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에 몸 단 종이들의 아우성
  • 이재명 편집위원 ()
  • 승인 2007.06.1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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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신문 · 잡지 '홍수'..."광고만 넘치고 정보는 빈약" 비판도

 
공짜 신문, 공짜 잡지가 넘쳐나고 있다.  돈 안 들이고 다양한 매체를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가 하면, 광고만 잔뜩 모아놓은 종이 낭비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요즘 출퇴근 시간대 서울과 수도권 지하철, 전철 안에서는 신문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일간 신문을 활짝 펼쳐든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대다수가 타블로이드판 무료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전에는 <메트로> <더 데일리 포커스> <AM7> <데일리 노컷> <데일리줌> <스포츠한국> 등 6종류가, 오후에는 지난 5월2일 창간된 석간 <더 시티>가 지하철역 입구마다 깔린다.
종류가 늘다 보니 다루는 내용도 차별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무료 경제 신문 <데일리 이코노미 일일경제>가 창간을 추진 중이다. 호황을 보이고 있는 증권 시장 뉴스를 비롯해 부동산, 재테크 등 경제 분야 읽을거리를 중심으로 생활 정보와 레저, 엔터테인먼트 등을 다룰 방침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경제 일간지를 만들어 공짜로 뿌리겠다는 것이다. 지하철과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 배포하고 일부는 배달도 해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료 잡지는 이미 <노블레스> <네이보> <오떼> <더 퍼스트> 등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월간지에서부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쇼핑·음식점 광고 잡지 등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이렇게 무료 신문·잡지가 넘쳐나자 유료로 발행하는 기존 신문, 잡지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간 신문 대부분이 발행부수 감소 속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무료 신문들은 짭짤한 흑자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신문과 경제 신문들의 위기감은 더욱 심각할 정도이다. 
무료 일간지 <메트로>는 지난해 3백40억원 매출에 3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전년 대비 23%, 100%가 각각 늘어난 것이다. <포커스>는 3백50억원 매출에 전년 대비 3배가 넘는 2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일간지들의 협의체인 한국신문협회는 가뜩이나 어려운 신문 시장의 매출과 광고 수입이 더욱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신문협회보>에 따르면, 한국신문협회는 최근 무료 신문의 난립과 폐해 방지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해외 무료 신문 시장의 실태와 각종 규제 제도에 관한 긴급 조사에 나섰다. 협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해외 무료 신문의 태동 배경과 독자층, 기존 유료 신문 간의 관계 등을 재분석할 예정이다. 각국 지자체 등에서 무료 신문에 부과하고 있는 폐신문 처리 비용에 관한 사항도 검토한다.
서울 송파·용산구청이 최근 무료 신문에 대해 도로법 위반으로 과태료 10만원의 행정처분을 내린 사례 등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도로 무단 점유로 인한 법규 위반 등 관련 법률 사례도 조사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소한의 규제 장치는 있어야 하며 동일한 시장에서 기존 신문과 무료 신문의 공정한 경쟁의 룰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무료 신문들은 연합뉴스가 제공하는 일부 뉴스에 광고성 기사를 싣고 나머지 대부분의 지면을 광고에 할애해 수익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유료 신문과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신문 판매인들도 크게 반발, 소송 준비
신문 업계는 정책 주무 부서인 문화관광부가 무료 신문의 난립과 폐해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문협회는 지난해 8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문광부에 무료 신문의 난립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한편 신문 판매를 수입원으로 삼고 있는 신문 판매인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생계를 위협받기 때문이다.
지하철판매협의회와 서울시신문판매협의회 등 신문 판매인 단체들로 구성된 신문 발행·배포 공정화대책위원회(위원장 박종근)는 법무법인 청목(이주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무료 신문이 도로법과 공정거래법 및 옥외광고물관리법 등에 저촉된다”라는 법리 해석을 받았다. 이에 따라 서울시 및 서울 25개 구청에 불법 도로 점유를 이유로 단속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출했으며 ‘지하철 입구 (무가지)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도 낼 방침이다.
일부 신문사들은 무료 신문들 공세에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3월 <중앙선데이>를 창간해 일요일에 배달하고 있다. 월 5천원(중앙일보 독자에게는 3천원)에 유료 판매하는데 서울과 수도권 독자들이 타깃이다. 조선일보는 <토·일요일 주말판>을 만들어 <중앙선데이>를 견제하고 독자들을 붙잡겠다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동아일보는 3월 <THE WEEKEND>를 창간해 서울 강남·서초·송파·분당 등 고소득층 지역에 배포하고 있다. 
무료 신문 업계도 사정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신규 업체가 계속 도전장을 내밀면서 창간 준비를 하고 있는 데다 한국철도공사(사장 이철)가 KTX 등 철도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신문을 별도 제작·배포하는 사업에 독점권을 부여하겠다면서 공개 입찰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철도공사에 매년 수억원대의 사업권료를 내고 별도의 제작을 해서 별도 배포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한편으로 이 사업을 포기하게 되면 시장 선두 주자로서의 자존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고민에 빠지게 것이다.
일부 무료 신문은 광고 수주가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한겨레가 2003년 창간했던 여성 대상의 고급지 <허 스토리>와 2004년 서울신문이 창간했던 무료 신문 <굿모닝서울>은 막대한 적자를 보다가 폐간되었다.
변화를 추구하는 곳도 생겼다. <데일리 노컷뉴스>는 유료 주간지인 가칭 <위클리 노컷뉴스> 창간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의 인력을 활용해 제작하고 공항·호텔·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의 여행객을 타깃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외국에서도 무료 신문은 신문 업계의 새로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아메리칸 저널리즘 리뷰(AJR) 4~5월호에 실린 로리 로버트슨이 쓴 ‘가정 배달 무료 신문’에 따르면, 스웨덴에서 시작된 무료 신문 <메트로>가 미국 주요 도시에서 발행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그재미너(Examiner)>가 유일한 무료 배달 신문으로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 볼티모어에서 발행되고 있다. 중산층 가정만을 대상으로 가정 문 앞에 배달하거나 길가에서 집어가도록 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대학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스쿨의 피트 바커 교수는 무료 일간지가 44개국에서 2백여 종이나 발행되고 있다고 집계했다. 발행 부수는 3천5백만 부에 이른다. 2004년 말 기준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국가·도시별로는 덴마크가 5개로 가장 많고 스페인과 체코·파리·런던에서는 각각 4개씩, 네덜란드·스웨덴·이탈리아·그리스에서는 각각 3개씩 무료 일간지가 나오고 있다. 이 집계에 한국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는 “기존 유료 신문들은 독자들의 기대에 충족할 수 있도록 더욱 질 좋은 신문을 만드는 것이 생존책이다. 무료 신문 시장도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매체별로 차별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심교수는 “미국에서는 무료 신문이라고 하더라도 광고성 기사, 기사 형식의 유사 광고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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