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 종언 고하는가
  • 서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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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금리 인상 붐, 20년 호시절 마감 임박…글로벌 고금리 현상은 한국에

 
지난 20년간 이어져온 저금리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것인가.  최근 전세계적으로 금리 인상 바람이 불면서 본격적인 고금리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동시 다발적으로 급등 행진을 펼쳤던 세계 증시의 활황 무드가 한풀 꺾였고 채권 값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등 고금리 시대의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금리 변동 주기상 평균 상승 기간이 2년7개월이었음을 감안해 최근의 금리 상승이 대세로 굳어질 경우 그 추세는 2010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세계적 금리 인상 도미노는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월6일 기준 금리를 4%로 0.25%포인트 올렸다. 이로써 ECB의 기준 금리는 2001년 9월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 ECB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2%에 머무르던 기준 금리를 2배 가까이 인상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ECB가 한두 차례 더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좀처럼 해소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중앙은행도 ECB에 이어 기준 금리를 사상 최고치인 8%로 상향 조정했고, 중국은 긴축 정책의 일환으로 정책 금리인 1년 만기 대출 금리를 올렸다.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로 고민에 빠진 일본과 호주 등도 시기만 놓고 저울질할 뿐이지 조만간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금리 인하가 기대되었던 미국에서도 최근 들어 금리인상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5.11%까지 올랐다. 채권 시장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추가 금리 인상을 미리 내다보고 한발 앞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국채 금리가 단기간에 5.25%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국채 금리의 5%대 돌파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20년간 이어온 채권 시장의 호황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도 ‘글로벌 인수·합병(M&A)을 부추겼던 세계적 저금리 현상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한국은행, 콜금리 인상 시사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 대열에 동참할 기미이다. 일단 콜금리는 올해 말 대통령 선거와 경기 문제를 감안해 10개월째 동결해오고 있지만 최근 시중 금리 상승세와 부동산 투기 억제 목적으로 ‘인상론’에 여전히 무게가 실려 있다. 현 콜금리 4.5%도 우리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올해 말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감안할 때 예상되는 재정수지 악화 분은 올릴 경우 국민들의 저항이 크고 자칫 집권당이 표를 잃을 수 있는 세금과 준조세보다는 국채로 메울 가능성이 크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경제 성장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높은 유동성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채권 시장은 이 발언에 자극받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5.28%로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고금리 조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주식시장이다. 금리 상승에 따라 세계 증시에는 ‘금리 상승→유동성 위축→증시 자금 이탈→주가 하락’이라는 불길한 시나리오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던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주춤하는 모습이다. 한국 증시의 종합주가지수(KOSPI)도 1700포인트 선까지는 거침없는 상승 행진을 펼치다 요즘은 쉬는 듯한 양상이다. 한 증권분석가는 “낙관 일색이던 투자자들이 드디어 고유가·인플레이션 같은 부정적 측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던 세계 증시가 조정 양상에 빠질 전조”라고 말했다.
특히 차입 매수(LBO)를 통한 초대형 합병·매수의 위험성이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얼마 전 “고금리 시대에는 차입에 의존해 이뤄지는 M&A가 파국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해 주목된다.


금리 인상으로 인해 M&A 위축 조짐
라토 IMF 총재는 6월 초 독일 발트 해 연안 휴양 도시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선진 8개국(G8) 연례 정상회의에서 “M&A 열풍이 자기 만족적인 성격을 띨 수 있다. 나는 물론 M&A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과다한 차입에 의존한 M&A는 눈물을 유발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제 금리가 오랫동안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 최근 상승세로 반전된 점은 과다한 차입에 의존하는 M&A에 부담이 될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금리의 상승 반전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시장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리 인상에 따른 M&A 위축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시장의 경우 6월 첫째 주 M&A 규모가 7백50억 달러가량으로 전월에 비해 줄어드는 분위기가 완연했다. 4~5월에는 주간 M&A 규모가 최소 1천억 달러, 최대 2천8백50억 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금리 상승에 따른 LBO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는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비용 부담 증가와 주식시장 약세 등이 맞물리면서 충격이 더욱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이 주식 등 위험자산 선호 경향을 주춤하게 만들면 주식시장을 밀어 올렸던 M&A 재료도 함께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어 주식시장이 본격 조정을 받는다면 M&A 관련 펀드들은 투자 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악순환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동안  M&A를 위해 정크본드(신용 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고위험·고수익 채권) 수준인 채권을 발행해 인수 자금을 충당하는 LBO 규모는 매년 급증해왔다. 2003년 1천5백억 달러를 넘어선 이 금액은 2005년에는 3천억 달러, 지난해에는 5천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미 협상이 진행 중인 M&A를 포함하면 올해 정크본드 수준 채권 발생은 지난해 기록을 뛰어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갚을 돈이 늘어나면서 재정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채권 금리 탓이다. 자금 조달과 수익 창출 순환 고리에 이상이 생긴다면 위기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가 그래서 나온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현재 많은 기업들이 이자를 갚을 만큼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금리 상승기에 과도한 차입 매수는 경영상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의 경제 상황은 미국이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엔화와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이끌어냈던 ‘플라자 합의’의 여파로 전세계적으로 금리가 크게 올랐던 1987년 3월부터 1990년 9월까지의 기간과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당시 세계 경제의 화두는 지금처럼 물가 불안과 자산 가격 버블, 달러화 약세였다. 따라서 앞으로 금리 상승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1980년대 말 금리 상승기 때와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1980년대 말 금리 상승기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승 단계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먼저 금리 상승 초기에는 금리가 경제 성장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금리가 실물 경제의 호조를 반영하는 수준으로 완만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반 국면에서는 과도한 금리 상승에 따라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가계 신용의 부실화가 진행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어쨌든 글로벌 고금리 현상이 한국 경제에 ‘독’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전세계적으로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이에 따른 수입 수요의 감소는 결국 우리나라의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원화 강세 추세가 쉽게 완화되기는 힘들어 수입 증가에 따라 무역수지가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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