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내 운명" 꿈을 그리는 사람들
  • 최만수 프리랜서 기자 ()
  • 승인 2007.06.04 09: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들도 만화 열기에 '흠뻑'...작가 지망생 창작열도 '후끈'
 

너는 만날 만화만 보냐!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만화책을 보다가 부모에게 들켜 혼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화란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것’, 그중에서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보는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만화는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울 교보문고나 반디앤루니스 같은 대형 서점의 만화 코너는 대부분 성인들 차지가 되었다. 지하철 안에서는 PMP로 만화 영화를 감상하거나 만화책을 다운받아 보고 있는 정장 차림의 회사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매주 한두 번 서점의 만화책 코너를 찾는다는 회사원 윤종호씨(34)는 “좋아하는 만화의 신간이 나오는 날이면 며칠 전부터 가슴이 뛴다. 다른 약속을 미루고서라도 서점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만화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학원 강사 안길수씨(40)의 가족 세 명은 모두 만화 마니아이다. 안씨는 어릴 때부터 로봇 만화 마니아였고, 현재도 인터넷 동호회에서 활동 중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안씨의 아들(10)은 같은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동료’가 되었다. 휴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로봇 만화를 감상한다. 미술을 전공한 안씨의 부인은 아마추어 만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가 아이들에게 나쁘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어릴 때부터 건전한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 아닌가”라고 그녀는 말한다.
만화는 어느새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리니지>와 <라그나로크>는 인기 게임을 탄생시키고 <풀 하우스>는 TV 드라마로 더욱 유명해졌다. 만화를 빼놓고 문화 산업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한국 만화는 세계적 위치에 올라섰다. 열악한 환경과 사회의 편견 속에서도 만화를 위해 열정을 바친 독자와 작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5월5일, 서울 양재동 농수산물유통공사(AT) 앞 인도에는 특이한 복장을 한 청소년들로 붐볐다. 대검을 허리춤에 차고 흰 가발을 길게 늘어뜨린 소년,  키보다 더 큰 지팡이를 든 마법사 복장의 소녀….
이들은 제66회 ‘코믹 월드’에 참가한 코스프레 마니아들이었다. 코믹 월드는 아마추어 종합 만화 축제이다. 동아리 판매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아마추어 만화들을 감상하고 사고파는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일러스트 콘테스트, 코스프레 콘테스트, 만화가 사인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캐릭터 따라 하기’ 코스프레 행사에도 사람 몰려


코믹 월드의 특징은 모든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코스프레 콘테스트.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의 복장을 만들어 입고 행사에 참가한다. 주최측인 코믹 월드의 조윤희 이벤트팀장은 “열정으로 가득한 참가자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많다. 만화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행사를 지켜봐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임경란씨(29)는 코믹 월드에 열 번 넘게 참가한 베테랑이다. 그녀는 만화 캐릭터를 이용해 디자인한 버튼, 책갈피, 우산 등을 판매했다. 인기가 대단해 100만원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고 자랑이다. 임씨는 어릴 때부터 만화 마니아였다. 경성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그녀는 여러 아마추어 만화 행사에 참여하고 게임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만화 관련 학과를 개설한 대학은 두어 개에 불과했다. 만화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쌓은 미술의 기초가 만화를 그리는 데 더 도움이 되었다.”
임씨는 현재 게임 업체 그라비티에서 야구 게임 <W-베이스 볼>의 원화를 담당하고 있다. ‘pecorin’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그림이 네티즌으로부터 인기를 끌자 게임 업체 직원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되었다. 그녀는 “만화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다. 만화는 나의 전부이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줄 때 가장 기쁘다. 일본에는 만화와 관련된 다양한 직업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만화 분야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화가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만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서울 양재동의 ‘씨존 만화학원’. 이곳에서 공부하는 만화가 지망생들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복도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품들의 수준은 웬만한 인기 만화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일본의 후지TV 팀이 한국 만화의 미래를 취재하기 위해 이곳을 찾기도 했다.
대학생 장한울씨(20)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만화가의 꿈을 키워온 마니아이다. 그녀는 “만화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나만의 작품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라며 만화가의 꿈을 갖게 된 이유를 밝혔다.
장씨는 현재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한 만화가 양성 교육기관에서 만화를 공부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서 만화가로 성공하기는 힘들다. 시장도 좁고 아직까지는 한계가 많다. 미국 애니메이션 업체에서 경력을 쌓은 후 한국에서 활동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2000년 이후 국내에는 30~40개에 이르는 대학과 전문대에 만화학과가 개설되었다. 한 해 입학생이 2천~3천명에 이를 정도이다. 하지만 만화가나 만화 관련 산업에 진출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넘쳐나는 인력에 비해 일자리가 적은 편이고, 만화가에 대한 대우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실력 있는 만화가 지망생들은 일본이나 미국으로의 진출을 꿈꾼다. ‘씨존’의 황덕근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만화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일본은 다르다. 소득 랭킹에는 언제나 만화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초등학생 절반이 장래 희망으로 만화가를 꼽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지위가 다른 것이다”라며 일본에 비해 열악한 한국의 현실을 지적했다.
만화 지망생 이종원씨(20)는 독특한 느낌의 그림을 그린다. 그는 <몬스터>의 우라사와 나오키(浦澤直樹) 같은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이씨는 “우리나라 만화는 창의력이 일본보다 떨어진다. 우라사와처럼 창조적인 스릴러 작품을 그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황원장은 “우리나라 만화가 지망생들의 그림 실력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일본보다 더 낫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구성력과 창의력에서는 일본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라고 아쉬워했다.
만화가의 길은 여전히 좁고 험난하다. 하지만 만화가 지망생들의 열정은  뜨겁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이나 일본에서 경험을 쌓은 후 한국에 돌아와 만화가로 활동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황원장은 “이들이 국내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간다면 만화 산업은 빠르게 선진국 수준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5년 4월3일 뉴욕 타임스 오피니언 면에 한국인 만화가가 소개되었다. 페이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주인공은 한국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MLB(미국 메이저리그) 만화를 그리고 있는 최훈씨(32).
브라이언 마이어스 고려대 교수(북한학과)는 기고를 통해 최씨의 만화가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마이어스 교수는 “최씨는 ‘MLB 카툰’ 연재를 시작할 때 이미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한국의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은 최씨의 유머와 초현실주의적인 그림, 메이저리그에 대한 해박한 지식 등에 이끌려 그의 만화를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해 단행본으로 만들어진 <최훈의 MLB카툰>은 1주일 만에 3쇄를 찍었다.


 
‘메이저리그 만화’로 미국을 사로잡다


최씨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만화가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한 최씨는 1995년부터 PC통신 ‘천리안’을 통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타고난 유머 감각과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그의 소설은 곧 큰 인기를 끌었고 문학 계간지에도 실리게 되었다. “그림만 잘 그릴 수 있다면 좋아하는 만화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한국에는 만화를 가르쳐주는 곳이 적었기 때문에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4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친 최씨는 일간 스포츠에 <하대리>를 연재하면서 만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하대리는 상사와 동료에게 시달리는 30대 직장인을 모델로 하여, 남성과 여성의 심리를 예리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미 소설가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최씨의 강점이 발휘된 작품으로, 네티즌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야구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그는 인터넷 동호회에서 MLB 카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MLB 카툰은 네이버에 본격 연재되면서 평균 조회 수 20만을 기록하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는 “사람들이 MLB에 별로 관심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반응이 너무 커서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재로 썼기 때문에 작업을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연재가 길어지면서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기가 힘들었다”라며 창작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최씨는 “10컷 정도의 한 편을 그리는 데 1주일이 걸린다. 자료 조사를 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항상 노력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만화가의 길을 정식으로 밟지는 않았지만, 많은 마니아를 거느리며 최고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최훈. 그의 만화는 전문 서적 못지않은 지식을 담고 있다. 소설로 다져진 탄탄한 구성력도 갖추었다. 원화는 뛰어나지만 창의력과 구성력이 부족한 우리 만화들 속에서 최씨의 만화는 돋보인다. 만화 정보 포털 사이트 ‘만화규장각’의 평론가 양준용씨는 “사전에 철저하게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그의 작품 활동이 침체된 한국 만화계를 살리는 새로운 역할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만화로 성공한 사람들,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좋아서 만화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만화의 생명은 ‘자율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날 우리 만화가들은 자율성을 훼손하는 열악한 환경, 사회의 편견과 맞서 힘든 작업을 해왔다. 하나의 문화 산업으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점은 남아 있다.
이제 우리 만화의 적은 인터넷과 불법 복제이다. ‘만화는 그저 즐기는 것’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여전하다. 한국만화가협회의 염진아 사무국장은 “불법 복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만화가들이 설 땅은 없다”라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만화에는 작가의 영혼이 담겨 있다”라고 말한다. 만화 선진국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인식의 변화라는 지적이 많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