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로스' 탄생하는가
  • 서종수(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1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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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헤지 펀드 설립 허용 추진... 국내 자본 시장 대변화 몰도 올 듯

 

 

 

 

 

 

 

 

 

 

 

 

1992년, 미국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영국 파운드화의 고평가를 확신하고 파운드화를 대규모로 팔았다. 뒤따라 다른 투자자들도 파운드 투매에 동참하게 되고,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20%의 폭락세를 보였다. 파운드 방어에 나섰던 영국의 중앙은행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소로스는 거의 2주일 만에 10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는데 지금 가치로 따지면 100억 달러나 되는 어마어마한 거금이다.
이때부터 소로스는 국제 헤지 펀드계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떠올랐고 그가 운영하던 퀀텀 펀드는 헤지 펀드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헤지 펀드란 소수 거액 투자자들에게서 자금을 모집해 주로 조세 회피 지역에 거점을 확보하고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차익을 얻는 투기성이 강한 사모 펀드를 말한다.
전세계 금융 시장에서 헤지 펀드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헤지 펀드를 자유롭게 설립·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제정 작업이 진행 중인 자본시장통합법 내에 헤지 펀드의 설립·운영 등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헤지 펀드 지원 규정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도 지난 5월14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유로머니 주최로 열린 한국 자본 시장 콩그레스에 참석해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자산운용업 시장의 기반이 공고해지면 헤지 펀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자본 시장의 마지막 ‘빗장’ 열리는 셈
우리나라에서 헤지 펀드의 설립이 자유화되면 자본 시장에 마지막 남은 빗장이 활짝 열리게 된다. 공모 펀드 일색의 국내 자산 운용 시장이 일거에 탈바꿈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현재에도 사모 펀드가 허용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헤지 펀드처럼 운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각종 규제 때문이다. 사모 펀드들은 자산운용업자로 등록해야 하고, 헤지 펀드의 주요 투자 기법인 차입이나 공매도(주식 등을 팔고 난 뒤 값이 떨어지면 나중에 되사서 갚는 기법)를 하지 못하고 있다. 운용사도  1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가져야만 설립이 가능하고 운용 수익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성과 보수의 한도도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같은 규제로 인해 사모 펀드는 10개 미만, 운용 자금은 3조원을 밑도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가 헤지 펀드 허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국제 금융 시장 변화 흐름에서 뒤처질 우려가 있고 국제 투기 세력의 국내 시장 공략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헤지 펀드 불모지인 한국은 그동안 외국계 헤지 펀드들의 줄기찬 공격 대상이 되어왔다.
미국의 소버린 자산운용은 2003년 4월 SK의 경영권을 위협해 8천억원이 넘는 차익을 얻고 유유히 국내 시장을 떠났다. 2006년 2월에는 미국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를 위협해 높은 수익을 얻고 빠져나갔다. 일종의 사모 펀드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의혹 사건도 마찬가지 사례이다.
한 자산운용회사 사장은 “기존 공모형 대형 펀드들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고객을 모으기 때문에 특정 투자자들의 요구를 맞추기 힘들었다. 헤지 펀드 설립 허용은 외국의 투기 세력에 대항마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세계 헤지 펀드 시장 규모는 1조4천1백억 달러, 운용 펀드 수는 1만4천여 개에 달한다. 이들 헤지 펀드는 대개 시장의 비효율성이나 기업의 불합리한 지배 구조를 집중 공략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바꿔 말하면 시장에 내재된 비효율성을 헤징(위험 회피)하면서 고수익을 얻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러한 목적 때문에 주식·채권·외환·금융 파생상품 등을 대상으로 매우 다양한 투자 기법이 동원된다.
헤지 펀드의 또 다른 특징은 거액의 자본가들로 구성되는 ‘이너 서클(inner circle)’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반 펀드에 비해 운용 방식이 훨씬 불투명하다. 대개 헤지 펀드는 짧은 투자 기간에 치고 빠지는 전술로써 실적과 운영 성과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다.
특히 헤지 펀드들은 공모 펀드들이 금기시하는 투자 기법을 종종 이용한다. 대표적으로 ‘공매도’를 들 수 있다. 공매도란 주식이나 상품의 현물을 갖고 있지 않거나 갖고 있더라도 실제로 이를 상대방에게 인도할 의사가 없이 증권회사나 중개인에게 일정률의 증거금만을 지급하고 팔았다가 일정 기간 후에 되사들임으로써 그간의 가격 하락 또는 상승분의 차익금을 결제하는 방법이다. 가격이 하락한 경우에는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오른 경우에는 원금을 날릴 수도 있다.
헤지 펀드들은 대개 거대 자본을 동원해 하락시킨 뒤 이익을 챙긴다. 외환 투기 때 공매도 수법이 자주 등장하는데 헤지 펀드의 이익 창출 원리는 이렇다. 일단 원화를 예로 들면, 소로스가 우리나라 원화의 고평가를 확신하고 1천억원의 원화를 빌려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고(공매도) 달러를 매입한다고 치자. 1억 달러가 매입된 셈이다. 원화를 대량 공매도했으니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환율이 상승해 달러당 2천원까지 치솟았다고 하자. 보유하고 있는 1억 달러를 이용해 원화를 사면 2천억원을 갖게 된다. 그런 다음 차입한 1천억원을 갚는다. 결국 자기 돈 한 푼 안들이고 1천억원의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퀀텀 펀드의 이같은 공격으로 파운드화가 폭락했고 환율 불안으로 무역 시장에서도 고전했으며 영국 경제 역시 오랜 기간 침체에 빠졌다.


 
일부 헤지 펀드 매니저, 연봉 1조원 넘어
두 번째 전략으로는 차입을 통해 레버리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레버리지란 자본 수익을 올리고자 할 때 부채(타인 자본)와 자기 자본의 비율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수익률, 즉 자기자본 이익률이 영향을 받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즉 부채 비율이 클수록 영업이익률의 수준에 비해 자기자본 이익률의 수준이 높아지는 반면, 영업이익률의 변동이 확대되어 자기자본 이익률의 변동은 그 이상으로 커진다. 재무 레버리지의 지표로는 자기자본 비율(자기자본/총자본)과 부채비율(부채/자기자본)이 이용된다. 예를 들어 헤지 펀드가 1억 달러의 자금을 모으면 차입을 통해 많게는 10억 달러, 10배의 자금으로 불려서 투자를 하기도 한다. 만약 그 10억 달러로 2억 달러의 수익이 발생했다면 빚을 갚고서도 거의 2배 가까운 수익을 올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외환위기 때 소로스가 레버리지 방식으로 서울증권을 인수해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린 바 있다. 그는 당시 헐값으로 매입해 다양한 방법으로 원금을 모두 조기 회수했다.
공매도나 레버리지 투자는 헤지 펀드의 전통적 수법에 속한다. 최근 들어서는 여러 최신 기법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세계적인 거시경제변수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를 영어로 ‘글로벌 매크로(Global Macro)’라고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국제 시장에서 자본 등의 이동에 투자하는 것이다. 종종 이자율의 차이나 현물의 이동에서 차익 거래를 하는 파생 상품이 많이 이용된다.
외국의 유수 헤지 펀드 매니저들은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창업자 짐 사이먼은 지난해 17억 달러(1조7천억원)를 벌었다. 시터들 인베스트먼트의 매니저인 캔 그리핀의 연봉은 14억 달러였다. 이같은 고액 연봉은 헤지 펀드들의 성공을 대변한다. 지난 1분기 뉴욕 증시의 S&P지수 수익률은 0.64%인 반면 6천여 개 헤지 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은 2.1%나 되었다. 부실기업 전문 펀드의 경우 4.15%, 신흥 시장에 투자한 펀드는 5.5%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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