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 변혁 없이 시대의 스피드 따라잡을 수 없다"
  • 이재명 편집위원 ()
  • 승인 2007.06.0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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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5월 초, 강원도에 있는 한 유명 리조트에 눈길을 끄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자코(JAKO)그룹 전 계열사 간부회의.’ 처음 들어보는 회사 이름에 지나가는 이들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6일간 열린 회의 프로그램에는 3M, 존슨앤존슨, 유한킴벌리, LG전자 등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벤치마킹하는 강의 일정도 들어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논의하는 간부회의”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유명 대기업들로부터 노하우를 배우는 프로그램도 넣었다는 것이다.
자코그룹은 한국·일본·미국·중국·베트남 5개국에 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임직원 1백80명, 총매출 3백여 억원에 불과한 작은 규모이지만 내실은 대기업 못지않은 이른바 ‘소강(小强) 기업’이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전공정 제조 승인’을 받은 회사. 올해 초 미국의 피부과 전문 월간지인 <Dermatology Times>에 의해 미국의 성형외과·피부과 의사들이 선정한 ‘거래하고 싶은 업체 1위’에 뽑혔다.
다산을 장려해 전 임직원의 평균 자녀 수가 4명이다. 자녀가 셋이면 5백 달러, 다섯을 넘으면 1천 달러씩을 매달 자녀 수당으로 지급한다. 이는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의 하나가 되고 있다.
자코그룹의 민대기 회장(55)을 지난 5월10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 써포메디 사무실에서 만났다.


JAKO(자코)란 무슨 뜻인가.
원래 이름은 ‘Japan-Korea and World’이다. 그걸 두 나라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JAKO(자코)라고 부르게 되었다. 세계로 나가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1991년 일본 도쿄의 한 다락방에서 설립했다. 주 사업은 의료·미용·성형 분야의 기기·기구 제조 및 판매인데 미국에서는 제약, 일본에서는 여행사도 하고 있다.
원래 선교사였다고 들었다.
1980년에 봉제 회사를 차렸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섬유 산업의 후진성을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해 섬유·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마치지 못한 신학 공부를 하려고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일본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아르바이트만으로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돈을 벌어 선교 사업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1991년에 세운 첫 회사가 ‘자코 앤드 월드’이다.
8개 계열사를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일본에는 ‘자코 앤드 월드’와 ‘자코 투어’, 메디컬 시스템을 개발하는 ‘자코 시스템’, 의료기구 회사인 ‘포클리닉(ForClinic)’ 등이 있다. 미국에서 설립한 ‘베네브(BENEV)’는 제약 회사로 진단 시약, 의약품, 기능성 화장품, DNA·RNA 추출용 시약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신켄(新健)’은 홍콩과 중국에서 활동하는 의료기기 판매 회사이다. 한국에서는 ‘써포메디(SuppoMedi)’가 의료기기 및 성형 기구 등을 판매하고 있다.
제조와 판매는 나라마다 다르게 운영되는데 제조는 대부분 미국의 베네브에서 하고 있다. 첨단 업종이라서 임직원은 많지 않다. 사무직 1백28명을 포함해 1백80명 정도이다. 전체 매출은 우리 돈으로 3백억원을 넘는 수준이다. 앞으로 3년 내 1천억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FDA 승인을 받았다고 하는데.
2000년 2월 미국에 베네브를 설립하고 다음해인 2001년 12월 미국 FDA로부터 전 제조 공정에 대해 매뉴팩처 라이선스(Manufacture license)를 받았다. 상품 하나가 아니라, 공장 전체에 대해 의약품과 화장품을 제조할 수 있다는 승인을 받은 것이다. 한국인 기업으로서 이런 승인을 받은 회사는 우리밖에 없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어떻게 강조했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한국이 오늘날 이렇게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유난히 뜨거운 교육열 덕택이었다. 이제는 아시아의 후진국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 좋겠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호텔 생활을 할 정도로 여행을 많이 하는데 모든 분야에서 아시아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21세기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시대이다. 한국의 청년들이 해외로 많이 나가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
‘인류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오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그룹의 목표이다. 우리가 취급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살펴보면 대부분 이 목표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제약 회사, 의사, 학회, 산업체 등이 이 목표를 실현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앞으로는 노화 예방을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교육을 해나가도록 지원하겠다. 또 국제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등 이 목표를 위해 봉사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자코그룹의 미래 계획은?
이번 간부회의에서 ‘2010년 매출액 1천억원 돌파’를 목표로 정하고, “달성하면 연봉을 높여주겠다”라고 약속했다. 특히 ‘변화와 변혁’을 강조했다. “목표 달성은커녕 까딱 잘못하면 3년도 안 돼 망할 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라는 경고도 했다. 지금의 세계적 흐름은 스피드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20년 가까이 외국에서 살면서 나와 내 회사가 참 빠르게 발전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귀국해보면 한국은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의 경영 마인드로는 시대의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 회의에서 30대 후반 간부들을 경영진의 주축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국제 경영론, 위기 관리, 매출 증진을 위한 동기 부여, 기업 문화 창출 전략 등을 토론했다. 나는 사이버 공간도 삶의 일부분으로 본다. 그 블루 오션을 누가 차지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면 기업 문화이다. 직원들 자신의 개성이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협화음 가운데서 하모니를 이뤄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사업을 어느 쪽에 집중할 것인가?
BT(생명공학)와 IT(정보통신)를 합친 소재 산업 분야에 치중할 계획이다. 기업의 미래를 위해 다른 회사들을 벤치마킹했다. 업종을 다각화할 생각이다. 인체를 대체할 물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꼭 줄기세포가 아니더라도 뼈·혈관·신경·피·피부 등 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승자가 미래의 승자가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꾸준히 노력해 이 분야에서 개척자와 선구자가 되도록 하겠다.
현재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에 판매 승인을 요청한 신제품 ‘실리콘 젤 인공 유방’의 판매가 개시되면 매출이 급증할 것이다. 미국 FDA에서 지난해 말 승인받은 이 제품은 이제까지 식염수를 넣은 인공 유방의 부작용을 걱정해온 수많은 여성들에게 기쁨을 주게 될 것이다.
의료 시장 개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본격적인 FTA(자유무역협정) 시대가 열렸다. 의료 시장도 개방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의료 관련 소송이 많다. 이제까지 아시아에서는 별다른 의료 소송이 없었고, 한국 사회에서는 수면 아래에 감춰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방 후에는 의료 문제가 법률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환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한국은 대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의사, 법률 기관, 산업체 모두가 힘을 합쳐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기업은 기업들대로 힘들 것이다. 앞으로 의료 관련 학회와 단체들을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이제 의료 분야는 한국만의 의료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의료, 일본의 의료, 그리고 전세계의 의료를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의사들 가운데는 아직도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빨리 고쳐져야 한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정기 연주회를 한다는데.
대다수 임직원이 악기를 하나 이상씩 다룰 줄 안다. 나는 색소폰, 아내(강주옥)는 첼로를 한다. 색소폰은 인간의 감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노래를 바리톤으로 하는데 색소폰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60여 명의 임직원으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매년 연주회를 열고 있다. 지난 2004년 ‘꿈과 희망의 빛남’을 주제로 도쿄 아크토 홀에서 제1회 공연을 가졌다. 올해가 4번째로 10월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트센터에서 개최한다. 전 그룹 임직원들이 한국 공연을 위해 들어올 것이다. 내년에는 미국 LA에서 하기로 되어 있다.
임직원들에게 다산을 장려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전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한국) 정부의 캠페인을 믿고 딸 둘을 낳은 후 단산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는 말씀이 나온다. ‘인간이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이며 ‘자녀는 축복’이라는 관점에서 자녀를 많이 낳는 직원들에게 수당을 주는 것이다. 신앙과는 관계없다. 자녀가 많으면 생활비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가. 세 자녀를 가지면 5백 달러, 다섯 자녀 이상이면 1천 달러씩을 매달 급여에 얹어서 준다. 국가나 계열사 구분 없이 모두 받는다. 그 때문인지 임직원 평균 자녀 수가 4명에 이른다. 인구는 바로 국가 경쟁력이다.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과거에 교복과 단발을 강요한 시절이 있었다. 일본 식민지 문화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은 자기네들은 수염을 기르면서 한국인들은 못 기르게 했다. 내가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것은 내 자립과 자유의 상징이다. 한국에 오면 수염 깎으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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