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 울리다 허방다리에 빠지다
  • 최영재(한림대 교수· 언론정보학부) ()
  • 승인 2007.06.0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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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 지엽 말단적 사안에 치중해 '탈'

 

 국정홍보처가 내놓은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둘러싸고 빚어진 논란이 청와대와 언론계·정치권과의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실 통폐합을 넘어 ‘폐지 검토’까지 발언하자 ‘조폭식 언론 자유 협박인가’라는 제목의 신문 사설이 등장하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열린우리당을 제외한 모든 야당이 브리핑실 통폐합 개선책은 물론 국정홍보처 폐지를 6월 국회에서 본격 논의할 태세이다.
노대통령은 임기 말에 무슨 의도로 이같은 대언론 강경 방안을 밀어붙이려 하는가. 추정은 여러 갈래이다. 언론 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가. 언론의 비판에 대한 한풀이인가. 대선 국면의 전환을 위한 전략의 일환인가. 문제는 브리핑실 통폐합을 골자로 하는 ‘선진화 방안’이 노대통령의 의도와 관계없이 ‘언론 탄압’ ‘국민의 알 권리 무시’ 등 거대 담론의 개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정홍보처가 국무회의 결정을 거쳐 발표한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살펴보면 그 골격은 아주 간단하다.
첫째, 2003년 이후 실시해온 기자실 폐지, 브리핑 및 기사 송고실 운영 제도, 그리고 사무실 접근 제한 등 일부 부처에서 파행적으로 운영되어온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부처별 브리핑 룸과 송고실을 통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무실 접근 제한 조처도 해결하고 둘째, 취재 지원을 위해 전자 브리핑제 도입 및 브리핑 내실화 방안을 제시하고 셋째, 정보공개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우선은 취재 지원을 위한 전자 브리핑제나 브리핑 내실화, 그리고 정보공개법은 원활한 정부 홍보와 언론 보도를 위한 바람직한 제도로서 만시지탄일지언정 별다른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논란의 대상이고 특히 많은 반대에 부닥친 것은 기자실 폐지의 재확인, 그리고 부처별 브리핑 룸과 송고실의 통합 문제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 부분 또한 2003년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한 이후 바뀌어 시행되고 있는 현행 제도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이미 일부 통합해 운영되어온 부처별 브리핑 룸과 기사 송고실을 더욱 확대해 중앙청사·과천청사·대전청사에 통합한다는 정도이다.
그러면 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이번 언론 정책안에 반대하고 있을까? 그것은 이번에 발표된 내용 자체보다는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 전반에 대한 그간의 평가와 정서가 이번 ‘선진화 안’을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령 보수 진영은 참여정부가 그간 언론에 대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적대시해온 점을 이번 사안과 연결시켜 언론 자유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비판은 대체로 이번 조처가 언론의 취재 활동을 불편하게 하는 규제적 성격이 강하다는 데 모아지고 있다.
참여정부의 언론 개혁 정책의 가장 큰 가치는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 관계’를 선언함으로써 가능했던 언론의 독립성 유지 정책이다. 즉 과거 정부가 정권의 이해 관계를 고려한 언론과의 유착, 순치, 또는 공생 관계를 지향했다면 참여정부는 시장 지배적 보수 신문의 정파적 공격 저널리즘과 거리를 두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언론의 독립성을 정부가 보장하는 ‘개혁’을 시도했다. 언론은 정부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고 심지어 공격하는 언론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은 대통령이 “검찰이 나를 수사하라”고 선언함으로써 달성되는 검찰의 독립성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봉사하게 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송고실 통폐합은 언론 개혁과 거리 멀어


참여정부는 그래서 유착과 담합의 문제를 갖고 있던 옛 기자실을 정부가 없애고 브리핑 룸과 기사 송고실 체제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기자실을 폐지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브리핑 제도가 상당 부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정부의 내부 단속으로 인해 기자들의 취재원 접근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정보 공개를 꺼려하는 정부 취재원으로부터 기자들이 단결해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새롭고 건전한 형태의 신 기자단(실)도 부정적 여론 때문에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 개방형 브리핑 제도의 도입은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취재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만큼 정부 감시와 권력 비판 역할을 하는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개방형 브리핑 제도의 ‘보완·완성’이라며 브리핑 룸 및 기사 송고실 통폐합을 들고 나왔으니 큰 반발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부처 브리핑 룸과 기사 송고실의 통폐합 및 축소 방안은 언론 개혁 정신과 거리가 먼 정책이다. 언론의 정부 취재원과의 만남 및 대화를 어렵고 불편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기자의 정부 취재를 축소하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 잘못된 정책이다. 브리핑 룸과 통합 송고실을 중앙·과천·대전 청사 등 세 군데로 몰아놓는다 해도 기자들이 부실한 브리핑을 들으러 그곳에 안 가면 그만이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소지가 많아 차기 정부가 다시 고치면 그만이다.
기자실 폐쇄가 마치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개혁적 정책이라는 인식도 시정돼야 한다. 기자실은 정부 건물 안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정부가 필요에 따라 만들든지 없애든지 하면 된다. 중요한 점은 브리핑실이든 송고실이든, 아니면 기자실이든 정부 취재원과 기자가 만나는 공간은 모름지기 양방이 서로 의사 소통을 통해 정책 정보의 사실 여부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실에 상주하는 베테랑 기자는 잘못하면 유착하고 담합하는 기자가 될 수도 있지만 정부 정책 홍보 측면에서 보면 그만한 홍보 자산도 없다. 기자실에 상주하며 정부 홍보 또는 정부 비판 역할을 하는 전문 기자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비개혁적인 일이 아니다.
요컨대, 기자실 폐지와 브리핑 룸 및 기사 송고실 통폐합 방안은 언론 개혁과 크게 관계없는 지엽 말단적인 사안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합쳐도 그만 안 합쳐도 그만이다. 다만 정부와 언론에 불편만 주면서 말썽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정책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언론 정책 발표는  변죽을 울리고 허방다리에 빠져든 꼴이 되었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오히려 이번 정책 발표에 포함된 정보공개법 개정과 브리핑 내실화, 전자 브리핑제 도입을 우선 순위 정책으로 내세우고 알차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 부처 출입 기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참여정부의 개방형 브리핑 제도의 방향성에는 대체로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신 정부 출입 기자들의 불만은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실시한 이후 브리핑은 부실하고 정부 취재원을 만나기 어려워 제대로 취재가 안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언론의 정보 접근권이 제한받음으로써 언론 자유가 위축되고, 그로 인해 언론의 정부 보도뿐만 아니라 정부 감시 기능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정부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정보 공개에 의한 진정한 개혁 노선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에 대해 왜곡·편파·공격 보도하는 일부 언론도 개혁 대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언론의 문제를 비판하고 시정하는 일과는 별도로 정부는 언론이 충분히 정부 정보를 취재하고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언론 정책을 구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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