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여, 우리에게 오라”
  • 왕성상 편집위원 ()
  • 승인 2007.06.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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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기술 인력 부족한 아일랜드, 한국 IT 인재 확보·투자 유치 활발
 
최근 서울 섬유센터에서 열린 아일랜드 취업·유학 연계 과정 GRP (Griffith Realstone Partnership) 프로그램 설명회장. 이곳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취업난 속에 ‘백수’가 된 대학 졸업생, 유학을 꿈꾸는 고교생, 이민을 추진 중인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행사를 마련한 리얼스톤코리아 이상철 부원장의 GRP 프로그램 내용 설명에 이어 질의 응답이 펼쳐졌다. ‘IT(정보 기술) 분야의 아일랜드 소재 기업체에 취직되어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내용에 눈길이 쏠린 것이다. 6월 초 서울 남대문로 신한은행 광교영업부 대강당과 우리은행 본점 회의실에서 열린 설명회 때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특히 전자·반도체·컴퓨터 분야 등의 외국계 회사 취업과 유학을 동시에 원하는 젊은이들이 자리를 메운 것이다. 참석자 중에는 IT 회사에 다니다 그만둔 이들도 더러 보였다.
유럽의 부자 나라인 아일랜드가 우리나라의 우수한 IT 인력 확보와 투자 유치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시작된 한·EU(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아일랜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진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어서 관심을 끈다. IT 인력 채용에 적극적인 곳은 아일랜드 산업계와 교육계. 마이크로소프트·인텔·IBM·델·구글·휴렛패커드 등 그곳에 진출한 세계적 IT 기업들이 일손을 못 구해 아우성이다. 게다가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들 역시 급증하는 인력 수요에 공급을 제대로 못해주어 애태우고 있다.  
국내외 연구기관과 언론에서는 아일랜드의 이런 현상들을 잇달아 다루고 있다. 지난 4월 초 한국개발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등 ‘비전 2030 민간 작업단’이 한·미 FTA 협상 타결 뒤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일랜드 등 선진국이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 인재 양성에 집중 투자하면서 글로벌 플레이어들을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는 것. 아일랜드는 투자개발청에 외국 기업과 인력 확보를 위한 전권을 주는 등 대외 개방에 주력하면서 IT 산업을 키우고 있다. 한국의 우수 IT 인력 유치전도 그런 맥락에서 펼쳐지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아일랜드에는 1천5백여 군데에 달하는 세계적 IT 기업 연구소와 첨단 회사가 있다. 기업을 유치한 아일랜드가 강력한 이민 정책으로 인재를 끌어들여 제품 개발 한 달 만에 각국 언어의 버전을 내놓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국영 신문인 아이리시 인디펜던트도 지난 3월 기술 인력 부족에 따른 자국의 ‘고용 대란’ 현상을 중점 보도했다. 이 신문은 2020년까지 대졸 기술자가 14만3천여 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고 전했다. 이 추세는 앞으로 3년 사이 심각하게 나타나 외국 전문 인력을 끌어들이는 길밖에 없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일손 부족을 겪는 아일랜드와 취업난에 허덕이는 우리나라의 사정이 서로 맞아떨어져 인력 유치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얘기다.
아일랜드 실업률은 1990년 18%에서 2000년 4%대로, 지금은 더 떨어져 일할 사람이 달리는 실정이다. EU 평균율(9%)의 절반 이하로 27개 회원국 중 최저이다. 국민 소득은 약 5만 달러. 1996∼2005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7.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 1위다.
또 지난 30년간 직업 교육 예산을 3배 이상 늘렸고 1994년부터는 대학 교육 수준의 직업 교육을 공짜로 해주고 있다. 미국 IT 기업의 유럽 내 투자의 40% 이상과 1천여 외국 기업들도 이곳에 투자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 50대 금융 회사의 50%가 아일랜드에 영업망을 두고 있어 IT·금융 분야의 유럽 허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제조업 수출 이익에 대한 전액 면세, EU의 3분의 1 선인 10%대 법인세율로 세계 각국에서 기업들이 모여든 것이다.
인도·중국인 떠난 자리 한국인으로 메우기
이상철 부원장은 “아일랜드는 유럽 최고의 IT 강국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10여 년간 95만여 명의 전문 인력 충당이 불가피한 상태”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정부는 대학·기업·학부모와 포럼 형식으로 만나 산업 인력 수요를 진단하고 대학 학과 신설과 정원을 논의하고 있다. 수요자 중심의 대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평생 교육 체제를 바탕으로 한 ‘산업계 요구에 알맞은 교육 시스템’도 가동 중이다. 정부가 외국 기업을 유치하면 대학들은 2~3년 안에 해당 기업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 공급에 나선다.
아일랜드가 왜 이처럼 한국 인력 시장을 노리는 것일까. 몇 년 전부터 그곳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다녔던 인도·중국 학생들이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경제성장률이 세계 1~2위를 다투는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비롯되고 있다. 그들이 메웠던 IT 분야 일손이 갑자기 달리자 아일랜드 인력 시장에 적색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바로 한국이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의 제품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교육열이 높으면서도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1983년 우리와 수교한 아일랜드는 2004년부터 우리나라 기업과 기술자에 손짓을 해왔으나 이런 현상이 빚어지면서 전문 인력 유치에 본격 나섰다. 지난해 3월 아일랜드 대통령이 방한했고 2004년 11월 아일랜드 기업진흥청 한국사무소까지 열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올 들어서는 리얼스톤코리아를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수도 더블린의 그리피스 대학 한국 공식 지정 교육 기관으로 선정해 유럽 명문대 학위와 글로벌 기업 취업이 연계된 혁신적 GRP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피스 대학은 그곳 사립대 순위 으뜸으로 내년 중 우리나라에 분교를 세울 예정이다. 수도권에 들어설 분교는 IT를 비롯해 다양한 전공 분야가 개설된다. 이를 위한 펀드 조성·예정지 확보·행정 절차 검토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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