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 뒤로 흐르는 ‘서러운 눈물’
  • 유근원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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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 노조 압박에 하청업체 등 ‘울며 겨자 먹기’…불참 노조원 집단 괴롭힘

 
포항 지역 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를 8일 동안 불법 점거했던 지난 2006년 7월. 농성에 참가했던 일부 조합원들은 노조 지도부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노조 지도부가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사태 해결의 기미도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다’라고 판단한 노조원들은 하나 둘 농성장을 빠져나갔다. 이들은 한결같이 “지도부에 속았다”라고 성토했다. 그때 노조원들은 장기간 일을 하지 못해 한 사람당 5백만~6백만원의 월급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강경 노조가 펼치는 ‘그들만의 투쟁’으로 선의의 피해를 입고 있는 노조원과 가족들이 늘고 있다. 노조 간부들이 협상보다 폭력 투쟁을 선호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노조원들의 근로 조건보다 조직 내 정치적 입지를 중시하면서부터다. 일부 간부들은 노조원들을 투쟁의 도구로 이용하고 근로 조건 개선은 뒷전으로 미룬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강경 노조는 투쟁 에너지를 극대화시켜 조직 내 입지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파업에 참여하는 일부 노조원들은 투쟁 전략에 말려 이용만 당한다”라고 설명했다.
노조 지도부만 믿고 파업에 뛰어들었다가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된 노조원들도 많다. 투쟁 만능주의에 빠진 노조 지도부가 파업을 부추긴 뒤 사태가 확대되자 슬그머니 발을 뺐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울산 플랜트 노조 파업 때와 7월에 벌어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의 장기 파업 때도 그랬다. 민주노총은 초반에 지원을 하다가 여론이 파업을 비난하는 분위기로 쏠리자 슬그머니 발을 뺐다. 올해 2월 KTX 여승무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KTX 여승무원의 파업 사태는 철도공사 노조 등이 발을 담그면서 장기화되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여승무원의 정규직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노조 지도부도 잘 안다. 그럼에도 노조 지도부가 투쟁을 위한 투쟁을 부추겼다”라고 말했다.
강경 투쟁이 시작된 후 조합원이 끌려가다시피 따를 수밖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사업장 내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울산지방노동사무소의 한 근로감독관은 “노조원이 노조 지도부의 강경 투쟁에 반기를 들면 회사 쪽의 첩자로 몰아 완전히 매장시킨다”라고 귀띔했다. 이같은 사례는 2003년 12월 충북 청주산업단지 내 한국네슬레 공장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그때 노조는 1백45일간 계속된 파업 끝에 극적으로 타결했고 평온을 되찾았다. 하지만 노조의 무리한 파업 형태에 동의할 수 없어 조합을 탈퇴한 63명의 근로자에게는 무서운 보복이 가해졌다. “배신자는 자폭하라. 너만 잘났냐? 얼마나 잘사나 두고 보자”라는 등의 언어 폭력과 공장 안팎에서의 따돌림이 잇따랐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동료들까지 탈퇴 노조원을 외면했고 심지어는 가족들에게까지 폭언을 가했다.

 
 
지역 경제 침체되어 시민들도 ‘울상’


 
어떤 노조는 ‘파업에 반대한 노조원 왕따 만들기’에 노조원 부인들까지 동원했다. 조합원 부인들로 구성된 부녀회가 파업 현장에 불참한 조합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아파트 문에 ‘배신자’라고 쓰인 인쇄물을 붙였다. 서울지하철공사 노조원들에게는 ‘노조에 불참하면 상조회에서 빼버리겠다’는 말이 두렵다. 직원들이 상을 당했거나 결혼하는 등 경조사 때 온갖 허드렛일까지 거들어주는 친목 단체인 상조회에서 제명당하면 배겨낼 재주가 없다.
노조 지도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폭행당한 사례도 있었다. 경남 거제시에서 택시 운전을 하던 김 아무개씨(62)는 노조 지도부의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폭행당했다.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노조 지도부를 고소했다. 하지만 노조 지도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찾아가 기물을 부수고 김씨 부부에게 폭행까지 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파업으로 입은 자동차 생산 손실은 11만5백12대로 집계되었다. 모두 11차례 파업으로 1조5천9백7억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현대차 노조가 출범한 후 지난해까지 각종 파업에 따른 손실액은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회사가 망해 일터가 없어지면 노조원들은 어디 가서 일하나. 도대체 누구를 위한 파업인지 모르겠다.” 울산 현대차 공장에서 일하는 한 비정규직 사원의 불만이다. 그는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현대차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하청 노동자이다. 파업 인원을 부풀리려고 하청 업체 노동자들의 동참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현대차에 납품하는 하청 업체에 재하청하는 3차 하청 업체는 노조 파업에 치를 떤다. 3차 하청 업체에 다니는 한 근로자는 “현대차 귀족 노조원들이 파업할 때 하청 노동자들은 피눈물을 흘린다”라며 울먹였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운동이 발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은 평등한 분배이다. 그것을 이루려면 노동운동 조직 안의 큰 격차를 해소하고 권력 분배에서도 평등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노조 파업이 길어져 파업 당사자들은 물론 지역 경제에까지 주름살이 지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지난해 7월 포스코건설 노조 파업 때는 성난 포항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뜩이나 어려운 판국에 파업으로 인한 시민들의 생활 불편이 한계에 달하고 상권 위축으로 지역 경제가 최악으로 내몰린 데 대해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노조 파업으로 경제가 엉망이 된 현실에서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시민을 적으로 돌린 노동운동이 성공한 예는 없다. 1970년대 초까지 기세등등했던 일본 공공 노조가 급작스럽게 쇠퇴한 것도 잦은 불법 파업에 화난 시민들이 파업하던 열차 기관사를 폭행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일터가 무너지면 노조도 없다. 걸핏하면 치러지는 파업으로 많은 노조원과 시민들이 이젠 싫증을 느낀다’는 성난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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