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에 균형 발전이 될 말인가"
  • 조규석 (언론인) ()
  • 승인 2007.06.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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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걸어온 삶의 궤적은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젊은 날에는 체제에 저항하는 이른바 민주화 운동권이었고, 급진 좌파 정당 소속으로 현실 정치에 입문한 후 ‘변절’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을 거쳐 정치적 입신을 했다. 약간의 시대적 시차는 있지만 같은 운동권 출신인 손학규 전 지사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바쁜 사람이었다. 노타이 차림의 그는 “늦어서 미안하다”를 되풀이했지만 표정은 밝고 말은 명료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응접실에서 내다보이는 공관 정원은 드넓었고 잘 가꾸어진 잔디는 초록으로 고왔다. 젊은 시절 혁명 민중 계급 등 추상 개념에 매달려 투옥까지 경험했던 투쟁가가 목민관이 된 지금 과연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도정(道政)을 이끌고 있는가. 이를 가늠하기 위해 그가 현재 누리는 외형적 ‘호사’에 대한 감상을 가장 먼저 물었다. “오랫동안 궁핍의 고통을 경험한 운동권 출신으로서 이토록 넓은 정원을 낀 저택에 사는 감회는 어떤가?” 그는 웃으며 낮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아닌가. 나는 무소유 개념을 갖고 있다. 이곳도 지나가는 세상의 쉼터라 생각한다. ‘크다’ ‘작다’의 개념이 없다. 도민들이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일 감사하고 책임감을 더 느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공직자 중 한 사람일 것 같다. 하루 일과는?
오늘도 양평 마라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7시에 공관을 나섰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그날의 일과를 점검한다. 밤늦게까지 e메일을 열어보고 실·국장들에게 지침을 내린다. 보통 1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든다. 의원 시절에 비해 잠이 부족한 것 같다. 정창섭 부지사가 일을 아주 잘한다. 과감하게 여러 부분을 위임시켰는데도 일이 많다. 경기도는 일이 많은 곳이다.
도정 캐치프레이즈를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식물에는 성장점이 있다. 세포 분열이 가장 왕성하게 일어나는 곳인데, 대한민국의 성장점은 경기도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이다. 서울의 열일곱 배도 넘는 경기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 경기도는 다양한 환경이 있는 지역이다. 산과 바다가 있는 자연 환경, 연천의 최전방 지역부터 여러 신도시가 있다. 이른바 혐오 시설도 많다. 서울시립인데도 경기도에 자리 잡은 납골당, 화장장만 해도 13개이고 장애인 시설, 정신병원 같은 것들이 33개가 있다. 성장점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분당·일산처럼 계획적으로 개발하면 천당이고 난개발을 하면 난장판이 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린벨트 지역이 난개발되고 있다. 과도한 면적 규제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확실히 못하게 하든지, 세밀한 계획을 세우든지 해야 한다. 무조건 못하게 하니까 종기 터지듯 난개발이 되고 있다. 신도시도 크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게 지을수록 친환경적이고 녹지가 많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동탄 신도시에 대해 ‘또 신도시냐’ 하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나는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규모가 축소된 것이 아쉽다. 원래 계획은 2천만 평이었는데 6백60만 평이 되었다. 규모를 크게 해서 주거와 환경을 잘 나눌 수 있는 계획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도시 계획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세계 최고의 건축·도시 설계사들이 국내에 들어와 있다. 단계적으로 산업단지, 주거 시설, 연구 시설들을 개발해나가면 되는데 그저 안 된다고만 하니 답답하다. 그린벨트 지역의 축사 시설 같은 곳에 들어가 보면 공장인 곳이 많다. 규제 때문에 이런 난개발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인구는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있는데 신도시를 안 만든다면 대안이 무엇인가. 중국은 등록인구제를 통해 도시의 인구 유입을 막고 있다. 광둥성의 인구는 9천3백만명인데, 실제 상주 인구는 1억명이 넘는다. 규제를 해도 인구 이동은 못 막는다. 서울로의 집중을 막기 위해 면적을 규제하겠다고 하는데, 규모를 작게 하면 나 홀로 아파트가 늘게 된다. 한마디로 난개발이 된다. 동탄 신도시 때문에 경부고속도로가 막히지 않느냐라는 얘기도 있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무슨 대안이 따로 있는가. 제2순환로를 만들 수도 있고, 분당선과 경부고속도로를 정비하면 된다.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김지사가 지금 내세울 만한 업무 성과는 무엇인가?
7월1일부터 수도권 대중교통 체계가 통합된다. 서울에서 안성을 가든, 평택을 가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서울의 교통카드를 경기도 어느 곳에서도 쓸 수 있다. 교통 문제에서는 대수도권이 이뤄졌다고 본다. 이것은 상당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는 교통 시스템이 서울처럼 통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31개 시·군별로 나눠져 있고 교통망이 복잡하다. 예산 문제 등 어려운 일이 많았다. 시장·군수들에게 나에게 위임해달라고 부탁하고 대신 지원을 약속했다. 예산을 집중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서 해결해냈다.
김지사가 주창하는 ‘대수도론(大首都論)’은 노무현 정부의 지방 균형 발전론과도 배치되고 충청·강원 등 인근 지자체와도 충돌한다. 계속 주장하고 추진할 자신이 있는가?
‘지방 균형 발전론’은 그 자체가 불합리하다. 합리적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 중국의 사례로 설명하겠다. 중국은 지금 천진에 빈해(濱海) 신항을 만들고 있는데 그 면적이 서울의 2배가 넘는다. 도로의 경우 ‘8종(從)8횡(橫)’을 국가 전략으로 밀고 나간다. 베이징에도 6순환로, 7순환로까지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같은 공산당 정권 체제에서도 규제, 균형 발전을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수도권을 묶어서 규제하는 경우는 없다. (수도권을) 묶고 (수도권에서) 뜯어서 나눠주는 식은 안 된다. 균형 발전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과연 높아졌는가? 경기도청 같은 경우에도 의정부·수원으로 행정을 나눠놓았는데 전혀 효율적이지 못하다. 예산 배분이나 인재 활용 면에서 손실이 많다. 그래서 하나로 통합할 생각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 정책은 목가적 시대에서는 될지 모르겠지만 글로벌 시대에서는 안 된다.
평택(미군기지), 이천(하이닉스), 팔당(상수원) 문제는 어떻게 풀 생각인가?
평택기지 문제는 아주 잘 해결되고 있다. 평택 지원 특별법을 만들어서 정부 예산 지원, 규제 철폐 등이 이뤄졌다. 반대로 미군기지가 빠져나간 포천·연천 지역은 어떻게 되었는가. 포 사격만 하는 동네가 되어버려서 지역의 경제가 후퇴했다. 군사 시설 주둔지 특별법을 만들려고 계획 중이다. 이천은 문제가 많다. 아직 감정이 식지 않은 상태다. 팔당 상수원의 경우 물을 깨끗하게 하고 하수 처리율을 높여야 한다. 하수 처리율이 서울은 99.3%에 이르는데, 팔당 지역은 63%밖에 처리를 못하고 있다. ‘하수 처리를 강화하면 개발을 더 할 것이다’라며 거부하고 있다. “7개 시·군 1백80만명이 2천3백만명을 위해서 희생하라.” 이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물 이외의 규제는 풀어달라.” 이것이 핵심이고 도의 견해이다.

 

경기도는 남북 경협에 열심인데 북한의 태도로 보아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남북 관계에 긴장이 오면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파주·김포·연천 사람들이다. 그래서 경기도로서는 원만한 남북 관계를 원한다. 얼마 전 북한 지역에 모내기를 다녀왔다. 한 도의원은 “지난해에는 평양군 주민들과 접촉을 못하게 했는데 올해는 북한 주민 30명과 같이 만나서 대화도 했다. 우리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졌으며 나름으로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볍씨를 주고 영농 기술을 가르친다. 경기도는 돼지 부분에서 전국 1위이다. 돼지 부분을 도와주겠다. 산에 나무도 심어주고 연탄도 지원하고 말라리아 퇴치 작업도 도와주려고 한다. 대신 이산가족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제안을 여러 번 해왔다. 당장은 안 되더라도 분단도로서 고향 방문, 관광 이런 부분을 추진해보고 싶다.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주면 지원을 늘릴 방침이다. 북한에서 콩기름 공장을 지어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경기도 땅에 지어줄 용의도 있다.
‘취재 지원 선진화’ 때문에 시끄럽다. 어떻게 보는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반대하고 있다. 언론 자유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최고 상징이 아닌가. 언론과 맞서면서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정치인의 시각으로 노대통령의 의도를 읽을 수 있겠는가?
독선에 빠졌다고 본다. 독선에 빠지면 방향과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이가 많거나, 고립되거나, 지위가 높아지면 독선에 빠질 수 있다. 노인의 독선은 경험으로부터 오는 독선이다. 지위가 높을 때 생기는 독선은 동서고금을 볼 때 흔히 있는 일이다. 도지사만 되어도 독선에 빠질 위험이 크다. 대통령 되면 오죽하겠나. 고립에서 오는 독선이 크다고 본다.
경기도는 어떻게 대언론 창구를 운영할 참인가.
변함이 없다. 기자실도 있고, 브리핑실도 그대로다. 기자실을 수리해줬다. 언론과의 관계는 관용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언론과 권력의 관계는 늘 긴장 상태여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이 곧 생각을 바꾸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범여권의 통합 논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전망하는가?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이후에 나눠지지 않고 정당으로서 정통성을 이어갔다면 미국 식의 건전한 양당 체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열린우리당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혁신하고 자신의 개혁 정신을 불어넣었다면 국민들의 혼란도 덜했을 테고, 당 지지율도 견고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선거가 다가오자 통합한다고 하니 보기에 안 좋다.
한나라당 집권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한나라당의 두 후보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과거 이회창 총재의 대선을 돌아보면, 다 된 것처럼 생각하는 순간 반드시 안 된다. 이것이 대선이다. 늘 겸허해야 하고 되고 나서도 겸손해야 한다. 늘 국민을 하늘처럼 생각해야 한다. 민의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하늘을 대하듯 존중해야 한다.
줄서기는 안 하나?
현재 줄 설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그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기웃거린다면 (표를) 깎아먹기만 할 것 같다.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 분이 공정하게 힘을 합치기 바란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검증위원회가 구성됐는데?
검증이 잘 안 되는 것은 당 때문이다. 봐주기 식의 검증은 하나 마나다. 당이 링이라면 대선은 야전이다. 링 안에서 이뤄지는 것은 검증이 아니다. 확실히 해야 한다. 실전 같은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 과거에 두 번 선거를 돕다 보니까 깨달은 것이 있다. 제보·풍문·비판 이런 것을 차단하지 말고 그대로 적용을 해봐야 한다. 그런 것들을 막으려는 메커니즘이 내부에 작동하는데 그런 부분을 검증위원장이 잘 생각해봐야 한다. 후보들이 검증위원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전형적인 운동권 출신이다. 젊은 날의 열정을 어떻게 회고하는가?
가난, 격변, 그리고 혁명, 좌절, 고난. 몇 마디로 하면 이런 것들이 아니겠나. 그 시대를 가장 아프게 살아왔던 사람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당시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나름으로 열정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평등·민족주의 등 나의 이상을 극단화시켜봤는데 안 되더라. 사회주의 이론보다는 자유주의, 민족주의보다는 글로벌리즘이 옳다고 생각한다. 내셔널리즘의 극단은 매판 자본, 평등주의의 극단은 재벌, 민주주의 극단은 군사 독재이다. 민주주의 부분은 성공했다. 언론이 이렇게 많아질 정도로 민주주의가 확대되었다. 우리의 시행착오와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私)를 추구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 바쳤던 그런 정신은 소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잘못 판단했다. 당시에 가장 틀렸던 점은 자동차 제조를 반대한 것이었다. “기술 없다, 시장 없다, 자본 없다, 역사적 사례가 없다, 유신 독재를 하려고 독재의 도구로 국민을 현혹하려 한다”라며 반대했다. 당시에 자동차·조선·제철 산업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었겠나. 우리(민주화 운동권)는 그 점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다.
30대에 들어선 무렵이면 스스로 틀렸다는 걸 깨달았어야 하지 않나?
눈치가 좀 늦었다. 그러나 변명하자면 늦게까지 그렇게 했던 이유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광주 민주화 항쟁 때문이다. 전두환에 대한 반감이 운동권을 극단적인 길로 이끌었다.
6·10 항쟁으로 이룩된 ‘87년 체제’가 끝났다고들 한다. 어떤 판정을 할 수 있나?
민주화 부분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있다. 세계 최고의 발전을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서 글로벌한 변화가 있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좀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태우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국가 경영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서툴렀다. 국가 경영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권력의 핵심에 포진하고 있는 ‘386’ 인사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생각이 틀렸다. 오류·무경험·무모함으로부터 나오는 독선, 타인에 대한 공격성들로 뭉쳐져 있다. 기본적으로 민주화 과정에서 옳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계를 모르고 기업을 모른다.
도덕적으로 순수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그렇고…. 인간은 도덕적이라기보다는 본능적 측면이 강하다. 인간은 도덕적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실패한 게 사회주의 아닌가.
김지사의 사상 체계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나?
크게 보면 중도라고 볼 수 있지만 기업을 중시해야 한다든지, 규제를 풀어야 한다든지 그런 부분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혼재되어 있는 측면이 강하다. 온실 속에서 자란 사람들보다는 진폭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운동권에 몸담은 것은 결국 정치적 입신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
당시에는 죽음을 넘나드는 과정이었는데 그렇게 볼 수는 없다. 당시에는 순수했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졌던 것이 아닌가.
부인도 운동권 출신인데 내조자로서 어떻게 지내시나?
불우 시설 등 내가 못 돌아보는 부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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