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프랑스가 힘차게 이륙합니다"
  • 조홍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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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시대’ 연 프랑스의 현재와 미래

 
5월6일 프랑스 국민들은 역사적 선택을 했다. 보수적인 집권당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시라크의 12년 집권에 권태를 느낀 프랑스인들은 변화를 갈망했다. 중도 좌파의 사회당 후보 세골렌 루아얄이 첫 여성 대통령의 꿈을 키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변화를 바라면서도 시라크가 이끌어온 중도 우파의 대중운동연합(UMP)에 또 다른 5년을 선사했다. 사회당은 정권 탈환에 세 번째 실패했고 UMP는 총 17년을 집권하게 되었다.
엘리제 궁의 주인이 달라졌을 뿐 집권당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 점에서 변화를 거부한 것처럼 보인다. 성장보다는 복지를 우선한 진보적 개혁을 외면했다는 말도 된다. 어떤 의미에서 프랑스 국민의 선택은 이율배반적이다. 변화를 도입하되 보수의 틀 속에서 새로운 바람을 원했을 뿐, 프랑스의 정체성을 흔드는 파격적 변화나 대중 영합적 진보 노선에는 퇴짜를 놓았다. 프랑스다운 결단이다. 
표심을 움직인 결정적 요인은 경제와 대미 관계였다. 빈부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계층은 프랑스의 저력을 다시 점화할 수 있는 능력을 사르코지에게서 발견했다. 정부 지출을 늘려 복지를 향상하겠다는 루아얄의 공약이 달콤했지만 신뢰하지 않았다. 복지보다는 경제 성장이 급선무라는 인식이 강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주 35시간 근무제를 신축성 있게 운용해 일을 더 해서 돈을 더 벌려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사르코지의 약속이 피부에 와 닿았다. 파업 중에도 철도·지하철·고속도로 등 최소한의 공공 서비스 기능을 유지하겠다는 공약도 마음을 움직였다. 무질서한 파업에 넌덜머리가 난 유권자들은 공권력을 확립하려는 사르코지의 결의에 박수를 보냈다.
사르코지는 헝가리 이민 2세인데도 이민 정책에서는 엄격했다. 그동안 시라크가 무원칙하게 받아들인 이민의 증가로 프랑스의 정체성은 상실되고 일자리는 빼앗겼다. 점증하는 범죄와 무법 사태, 터키를 유럽연합(EU)에 가입시키려는 움직임, 방만한 사회복지 제도에도 프랑스 국민은 화를 냈다.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 기강이 바로 서는 그런 변화가 필요했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적임자로 사르코지를 선택했다.

  
프랑스는 왜 ‘잔혹’한 사르코지를 택했나


 
경제 성장 못지않게 선거 결과에 작용한 요인은 대미 관계였다. 사르코지는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한 시라크의 독불장군식 노선을 버리고 미국과의 동맹 복원을 표방했다.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굽히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 미국과 의견을 달리하되 동맹은 굳건히 한다는 신념을 고집했다. 승리를 축하하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전화에 “프랑스의 우정을 믿어도 좋다”라고 그는 약속했다. 반미 노선으로 세계 무대에서 프랑스를 ‘실종’시킨 시라크의 옹고집에 식상한 보수 유권자들은 여전히 미국을 비판하는 루아얄의 태도에 짜증을 냈다. 사르코지가 극우 표의 3분의 2, 중도 표의 절반을 얻은 것은 위대한 국가를 재건하려는 프랑스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르코지는 누구인가? 지난 몇 달 동안 그에게 쏟아진 험담은 흉흉했다. 오만하고 잔혹하고 권위주의적인 대중 선동가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나오는 음흉한 인간의 표본 이아고(Iago)를 능가한다는 혹평도 들었다. 내무장관 시절 노조의 불법 파업을 가차없이 처벌한 그의 태도는 솔직히 ‘잔혹’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왜 이런 인물을 선택했는가. 그의 아이디어 때문이다. 그는 극에서 극으로 가는 정치인이다. 희망과 공포를 동시에 준다. 대다수 정치인들은 모험을 두려워한다. 그는 어떤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이민자의 손자이다. 그래서 이민 2세와의 갈등에 시달리는 프랑스 정계에서는 국외자이다. 일류 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정계에서 3류 대학을 나온 그가 설 자리는 좁았다. 그는 30년을 절치부심했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 모든 가식을 벗어던졌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배신도 주저하지 않았다. 정치 경륜을 쌓다 보니 국외자이면서도 인사이더가 되었다.
사르코지의 극단적 성격은 불우한 성장 환경에서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외할아버지가 의사이고 어머니는 법학도였다. 다섯 살 때까지는 좋은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헝가리의 귀족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리고 두 번 재혼했다. 그는 외가의 보살핌으로 간신히 이름 없는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사르코지 자신도 첫 부인과 이혼하고 재혼했다. 두 번째 아내와도 사이가 나빠 거의 별거 상태이다. 심지어 그가 혼자 엘리제 궁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가 승리의 연설을 하는 자리에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굴곡 많은 성장 배경과 순탄하지 않은 가정 생활을 역으로 활용해 강인해졌다. 목전의 이익보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텔레비전 방송 토론에서도 처음 밝힌 노선을 바꾸지 않았다. 이에 비해 루아얄은 자주 태도를 바꾸고 상대를 민망할 정도로 공격했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은 결선 투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앞으로 5년간 사르코지가 만들어낼 프랑스의 모습은 안개에 싸여 있다. 그의 측근들조차 예단을 주저한다. 대내적으로는 우선 경제를 살리고 호전적인 노조와 이민 사회를 다독거려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유럽 통합을 완성해야 한다. 메르켈 독일 총리의 당선 축하 메시지에서 실마리가 보인다. 유럽에서 프랑스의 역할을 높여 독일과 프랑스의 유대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프랑스 경제가 소생하면 독일에도 해롭지 않다. 두 나라 경제는 전임 총리들의 반미 노선으로 손실을 입었다. 유럽 통합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다. 미국과의 우정을 강조하는 사르코지의 등장을 보고 메르켈은 동반자를 발견한 듯한 모습이다. 유럽의 두 강대국 독일과 프랑스가 동시에 친미 정책을 펼치면 그동안 삐거덕거리던 대서양 유대는 원상을 회복한다. 두 나라의 밀월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좋은 조짐이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소외감을 느낄 것이나 유럽의 분열을 악용한 그에게는 자업자득일 뿐이다.

 
미국식 경제 프로그램 도입할 듯


워싱턴도 환영 일색이다. 사르코지가 영국의 블레어처럼 미국의 ‘푸들’이 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친미는 확실해 보인다. 사르코지의 친미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같은 외교 문제보다는 주로 경제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것만 해도 미국으로서는 감지덕지이다. 사르코지는 지난 10여 년간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미국식 경제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국가안보회의 같은 것도 구상 중이다. 미국에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프랑스가 결코 미국화될 수는 없으나 미국의 가치와 제도를 일부나마 도입하는 것은 장기적 안목에서 바람직하다. 프랑스 경제가 굴러가면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사르코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6월의 의회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으나 낙관은 금물이다. 그가 운이 좋아 의회까지 장악한다면 프랑스의 질주는 날개를 다는 형국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의 사설 제목이 이를 암시하고 있다. “승객 여러분, 안전 벨트를 매십시오. 프랑스는 이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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