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DJ연대설'에 흔들리는 '대통합'
  • 김 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6.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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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대통령, '주도권 잡기' 신경전 치열...열린우리당은 균열 계속

 
범여권이 총체적 난국이다. ‘대통합’이라는 화두는 분명한데, 도무지 길이 안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점점 고립되어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통령 선거까지 반 년 남짓, 선거를 치를 주력 부대도 안 보이고 대선 주자는 아예 잠수 상태이다. 범여권 대통합 시한은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 붕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이지만 당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더 답답한 쪽은 DJ. “주책없이 정치에 개입한다”라는 비난에 자중하는 듯하더니 “50년 몸담았던 민주개혁 세력이 사분오열돼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라며 아예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한나라당 집권만은 막아라”는 지령을 사방에 던져놓은 상태다. 한나라당 집권시 자신의 치적인 햇볕정책과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가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치 보복을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범여권의 위기가 심화되자 노대통령과 DJ의 이른바 ‘노무현-DJ 연대설’이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고 있다. ‘설’만으로도 “전·현직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며 범여권 안에서부터 역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DJ 분신’이라는 민주당조차 “DJ와 노대통령이 손잡아 대선을 치르겠다고 하는 것은 한나라당에 대선을 헌납하겠다는 구도”라며 비꼴 정도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대선 후보 정책토론회를 필두로 차질 없는 경선 스케줄이 진행되고 있다. 이래저래 범여권은 죽을 맛이다. 결국 노대통령-DJ의 선택은 ‘대통합의 주도권’을 서로가 잡겠다는 것. 전·현직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의 주역이 되겠다고 나서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문은 결국 닫히고 말 것인가. 운명의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2월 전당대회에서 지도부에 위임한 대통합 시한은 6월14일. 하지만 아직 통합의 ‘ㅌ’자도 그리지 못했다. 집단·연쇄 탈당 움직임만 요란하다. 당 자체가 붕괴될 위기이다.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쪼개지고 있다. 한 축은 정대철 상임고문을 중심으로 한 탈당파, 또 다른 한 축은 당의장을 지낸 문희상 의원과 유인태 의원 등 ‘선도 탈당파’. 여기에 ‘열린우리당 사수’를 외치는 친노 직계가 있다. 이 가운데 선도 탈당파와 친노 직계는 사실상 동색이다. 정고문을 중심으로 한 14명은 ‘6월15일 탈당’을 공언했다. 정고문, 김덕규 전 부의장, 문학진 의원 등 10여 명은 ‘대통합 신당 창당 추진 모임’을 구성했다. 20여 명으로 동조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정동영 전 의장의 합세도 점쳐진다.
 문희상 의원과 정무수석 출신인 유인태 의원의 탈당은 정고문의 탈당과는 동기부터 다르다. 정고문의 탈당은 ‘대통합’을 전제로 하지만 문의원 탈당은 이른바 ‘선도 탈당’ ‘기획 탈당’이다. 당 밖에서 시민단체 등과 열린우리당을 계승할 통합의 틀을 만든 뒤 ‘신설 합당’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인사 ㅎ, ㅊ씨 등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정세균 의장 등 친노 그룹이 무언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 등 친노 그룹의 ‘열린우리당 리모델링’에 대한 미련이다. 그러면서 ‘노-DJ 연대’를 통해 대통합을 꾀한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최근 친노 세력에게 “열린우리당을 계승한 신설 합당이 아니라면 통합에 찬성할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창구 역할


친노 세력의 처지에서 볼 때 열린우리당을 붕괴 위기로 몰고 간 장본인은 민주당이고, 박상천 대표이다. 열린우리당을 ‘대통합’ 대상에서 아예 왕따시키는 바람에 4개월을 공쳤다는 것이 이들의 푸념이다. 민주당과 한두 차례 만났지만 “노대통령 국정 실패 책임자들은 안 받는다”라는 통첩에 넋을 잃고 황망하게 보내온 세월이 100일이 넘는다. 또 노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도 있다. 유시민 의원을 느닷없이 당에 복귀시켜 분란의 소지를 제공하고,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에게는 “정치를 그만두라”고 몰아붙이는 바람에 모두 날아가버렸다는 푸념이다. 범여권 통합을 지역주의로 매도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대세를 언급하며 이를 포용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열린우리당을 ‘허파 빠진’ 세력으로 만들었다는 힐난도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뺄셈 정치’를 주장하는 박상천 대표를 ‘소통합주의자’로 몰아쳤다. 언론들도 민주당과 중도개혁 통합신당 간의 통합을 ‘소통합 임박’이라고 써댐으로써 덩달아 공조했다. 불완전한 통합으로 규정짓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열린우리당 붕괴가 가시권에 들어오자 노대통령과 DJ를 묶어 위기를 넘겨보려고 하는 안간힘이 목격된다. 그 창구는 이해찬 전 총리이다. 그는 ‘노무현의 남자’이기도 하지만 ‘DJ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5월30일 동교동으로 DJ를 방문했다. DJ는 전날 민주당 박상천 대표에게 “국민이 바라는 것은 비한나라, 중도개혁 세력, 재야까지 합쳐 대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서로 감정이 악화되지 않도록 배척하지 말고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범여권 통합에서 노대통령 직계를 ‘왕따’시키는 박대표에 대한 꾸중이다. 심지어 “(민주당이) 대선보다 총선에 더 관심이 있다는 오해도 있다”라고도 했다. 그는 의석 13석의 민주당에 휘둘려 고전하는 노대통령과 그 직계들, 그리고 열린우리당을 위해 총대를 멘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참에 ‘대통합’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이 점에서 노대통령과 DJ의 계산은 철저히 다르다. 둘 다 ‘대통합’은 하되, 주역은 ‘나’여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다. 이 전 총리는 DJ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DJ와 이 전 총리 간 대화가 흥미롭다. DJ는 “이번에는 정당이 중심이 돼 대통합 정당을 만들고 거기서 후보를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 세력이 대통합에 찬성하는가”라고 물었다. 이는 노대통령의 의중이 진정 ‘대통합’에 있는지 아니면 ‘열린우리당 사수’에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의도이다.
이 전 총리는 “신설 합당 방식으로 대통합 신당에 합류하는 데 열린우리당 내에 이견이 없다”라고 확언했다. 노대통령도 대통합에 동의한다는 얘기이다. 그러자 DJ는 “책임지고 대통합 문제를 잘 해나가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DJ는 전날 민주당 박대표 면담을 끝으로 ‘정치 주간’의 종료를 선언했다. 비난 여론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부랴부랴 이 전 총리를 집에서 만났다. 이른바 ‘소통합’의 움직임이 간단치 않아서다.
노대통령-DJ 연대론은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통합 대상들이 들고 일어났다. 특히 민주당과 중도개혁 통합신당 등 DJ 세력들까지 노대통령-DJ 연대를 ‘대선 필패 카드’로 매도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과 김한길 의원 등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이 만든 중도개혁 통합신당은 DJ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2008년 4월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호남 고정표에 의지해야 하고 DJ를 따라야 한다. 탈당파 상당수가 호남을 지역구로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DJ를 거역할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이 노대통령-DJ 연대에 반발하고 나섰다. 왜 이렇게 돌변했을까? 공멸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DJ와 노대통령이 손잡아 대선을 치르겠다고 하는 것은 한나라당에 대선을 헌납하겠다는 구도”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미래의 지도자를 뽑는 일에 과거 지도자가 개입하는 것으로 인식되면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도 했다. 민주당의 노대통령-DJ 연대 비난은 박상천 대표의 동교동 방문과 이 전 총리의 DJ 면담 직후에 나왔다.
중도개혁 통합신당도 반발했다. 김한길 대표는 “전·현직 대통령 연대론은 최근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추가 집단 탈당을 추진하고 있는 세력의 발목을 잡기 위한 것”이라며 “전·현직 대통령이 연대해서 다음 정권을 창출한다는 것은 그 어떤 정치 교과서에도 없는 이상한 논리”라고 맹비난했다.


 
연대 성사되어도 자충수 될 가능성 커


예상치 못한 역풍이 불었다. 그것도 강풍이다. 민주당과 중도개혁 통합신당은 노대통령이나 DJ의 대통합 요구를 비웃기라도 한 듯 서둘러 ‘당 대 당’ 통합에 합의했다. 이른바 소통합이다. 이제 열린우리당만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다. DJ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려온 범여권 분열 구도이다.
노대통령과 DJ는 역풍을 이겨낼 수 있을까? 두 사람 사이의 ‘대통합 주도권’ 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대통합을 해야만 둘 다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만약 ‘노무현-DJ 연대’가 성사된다면 과연 12월 대선에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의견이 엇갈린다. 노대통령에게는 여전히 20~30%의 고정 지지 세력이 있다. 범여권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한 것보다 훨씬 높다. 여기에 현역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적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떨어뜨릴’ 힘도 있다. 더구나 축적된 온갖 정보도 큰 무기이다. 노대통령은 사석에서 “이명박·박근혜 누가 나와도 이길 수 있다”라며 자신만만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 그를 만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전언이다.
노대통령과 DJ의 위력은 구체적인 표로 입증할 수도 있다. DJ는 호남 영주이다. 마음에 둔 후보에게 90% 이상의 표를 몰아줄 능력이 있다. 노대통령은 경남에 기반이 있다고 자부한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선거 때마다 경남에서 30%가량 득표한 기록을 자랑한다. 여기에 충청 또는 중부권의 맞춤 후보만 물색하면 ‘충청-호남 연대’가 뜰 수 있다. DJ 주장대로 “노대통령과 손잡으면 못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DJ 연대’는 다시 노대통령 얼굴을 선거 전면에 내세우려는 것이다. 거기다 DJ까지 얹어서이다. 노대통령과 DJ 두 사람이 범여권 대통합을 훈수하고, 여기서 단일 후보가 나온다면 갈데없는 ‘노무현-DJ’의 후보이다. 이래서 승산이 있을까? “아니다”라고 답을 얻은 것이다. ‘노무현-DJ 연대’의 치명적 결함이다.
‘노-DJ 빼고’를 외치는 소통합파, 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정대철 상임고문을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 탈당파, 노대통령과의 교감 속에 움직이는 문희상·유인태 의원의 기획 탈당파와 열린우리당 친노 직계, 많은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훈수를 두는 DJ, 대통합의 실타래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제 무덤만 파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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