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꽃가마’에 몸 싣나
  • 김 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5.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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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후보 지지도에서 ‘강세’ 지속…DJ와의 밀약설도 나돌아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지난 5월9일 평양을 방문했다.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초청에 의해서다. 그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북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 경영 전략’을 밝혔다. ‘남측이 북측의 경제 발전 기반 구축에 기여하고 양측이 경제 공동체로 발전해나감으로써 한반도가 동북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취지이다.


범여권 밖 주자 중 유일하게 ‘초청 방북’


현 대선 주자 가운데 북한 초청을 받은 인물로는 범여권 밖에서 손 전 지사가 유일하다. 2002년 5월 박근혜 의원이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적은 있으나, 지금처럼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로서는 아니었다. 손 전 지사의 방북은 평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인정하고 지지한 데 대한 북한측의 ‘보상’ 성격이 짙다. 북한이 기회 있을 때마다 “남한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수구 세력들을 깨부수자”라고 모질게 비난했던 것을 떠올리면 손 전 지사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이해찬 전 총리,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에 이은 그의 방북은 그가 ‘여권 후보’ 반열에 올랐다는 또 다른 증거로 볼 수도 있다.
최근 정치권에는 손 전 지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중 관찰 대상이 되었다는 설이 파다하다. 2007년 12월을 위한 ‘DJ의 선택’이 손 전 지사라는 내용이다.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배경에 대해 “DJ와 모종의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 하는 얘기도 나온다. 이른바 ‘DJ-손학규 밀약설’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한 방송에 출연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계승할 적임자를 찾는 과정에서 손 전 지사가 햇볕정책에 공개 지지를 표명한 점도 교감 속에서 이뤄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후보로 그가 유일하게 햇볕정책을 지지한 것은 사실이다. 말이 햇볕정책 지지이지 이는 사실상 DJ 지지나 다름없다. DJ로서도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 주자들의 햇볕정책 옹호와 지지 선언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나, 한나라당 출신인 손 전 지사의 지지 발언은 그 의미와 무게가 다르게 느껴질 만하다.
손 전 지사는 경기도 출신이다. 만약 DJ가 이번에도 호남이나 충청 출신을 후보로 민다고 할 경우, 국민들은 1997년 DJP 연합과 2002년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연상할 것이다. 충청도를 잡은 호남 후보나, 충청·호남을 공략하려는 영남 후보나 철저하게 지역 구도를 계산한 결과다. 그만큼  DJ는 실리 추구형의 노회한 정치인이다.

 
변형된 ‘서부 벨트’ 구축 가능


 
그에게는 정치 철학이나 노선보다도 승리만이 중요하다. 비슷한 카드를 세 번 써먹기는 어렵다. 경기도 출신인 손 전 지사를 통해 변형된 ‘서부 벨트’를 그려볼 만하다. 그것은 충청과 호남을 묶으면서 경기를 붙들어 매는 구도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한나라당 대선 주자가 영남, 그것도 경북에 치우쳐 있는 구도를 감안하면 탁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영남 역포위 형국이다. 이 전략의 뒤에 2002년 ‘영남후보론’을 앞세우며 노무현 후보를 세우는 데 성공한 박지원 DJ 비서실장이 있다는 설까지 나돈다.
게다가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이 똘똘 뭉쳐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할 때 유일하게 이를 옹호한 정치인이다. 심대평 당시 충남지사와 만나 지지를 약속하는 정치적 결단도 보였다. 이를 충청도 유권자들은 기억한다. 심 전 지사는 4·25 재·보선 때 대전 서구 을에서 승리해 국회로 들어갔다. 그는 당선되자마자 “국민중심당이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겠다”라고 다집했다. 손 전 지사와 달리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심 전 지사를 낙선시키기 위해 앞장섰다.
손 전 지사는 고질적인 영·호남 갈등 구도에서 비켜나 있다. 한나라당 출신이지만 개혁적인 인물로 분류된다.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말해도 현 정권 내 386 세대들에게 뒤질 것이 없다. 약점이 있다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환경이 불리하다고 당을 뛰쳐나간 것이다.
범여권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진 노무현 대통령의 손 전 지사 견제는 매서울 정도이다. ‘보따리 장수’라는 비난에 이어 최근에는 ‘범여권 표현, 맞지 않습니다’라는 글을 통해 “열린우리당, 민주당, 국민중심당, 우리당 탈당 세력, 심지어 손 전 지사까지도 범여권으로 부르고 있다”라면서 “근거도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 구분”이라고 했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로 떠오르면서 열린우리당과 친노무현 그룹을 무력화시킬지 모른다고 판단했음직하다. 사실 범여권 후보 경쟁에서 손 전 지사는 선호도 20%를 넘어서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와 한국TNS가 5월5일 ‘누가 범여권 후보가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국민 22.6%가 손 전 지사를 꼽았다. 한나라당 탈당 직후인 3월19일(한국갤럽) 16.6%와 비교해 6.0%포인트나 상승했다. 정동영 전 의장은 10.7%이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가 각각 5.4%와 5.0%.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4.2%, 유시민 장관 4.1%, 김근태 전 의장 3.9%, 김혁규 의원 1.2%이다. 범여권이 손 전 지사를 마냥 ‘변절자’로 매도할 수만은 없는 지지도이다. 더구나 손 전 지사가 노는 물이 더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정동영-김근태 두 사람이 노대통령과 얼굴을 붉히고 결별하면, 손 전 지사나 그들이나 ‘변절’ 차원에서는 동급이 된다. ‘배신의 경선’이 된다 해도 후보들 간에는 서로 헐뜯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애초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맹렬히 비난했던 김근태 전 의장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21세기 미래로 가는 과정에서 협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는 화해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손 전 지사의 눈에는 ‘꽃가마’가 어른거릴지 모른다.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사수하고 독자 후보를 낸다지만 나오는 이름마다 지지율이 바닥권이다. 선거는 유권자의 지지율이 결과를 결정한다. 범여권 후보 가운데 최고 지지율을 유지하고 이를 조금씩 높여간다면 범여권 쪽에서 애달아 꽃가마를 메고 태우러 오는 날이 올 수도 있다. DJ까지 도와주면 금상첨화다.
 호남과 충청 표를 모두 합치면 원적지 기준으로 전체 유권자의 약 42%에 이른다. 여기에 손 전 지사가 경기도 출신의 이점을 살려 표를 더하면 50%를 넘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따리 장수’가 꽃가마 타는 날이 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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