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위해 '그늘 인생'에 햇살을...
  • 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5.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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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불법 체류자 양성화 법안은 인력난 해소용...형평성 논쟁 가열

 
미국에서 합법 체류한 지 5년째인 김경식씨(51)는 미국 의회가 추진하는 이민 개혁 법안에 대해 불만이 많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 내 불법 체류자 1천2백여 만명이 영주권 획득 등 혜택을 받게 되는데 자신은 합법 체류자임에도 이 새 법안에 따르면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 법안이 형평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불만이다.
김씨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직도 학생 신분이다. 미국 입국 비자에 명시된 그의 신분은 유학생이다. 그는 실제로는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면서 한인 회사에 취업해 매달 급여를 받으며 4인 가족 생계를 꾸리고 있다. 김씨는 기회가 오면 영주권을 신청할 생각이다. 그는 나중에 시민권까지 갖게 되면 홀어머니를 초청해 함께 살 생각이다. 그러나 이번 이민 개혁 법안대로라면 그의 미국 영주 꿈은 사라지게 된다. 김씨와 같은 이주 희망자들은 수만 명이며, 초청 이민을 기다리는 가족도 2만명에 이른다는 것이 이민법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고학력 취업 이민자들도 매년 1만3천명에 달한다. 새 법안이 확정되면 직접 영향을 받게 될 한국인은 매년 5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미국 상원의 공화당과 민주당 실력자들은 지난주 이견을 보였던 일부 항목에 대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 이른바 포괄적 이민 개혁 법안을 상정했다. 이 법안은 백악관도 환영하고 있다. 하원의 표결 결과까지 몇 단계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상원의 분위기가 하원에서도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다수 이민법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몇 달간에 걸친 백악관의 물밑 협상이 결실을 본 이번 포괄적 이민 개혁 법안은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존 카일 상원의원의 공동 발의로 상원에 상정되었다.
이 법안의 골자는 불법 체류자 구제와 영주권 발급의 조건 강화다. 불법 체류자 구제는 이 개혁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 체류 중 열심히 일한 사실이 확인되고 미국 법을 어긴 다른 사례가 없는 불법 체류자의 경우, 본국 귀환 후 재입국 신청을 하면 영주권을 준다는 것이다. 본국 귀국 조항은 귀환자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에 따라 대안도 거론되고 있다. 체류 5년 이상의 불법 체류자 가운데 최소한 3년 이상의 세금 납부 기록이 있는 경우 벌금과 서류 신청 비용을 내면 미국 내에서 영주권을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재미동포들, 가족 초청 어려워져 ‘울상’


 
이 법안은 또 지금까지 20여 년간 지속되어온 가족 초청 이민의 경우 사실상 전면 폐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권자의 미혼 자녀(1순위) △영주권자의 배우자 및 21세 미만 자녀 (2순위 A) △영주권자의 21세 이상 미혼 자녀(2순위 B) △시민권자의 기혼 자녀(3순위) △시민권자의 형제, 자매 (4순위) 등 네 개 카테고리 가운데 ‘2순위 A’를 제외하고 전면 폐지한다는 것이다.
반면 전문직 취업 이민의 문호를 넓히되 점수제를 도입해 영주권 발급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연간 14만명의 쿼터를 최저 20만명에서 점차적으로 늘려 최대 50만명 선까지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취업 희망자의 경우 고학력 여부와 영어 구사 능력의 정도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100점 만점), 점수가 높을수록 비자 발급 가능성이 높아진다.
로스앤젤레스의 이민전문 법률회사 대표 김영옥 변호사는 이번 이민 개혁 법안은 미국의 오랜 전통이자 가치관인 가족 합류라는 기존 정신을 계승하기보다는 인력난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미국인 학력 수준이 높아지고 저임금 노동 인력의 자체 확보가 어려워지자 저임금 노동 분야를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 내 저임금 노동력 수요에 비해 취업 이민 비자 발급을 억제했다. 그 결과 대량 발생한 것이 불법 체류 노동자다.
불법 체류자들은 3D 직종은 물론 생산 및 서비스 분야에서도 기여도가 높아 미국 경제가 사실상 이들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번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이다. 미국 정부가 1천2백만명에 이르는 불법 체류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단속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미국 경제에 대한 이들 불법 체류자들의 기여도 때문이다.
이번 이민 개혁 법안의 목적은 국경 감시를 강화하고 입국 비자 발급 기준을 강화하면서 불법 체류자들을 눈감아주는 정부 정책의 모순을 없앤다는 것이다. 또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불법 체류자들의 신분을 양성화함으로써 불법 체류로 인해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점을 제거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이다. 반면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제 외적 가족 초청 이민의 경우는 사실상 문호를 닫고 IT산업 등 고급 인력을 필요로 하는 부문에 대한 외국 인력을 선별적으로 더 많이 받아들여 경제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 이번 법안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의도이다.

 
“가족 합류 억제는 인권 침해 소지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 개혁 법안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의회 통과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의회 내부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혜택을 입게될 이민자 커뮤니티도 이 법안이 담고 있는 불법 체류자 구제라는 명분에 대해서는 적극 환영하면서도 그 시행 조항에서는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법안이 합의된 원안대로 통과될지는 미지수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선두를 달리는 힐러리 상원의원이나 하원의 낸시 펠로시 의장(민주당)은 일단 가족 합류 억제 조항을 직접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이민 반대론자인 톰 탠카르도 하원의원(공화당)은 이번 불법 체류자 합법화 조항은 불법자들에 대한 불공정한 사면 조처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민 사회는 불법 체류자들의 본국 귀국 우선 조항이나 벌금 제도는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거나 너무 가혹하며 가족 합류 억제는 인권의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인도인과 독일 지방 무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심사할 경우 무명 대학 박사학위가 높은 점수를 받게 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난 고졸자에 비해 비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을 졸업했으나 영어 구사력이 부족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은 오히려 국익에 도움보다는 손해를 가져오는 기준이라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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