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숨은 손' 사이버 동호회
  • 신정식(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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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통해 정보 교류...아파트·상가 분양자 모임도 활성화

 
아파트값이 평촌·산본 등 신도시는 지난해 말보다 10% 떨어졌고 수원, 영통은 5% 미만 하락했습니다. 용인시 동천·성복·상현 지역은 5~10% 정도 내려갔습니다. 지난해 값이 치솟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 정도의 하락은 당연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급등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지요. 대출 규제, 추가 인하 기대감으로 매수세가 없는 상황입니다. 급매물은 이번 달을 정점으로 8월 정도가 마지막일 듯싶습니다.”
부동산 전문가의 말이 아니다. 부동산 동호회인 ‘부동산 마스터’의 한 회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이런 글들은 동호회 사이트를 통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어떨 때는 정부를 매섭게 질책하고 대안까지 제시한다. 이런 글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부동산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지지자들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모임을 갖고 의견을 주고받는 ‘부동산 동호회’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파워 그룹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루는 주제가 다양하고 내용도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는다. 포털 업체 네이버의 부동산 동호회 ‘서울 일원동 수서1단지 리모델링’ 카페가 좋은 사례이다. ‘21concept’라는 회원은 부동산 값 하락 원인을 날카롭게 분석해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을 가졌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벌이는 토론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찬반으로 갈려 맹공을 가하거나 반박 논리로 ‘기를 죽이는’ 내용들이 관심을 모은다. 부동산 관련 정부 정책, 각종 이슈에 대한 뜨거운 공론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호회 종류 또한 다양하다. 아파트·상가·땅 등 분야별 모임도 있고 지역별 동호회도 생겨나고 있다. 학교 동창, 직장 동료, 동업계 친목회를 통한 인터넷 모임도 적지 않다. 특히 신도시 지역에는 이런 동호회들이 수두룩하다.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 사이에 사이버 모임이 활성화된 지는 꽤 되었다. 아파트 분양 뒤 계약까지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이버 공간에 아파트 단지 동호회가 만들어진다. 정보 교환이 빠르고 활동 영역 또한 넓다. 하자 점검에서부터 아파트 이름 짓기, 학교 신설 요구 등 아파트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서울 성북·노원 등 상대적으로 집값 상승률이 낮았던 지역의 아파트 값을 올리는데도 이들 동호회가 앞장섰다는 소문이 들린다.
사이버 동호회는 상가 시장에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상가 동호회는 굿모닝시티 대책위원회처럼 문제가 터진 뒤 수습을 위한 ‘대책위원회’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동호회처럼 순수 분양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모여 좀더 안정적인 상가 운영을 논의한다. 분양 조건 이행 등 무거운 주제에서 정화조 청소비 공고 등 사소한 내용의 상가 동향까지 영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음·네이버에만 1만8천여 동호회 활동


그 중에서도 관리비에 대한 대처는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상인들의 경우 관리비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분양자 동호회를 만들어 관리비 내역을 감사하고 너무 높은 금액을 책정할 때는 조직적으로 항의해 관리비를 끌어내리기도 한다. 상가 공사에 결함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진까지 찍어 시공 회사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특히 분양 때의 광고 전단·계약서 내용을 공유하며 전문 감리자 이상으로 하자 부분 등을 예리하게 집어낸다. 협조 사항이나 주변의 호재를 공지하는 게시판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자신들과 비슷한 상가 소식, 이벤트 종류를 소개하기도 한다. 업소 손님 끌기 노하우를 올리는 재미난 사이트 또한 눈길을 끈다. 
상가뉴스레이다 정미현 선임연구위원은 “요즘에는 상가 분양 주도 사이버 모임을 통해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하자 보수 등에도 적극 나서 제2의 감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가 동호회는 분양주가 많은 테마 상가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추세이다”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집단 시위나 하고 민원 서류를 들고 관청을 찾아가는 시대는 지났다”라며 “이제는 인터넷 발달로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 사이트 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추세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언론 매체를 통해 들을 수 없는 실질적 내용들을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부동산 동호회의 매력이다. TV 방송용의 ‘얼굴 마담’과 달리 경험이 풍부한 ‘고수’들의 입을 통해 불만이나 하고 싶은 내용들이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는 것.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1만3천여 부동산 관련 카페가 있고 네이버에서는 5천1백여 동호회가 활동 중이다. 언론 매체와 금융 기관에서도 부동산 관련 동호회를 따로 개설하고 있다. 최근엔 동호회가 양적 팽창을 넘어 관심 분야에 따라 소그룹화되어 가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동산 시장은 부동산랜드·부동산114 등 전문가 팀이 주축이 되어 아파트와 임야·공장 용지 등 지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것도 주로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온라인에서 취미나 친목회 성격까지 띠며 전문화·세분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정보회사 중 한 곳인 ‘내집 마련 정보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뉴타운, 재개발, 미분양 아파트 전문, 전원주택, 설계 및 시공, 경·공매, 방 구하기, 전·월세 운영, 부동산 개발, 분양 사업주 모임 등 온라인 모임이 아주 다양하다.
또 풍수지리, 부동산 관련 분쟁 해결, 세금, 물물 교환 등 공통 주제는 부동산이지만 접근하는 시각과 투자 대상 및 방법을 달리한 동호회까지 운영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정책으로 올 들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어가자 해외로 눈을 돌리는 부동산 동호회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말레이시아·필리핀·호주·미국 등 진출 희망지에 따라 여러 사이트들이 가동되고 전문 회사들과 손잡은 홈페이지, 개인 블로그도 활성화되고 있다.
동호회 알리기와 회원 수 늘리기를 위한 홍보전도 치열하다. 가입자들로부터 운영 기금을 모아 현수막·전단 등으로 카페를 선전하고 구전 홍보에도 열심이다. 나아가 모임 성격을 공동 투자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동호회도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 동호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세몰이 성격으로 모임을 만들어 부동산 값 담합이나 상대 지역 깎아내리기 등 부작용 사례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기 부천, 서울 용산 등지에서 동호회 사람들이 소형 아파트를 대거 사들인 뒤 해당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에 저가 매물을 ‘정리’하도록 압력을 넣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짧은 기간에 부동산 값을 오르게 해 신입 회원들에게 넘기고는 사이트 문을 닫는 일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정안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지금의 우리 부동산 실상이 1990년대 초 일본과 거의 같다. 이런 현상은 정부의 극약 처방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인위적  억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시장 활황이 온라인으로 더욱 확산되어 왔기 때문에 그 하락 속도도 매우 빠를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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