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드디어 '대관식' 치르는가
  • JES ()
  • 승인 2007.05.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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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 꺾어...커리어 그랜드슬램 가능성 커져

 
대관식을 기다리는 테니스 황제가 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테크니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 기록한 패배는 불과 다섯 번. 상금 액수와 세계 랭킹에서 부동의 1위이다. 스위스의 로저 페더러(26) 이야기다.
그러나 황제는 커리어 그랜드슬램(호주 오픈·프랑스 오픈·윔블던·US 오픈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이라는 대관식을 자꾸 미루어야 했다. 하필 황제와 같은 시대에 ‘클레이 코트의 괴물’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랭킹 2위의 라파엘 나달(21·스페인)이 그 괴물이다. 붉은 흙으로 만들어진 클레이 코트에서만은 나달이 세계 최강이다. 나달은 기술에서 페더러에게 밀리지만 체력과 파워에서는 그를 능가한다. 승수와 상금으로 보면 나달은 페더러에게 한참 뒤지는 2인자다. 클레이에서만 힘을 내고 하드 코트와 잔디에서는 약점을 자주 드러내는 바람에 ‘반쪽 선수’라는 오명도 썼다. 그러나 그는 클레이 코트 81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특정 코트 연승 신기록이다.
그랜드슬램 대회 중 프랑스 오픈은 클레이 코트에서 열린다. 지난 2년간 프랑스 오픈 우승컵은 나달이 가져갔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노리는 페더러는 나달의 벽에 번번이 막혀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페더러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프랑스 오픈에서 아직 우승컵이 없는데 왜 그런가”라고 질문하자 “그 대답이 바로 내 옆에 있다”라며 나달을 가리켰다. 객관적 실력은 분명 페더러가 한 수 위에 있지만 그들이 다스리는 영토가 너무나 극명하게 갈린다. 역사상 이처럼 묘한 인연의 세계 랭킹 1, 2위는 없었다.


차가운 페더러, 뜨거운 나달


 
이들이 만드는 드라마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나달이 도전한 클레이 코트 82연승 기록이 바로 페더러에 의해 깨졌기 때문이다. 지난 5월20일(이하 한국 시간) 함부르크 마스터스시리즈 결승에서 페더러는 나달에게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가져갔다. 페더러는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을 처음으로 이겼다. 따라서 올해 프랑스 오픈 우승컵의 향방은 쉽게 짐작할 수 없게 되었다.
왜 페더러는 클레이 코트에만 서면 나달 앞에서 작아졌을까. 코트의 특성에 따라 페더러와 나달의 장점이 드라마틱하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페더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플레이를 철저하게 계산하고 설계하는 스타일이다. 냉정한 플레이와 드롭샷은 세계 최정상이다. 그런데 클레이 코트에서는 차가운 페더러보다 열정적인 나달이 더 유리하다. 클레이 코트에서는 공의 바운드가 불규칙해서 미리 플레이를 계산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랠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필수이다. 야생마 같은 나달이 클레이 코트에만 서면 펄펄 나는 이유이다. 게다가 페더러는 자신이 예측한 대로 플레이가 되지 않으면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단점이 있다. 페더러는 클레이 코트에서 유독 실책이 많았다.
4월 이후 페더러는 4개 대회 연속 우승권에서 멀어지며 4패를 기록하는 등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전담 코치까지 해임하는 등 초강수를 둔 끝에 드디어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을 꺾었다. 그것도 첫 세트를 빼앗긴 뒤에 이룬 역전승이었고, 마지막 세트에서는 단 한 게임도 내주지 않는 완승을 거두었다.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을 상대할 때마다 쏟아냈던 실책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연 이 승리가 황제의 대관식을 준비하는 전주곡이었을까. 아니면 이번에도 프랑스 오픈에서는 나달이 페더러의 대관식에 다시 한번 ‘진흙’을 뿌릴까. 프랑스 오픈은 5월28일 막을 올려 6월11일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우승컵의 주인공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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