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잔치가 시작됐다
  • JES ()
  • 승인 2007.06.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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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타자 양준혁, 홈런 킹으로 거듭나...근력 강화 · 찍어 치기 '대성공'

 
평이한 문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는 누구일까. 양준혁이다. 그는 만 38세. 곧 마흔이 된다.
어려운 문제. 삼성에서 타격 훈련을 할 때 가장 멀리 때리는 타자는 누구일까. 양준혁이다. 이승엽의 경쟁자였던 심정수가 아니다.
마지막 문제. 삼성에서 최신 가요를 가장 먼저 따라 부르는 선수는 누구일까. 양준혁이다. 20대 초반 선수들보다 한 박자 빠르다.
양준혁은 6월 중에 두 가지 대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홈런 2개만 추가하면 한국에서 통산 3백24홈런을 기록했던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양준혁이 이승엽을 넘어서더라도 장종훈(한화 이글스 코치·3백40홈런)의 기록이 남아 있다.
6월 초에는 개인 통산 2천 안타를 달성하게 된다. 이 부문에서 그를 앞서는 선수는 없다. 현대 유니콘스 전준호가 양준혁보다 2백 안타 가까이 처진 통산 2위이다. 양준혁은 1993년 입단한 후 15년간 무수한 기록을 쏟아냈다. 그에게는 홈런도 안타의 연장일 뿐이다. 그는 타격왕을 다섯 차례 차지하는 동안 홈런왕에는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40홈런 때려 홈런왕 거머쥐겠다”


불멸의 안타 행진을 하고 있는 양준혁이 올해는 홈런에도 눈을 떴다. 초반부터 자신보다 열세 살 어린 한화 김태균과 불꽃 튀는 홈런 경쟁을 벌이고 있다. 5월까지 13홈런을 때린 양준혁은 올 시즌 40홈런과 함께 생애 첫 홈런왕 타이틀도 바라보고 있다.
그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은 2003년 기록한 33개였다. 이승엽이 56홈런, 심정수가 53홈런을 때리며 ‘홈런 인플레이션’을 주도했던 해다. 그만큼이나 홈런왕과는 인연이 멀었던 양준혁이 마흔을 앞두고 홈런포를 펑펑 터뜨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양준혁은 타고난 장사다. 힘으로만 따지면 이승엽이나 심정수보다 훨씬 낫다. 키 1백88㎝에 체중은 100㎏이 넘는다. 타고난 통뼈에 길고 튼튼한 하체, 힙업된 체형 등을 보아도 힘깨나 쓰게 생겼다.
야구 전문가들은 장타를, 홈런을 치고 싶은 것이 남자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양준혁은 어려서부터 절제하는 습관을 들였다. 홈런 욕심을 내지 않고, 타율을 올리는 것이 팀과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양준혁은 “나는 홈런 타자가 아니다. 타율 3할을 치지 못한 채 홈런만 때리는 것은 내 야구가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한편으로는 이승엽보다 타고난 장사가 기술을 앞세우는 데 따른 안타까운 시선도 있었다. 그래도 거구는 자신의 철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랬던 양준혁이 올해 대포를 터뜨리고 있다. 힘을 더 키우고 기술을 한 단계 진보시킨 덕분이다.


 
“진화하는 투수 이기려고 나를 뜯어고쳤다”

양준혁은 매년 겨울 자신을 되돌아본다. 잘했든, 못했든 거울을 보듯 지난 시즌을 돌이키며 스스로를 해부한다. 양준혁은 “전력 분석이 날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보통 분석은 상대 투수를 연구하는 것이지만, 난 나 자신부터 돌아본다. 매년 진화하는 투수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나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양준혁은 지난해 타율 3할3리, 13홈런을 기록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부족함이 없는 성적이다. 그러나 그 정도에 안주했다면 오늘날의 양준혁은 없었다.
지난해 11월 양준혁은 고통스러운 비염 수술을 받았다. 비염은 완치가 안 된다지만 타격할 때 신경 쓰이는 것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12월 한 달 동안 하루 3시간씩 입에서 단내 나도록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워낙 힘을 타고난 그였기에 나이를 먹어도 애써 역기를 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남들 하는 만큼만 적당히 했다. 그저 많이 뛰고, 많이 스윙하는 것이 그의 훈련법이었다. 그런데 이승엽이 지난해 일본에서 41홈런을 터뜨리며 일본 센트럴리그 홈런 2위에 오른 것에 큰 자극을 받았다.
양준혁은 “이승엽은 지난 2년간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웠다. 그 결과 파워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스윙에 중심이 잡혀 있더라. 그렇다면 답이 나온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양준혁은 이승엽의 훈련을 전담 지도했던 트레이너를 찾아가 비슷한 훈련 프로그램을 받아냈다. 그의 근육은 더욱 단단해졌다.
또 하나의 변화는 기술적 면에서 이루어냈다. 삼성이 홈구장으로 쓰는 대구 구장은 올해 필드터프라는 인조 잔디를 깔았다. 지난해 대전구장에 처음 깔린 것인데 표면이 푹신해 타구가 잘 구르지 않는다. 1루수와 2루수 사이로 총알 같은 안타를 뿜어내는 양준혁에게는 환경이 불리해진 셈이다.
양준혁은 투수가 던진 공의 중심을 방망이 가운데로 맞히는, 전형적인 교타자였다. 정통으로 맞으면 빨랫줄 같은 타구가 외야에 떨어지고, 공의 약간 윗부분을 맞히면 강한 땅볼이 된다. 밑을 때리면 타구가 떠서 운 좋으면 홈런이 되는 식이었다.
홈구장이 바뀌자 양준혁은 타구를 띄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20여 년 동안 유지해온 스윙 궤적을 뜯어고쳤다. 방망이 중심으로 공의 밑부분을 찍어 때린 뒤 살짝 들어 올리는 스윙이다. 이승엽의 스윙 궤적과 비슷하다지만 말처럼 쉬운 기술이 아니다. 양준혁은 “스윙이 바뀌니 펜스 앞에서 잡힐 타구가 다 넘어가더라”며 웃었다.
그라운드에서 양준혁을 만나면 늘 한결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뻘 되는 선수들보다 열심히 뛰고 공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 표정이 그를 늙지 않게 한다. 평범한 땅볼을 쳐도 죽기 살기로 1루까지 뛴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싶으면 가장 먼저 운동장에 나와 땀을 흘린다. 야구에 대한 고민을 야구로 푼다. 때문에 야구만이 그에게 고통을 주고 행복을 안긴다. 프로스포츠 최고령 노총각이지만 별로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이유이다.
양준혁은 “나이 얘기 좀 그만 해달라. 타격 훈련을 하면 나만큼 잘 치는 선수가 있는가. 또 젊고 싱싱한 투수들이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고 한 치라도 봐주는 줄 아는가. 내 나이가 많은 게 아니다. 한창 일할 나이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나이를 이겨낸다고?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게 물리적 나이가 무슨 상관이던가. “야구장에서 최신곡이 흘러나오면 내가 가장 먼저 알아듣고 따라 부른다. 요즘 애들, 뭐가 유행인지 하나도 모르더라.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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