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정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60)은 지난해 12월 협회장 선거 때 내걸었던 공약 지키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경제인 단체장으로서 회원 기업들의 권익 보호에 팔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최근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여성가족부 관계자와 중국을 방문해 그곳 여성 단체와의 교류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정부·국회 접촉, 유관 기관·단체 회의 참석도 마찬가지다. 여경협 회장이 되면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등 20여 개 당연직을 맡는 등 할 일과 오가야 할 곳이 무척 많다.
안회장은 패션업체인 (주)사라 ‘앙스모드’ 대표이사 겸 패션 디자이너로서 여성 기업인들의 애로를 꿰뚫고 있어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32년 사업 경험과 29년간의 여경협 활동을 바탕으로 그들과 협회 문제점이 무엇인지 훤히 안다. 여경협 회장에 취임한 지 6개월을 맞은 안회장을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먼저 여경협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1977년에 닻을 올려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이 된다. ‘여성 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특별 법인체로 1천7백여 여성 기업체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전국 1백14만 여성 경제인들의 중심축으로 경제 5단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공약 내용 중 어떤 일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가?
경영연구소 설립 추진, 정부 조달품의 5% 할당제 관철, 고학력 여성 인력 활용 방안 마련 등이다. 모두 ‘여경협 명품 브랜드화’와 관련된 사업들이라고 보면 된다. 여성 기업이 만드는 제품에 대해 ‘여경협 회원사라면 어디라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협회가 앞장서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다. 연구소 설립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보완책이다.
경영연구소 설립 배경은 무엇인가?
40~60대 여성 기업인들은 자신에게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경영해오고 있다. 1세대 여성 CEO(최고경영자)들 중 ‘생계형 사업’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자신의 뜻에 따라 사업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대다수가 전업 주부로 있다가 남편을 잃고 사업을 물려받는 등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전공이나 적성과 상관없이 사업에 나서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살아온 사람들로 경영 애로가 무엇인지조차 돌아볼 겨를이 없다. 바로 그런 배경에서 연구소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연구소의 역할은 무엇이며 언제 문을 여는가?
연구소는 여경협 회원과 전문가들로 컨설팅 팀을 구성해 세울 예정이다. 역할은 여성 기업인들에게 필요한 정책 연구와 지원이다. 국내 유일의 여성 기업 전문 연구·지원 창구가 되는 셈이다. 문은 내년 중 연다. 하반기 들어 예산을 짜고 구체안도 만들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중소기업청이 몇몇 회사를 뽑아 컨설팅 비용을 지원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회원사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했고 액수도 불공평했다. 연구소가 가동되면 컨설팅 기구를 만들어 유통·제조·판매 등 분야별로 도우미 역할에 나설 것이다. 물론 정부 도움도 필요하다.
정부나 사회가 여성 기업을 도와야 하는 이유는?
여성 기업은 남성 기업들보다 대부분 후발 업체이고 규모도 작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 큰 곳이 적잖다. 우리 여성들의 잠재력과 끈기는 대단하다. ‘억척’이라는 말이 떠올려질 정도다. 경영이 투명한 점도 장점이다. 과거 개발 시대 어머니·누나·여동생의 희생과 뒷바라지로 공부해 활동 중인 남성 기업인들이 이젠 여성에게 양보하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3백만 중소기업 중 38%가 여성 업체이다.
‘조달 물품 5% 여성 기업 할당제’ 등은 경쟁 사회에서 성 차별 아닌가?
그렇지 않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 분야 중 가장 약한 경제 부문에서 꼭 필요한 제도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남성들보다 늦게 경제적 책임을 떠안게 된 여성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본다. 말로만 ‘여성 우대’를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당장 절실한 것부터 실천했으면 한다. 물론 일부 단체에서 ‘남성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니 ‘여경협 회원사들만의 특권’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 주장은 여경협이 국내 최대 여성단체이고 협회가 의욕적으로 일을 벌이자 경계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여경협의 문은 늘 열려 있다.
정부 지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가능성은 있나?
답답한 점들이 많다. 여성 기업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나온 적이 없다. 정부가 공공 물품을 살 때 여성 기업 제품을 의무적으로 5% 포함시키도록 하자는 것이다. 회장 취임 뒤 정부와 국회를 찾아가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 등을 통해 법안 발의가 추진되고 있다. 법이 만들어지면 여성 기업들의 활로에 숨구멍이 트일 전망이다.
여성 기업에 대한 지원 제도가 꽤 있는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특혜와 지원을 받고 있다. 여성 기업에 대한 예산은 대부분 신규 창업 지원에만 쏠려 있다. 돈이 달리는 여성 기업은 손 내밀 데가 없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접근하기에는 문턱이 높은 편이다. 절차와 규정도 까다롭고….
협회 내 전문 분과위원회 활성화 방안은?
분과위원회의 실체는 있었지만 활동이 미약했다. 그래서 운영을 대폭 강화하고 조직도 정비하는 중이다. 벤처·건설·정보기술(IT)·디자인 등으로 나눠 실질적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 밖에 맡겨온 여성 창업 지원 사업 또한 한 단계 끌어올릴 방침이다. 현재 여경협은 실전 창업 스쿨과 파티 플래너·인터넷 쇼핑몰 등 전문 분야 창업 강좌를 선보이고 있다. 또 여성 창업자를 위해 전국 14개 여성 비즈니스 지원센터도 운영 중이다. 이는 창업 인큐베이터로서 새로 사업을 하는 여성이 사무실을 갖고 독립할 때까지 도와주는 곳이다. 아울러 온·오프 라인 정보 마당과 애경사 도우미 제도를 만드는 등 회원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여경협의 단합을 꾀하고 있다.
창업 여성들에게는 육아 문제가 가장 큰 애로로 꼽힌다. 협회 차원의 해결 방안은 있는가?
출산과 육아는 여성 기업인에게 큰 걸림돌이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경영에 전념할 수 없다. 따라서 여경협은 ‘어린이집과 보육원 창업’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고학력이지만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주부들에게 일정 기간 영·유아 교육 후 보육 자격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한다. 소규모 어린이집을 창업해 원장으로 활동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영·유아 교육계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유아 교육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자녀를 키워보았으므로 준전문가에 가깝다. 유아 교육 전공 교사를 일정 비율 쓰도록 제도를 보완하면 된다. 본인의 자녀나 손자를 키우면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면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자기 집이나 비어 있는 파출소, 아파트 단지 노인정·관리실을 활용하면 된다. 동네에 사는 다른 집 아이들을 키워주면 어린이집을 창업한 여성도, 보육 문제로 고민하는 맞벌이 부부도 ‘윈 윈’할 수 있다(안회장은 10년 전 회사 안에 여성 근로자를 위한 ‘어린이집’을 열었고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다고 말했다).
여경협 회장 못지않게 중견 패션 디자이너로도 유명하다. 사업 동기는?
어릴 때부터 예쁜 옷 입는 것을 좋아했다.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와 대학원(교육학과)을 졸업했으나 디자인 쪽에 관심이 더 많았다. 의상실 옷을 보면 ‘내가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론 무장을 위해 디자인 분야 석사학위를 받았고 국제복장학원에서 1년여 실기도 익혔다.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에서 연 제5회 디자인 콘테스트에 입상하면서 자신감을 가졌다. 이에 용기를 얻어 1975년 3월 패션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때만 해도 창업하기에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물론이다. 당장 자금이 필요했다. 부모에게 ‘친척 언니가 의상실을 하려고 한다. 돈을 빌려주면 옷을 싸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며 둘러대 자금을 타냈다. 나중에 어머니가 알고 난리가 났다. 게다가 사업 경험 부족과 사회 물정도 잘 몰라 어려웠던 적이 꽤 있었다.
맨 먼저 뛰어든 의류 분야는?
서울 장위동에서 주문복을 만들어주는 ‘안윤정 부띠끄’를 열었다. 기성복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결혼 때 사계절 옷은 물론 임부복까지 준비해가는 이들이 많아 수입이 짭짤했다. 이듬해 충무로로 옮겼고 주문이 늘면서 사업도 잘되었다. 한마디로 문전성시였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1979년 가을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 기성복을 파는 ‘앙스모드’를 열면서다. 이어 신세계·대구·뉴코아·현대 백화점 등에서도 입지를 굳혀 유명해졌다. 돈도 벌고 사업 역시 커졌다. 국내 처음 부인복 시장에 진출해 업계 이목을 받았고 오늘날 사업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앙스모드’ 하면 고급스럽고 우아하다는 인식이 강해 30~50대 여성 정장 브랜드로 뿌리내렸다(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전여옥 국회의원, 황산성 변호사, 탤런트 사미자씨 등이 단골 고객으로 알려져 있다).
성공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무엇보다도 손님들 취향에 맞는 옷을 정성껏 만드는 것이다. 심플하고 절제된 라인과 편안한 착용감, 직영 공장에서의 꼼꼼한 바느질 등 옷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였다. 옷 라벨에 제작팀 마크를 붙여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며 품질 관리에 공을 들였다. 한솥밥을 먹는 회사 식구들 도움도 컸다. 창업 때부터 20~30년 일해온 동료들은 물론 최근 입사한 젊은 사원에 이르기까지 70%가 여성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따뜻함이 경영에 접목되어 시너지 효과를 얻은 것이다(회사 직원은 약 100명이며 서울 강남에 공장이 있다. 또 국내 15곳에 판매장을 두고 있고 미국 LA·중국 등지에도 해외 영업점이 있다).
사내 복지와 대외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이자 세 아이(1남2녀)의 엄마로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안다. 여직원 복지도 그런 차원에서 시작했다. 아이 딸린 직원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매년 패션쇼를 열어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를 지원하고, 모교인 이화여대에 ‘안윤정 장학금’을 전달하며, 해외 선교 활동에 나서는 것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돈이 많이 모이기를 기다리지 말고 부족하지만 좀 있을 때 꾸준히 베풀며 더불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기독교 신자인 안회장은 현재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장직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