시장에게) 1천 표를 더 드릴 테니 원래 합의된 룰(8월-20만명)대로 하자”라며 치고 나왔을까. “강대표가 이 전 시장측에 포섭되었다”라는 극언도 쏟아졌다. 강대표 유임을 눈감아준 이 전 시장측에 대한 ‘보은’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현재 박 전 대표 캠프에서는 임시 전당대회 얘기가 돌고 있다. 대표를 다시 뽑겠다는 것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전격 탈당했다. 대선 후보 경선을 염두에 둔 박의원이 후보 경선 규칙 개혁을 요구했지만 이회창 총재가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의원은 당시 △민심 대 당심 반영 비율 75% 대 25% △집단 지도 체제 도입을 요구했다. 박의원이 그때 탈당해 만든 조직이 ‘미래연합’이다
5년 후, 이명박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도 대선 후보 경선 규칙 때문이다. 그런데 5년 만에 박 전 대표 입장이 1백80° 뒤집혔다. 민심 반영 비율을 당초 안보다 높이자는 이 전 시장측의 요구를 ‘걸레’라고 일축했다. 원칙을 지킨다는 명분이다. 그러다 난데없이 강대표가 내놓은 ‘중재안’과 맞닥뜨려졌다. “원칙을 지키라”며 이 전 시장의 등을 떠밀던 입장도 역전되었다. 이 전 시장은 이미 중재안 수용으로 ‘대의’에 올라탄 상황이다.

 
박근혜, ‘탈당 카드’는 쓰지 못할 듯


박 전 대표가 여론에 밀려 자칫 ‘몽니’의 주인공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 전 대표는 급기야 ‘경선 불참’ 카드까지 내밀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배수진이라는 판단이다. 박 전 대표가 또다시 탈당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결국 한나라당 내에서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싸워야 한다. 이 전 시장과 가까운 홍준표 의원이 “만석꾼(이 전 시장)이 쌀 한 섬 더 가지려 해선 안 된다”라고 일갈한 것이 위안이 될지 모른다. 홍의원이 경선 시기 연기를 요구한 것도 당내 호응에 따라서는 호소력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후보 검증으로 이 전 시장을 다시 공격해 ‘재기’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사실, 이번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은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 사이에 지루하게 계속될 혈투의 서곡에 불과하다. 박 전 대표는 여론과 싸우면서 ‘이 전 시장 밀어내기’를 계속 할 것이다.
문제는 이 전 시장의 지지율에 3분의 1 정도의 ‘거품’이 있다는 점이다. 이 전 시장의 지지율에는 호남표, 2002년 노무현 후보를 찍은 표, 개혁·진보 성향의 유권자 표가 30%가량 더해져 있다. 이 표는 여권 후보가 가시화되는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마침 박 전 대표의 강재섭 대표 중재안 거부로 8월 한나라당 경선은 물 건너갔다. 빨리 이루어져야 10월이다. ‘시간의 여신’이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없지 않고, 이 전 시장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박 전 대표의 선택은 ‘탈당’이 아닌, 시간과 여론과의 싸움이다.
이 전 시장측의 논리는, 이 전 시장측이 4·25 참패에 책임을 져야 할 친박 성향의 강대표 체제 유지를 수용한 대신 적어도 경선 규칙에서는 박 전 대표가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4·25 참패가 민심을 외면한 오만의 결과였다면 대선 후보 경선은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향으로 수정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이 전 시장측의 주장이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민심 반영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자 박 전 대표로부터 ‘걸레’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강대표가 여론조사 반영 비율에서 국민선거인단 투표율을 최소 67% 보장해준다는 중재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 전 시장측은 즉각 ‘환영’을 표명했고, 5월11일 염창동 당사에서 17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상황이 한순간에 역전되었다.
그동안 이 전 시장측에 탈당과 별도 창당의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뉴라이트 진영을 이끄는 김진홍 목사는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밝혔다. 그것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찬물 끼얹기이다. 6·3 동지회와 4·19회도 이 전 시장의 외곽 조직이다. 자금 걱정이 없는 이 전 시장의 입장에서는 당 하나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2년 당시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했으나 ‘돈’ 때문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신고된 재산만 6백억원 이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박 전 대표측이 탈당을 종용해도 당을 뛰쳐나갈 수 없는 것이 이 전 시장의 처지이다. 현재 5%포인트 앞서는 수치만 믿고 탈당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거의 자살 행위이다. 5%라는 수치는 오차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이다. 박 전 대표가 업고 뛸 한나라당은 조직도 막강하고 정당 지지도도 40%대이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의 후보만 된다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막바지 상황에서 이 전 시장측은 강재섭 대표 포섭에 성공했고, 이제 공은 중재안을 거부한 박 전 대표에게로 넘어갔다.

 
 
전국위원회에 한나라당 운명 걸려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은 전국위원회에서 운명이 결정된다. 강대표가 박 전 대표의 수용 여부에 관계 없이 전국위에 회부키로 했기 때문이다. 전국위는 전당대회 기능을 대신하는 최고 의결 기구이다. 전국위 표결이 성사된다면 이는 사실상 대선 후보 경선의 전초전이다.
박 전 대표는 전국위에서 이를 부결시켜야 한다. 얼마 전까지 전국위 분위기는 친박 성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위위원장 김학원 의원도 맹렬한 박 전 대표 지지파다. 강대표의 중재안을 “전국위에 상정할 수 없다”라고 저항한 것도 그런 배경과 관련 있어 보인다.
박 전 대표가 전국위를 믿는 근거가 있다. 전국위는 9백1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속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 시·도당 위원장, 상임고문, 시·도의회 의장, 당협위원장 등의 임명직이 절반 정도이다. 나머지 절반은 시·도 당대회와 중앙위원회 등에서 선출된다. 2년 넘게 당 대표를 지냈고, 선거를 했다 하면 전승을 거둔 박 전 대표의 공을 인정하는 핵심 당원들이다. 박 전 대표가 “전국위에서 표 대결하겠다”라고 선언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미 현역 의원 절반 이상이 이 전 시장에게 장악된 상황이다. 이들의 입김이 전국위에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마침내 전국위를 믿고 있는 박 전 대표의 판단이 시험대에 오를지 모른다. 그것은 박 전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가리게 될 것이다. 물론 전국위가 다는 아니다. 만약 전국위 표 대결에서 질 경우, 대표 퇴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소집하고 위헌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는 한나라당이 사실상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박 전 대표 진영은 중재안이 어떻게 되든 전당대회를 소집해 강대표를 강제로 끌어내릴 생각이다. 이 전 시장에게 ‘포섭’된 강대표가 있는 한, 후보 경선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박 전 대표 진영 유승민 의원의 주장이다.
지금 국민들의 시선은 한나라당이 결국 분당의 길로 가는지에 쏠려 있다. 특히 ‘좌파 정권’에게 빼앗긴 10년을 찾아오겠다는 보수층 유권자들은 더욱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강재섭 대표 중재안으로 폭발한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 간의 혈투는 제1장에 불과하다. 여론조사 결과 반영 비율이 가까스로 조정된다 해도, 어느 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또한 국민선거인단은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뽑을지도 정해진 바가 없다. 어차피 한나라당 8월 경선은 어려워졌다. 초반 싸움에서는 이 전 시장이 ‘작은 승리’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싸워야 할 많은 전쟁터가 남아 있다. 그 싸움은 10월 말, 11월 초까지도 계속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가는 자’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상대 후보를 내쫓고 한나라당 후보가 된다 해도 ‘살아남은 자’ 역시 죽는다는 것이다. ‘죽기 위해’ 싸우는 그들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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