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밀실’은 이제 그만
  • 노영기 (중앙대 교수·경제학과) ()
  • 승인 2007.06.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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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측에 바람직한 협상 전략/‘지피지기’로 신중·신속 꾀해야

 

 
모처럼 ‘한국호’의 방향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에게 KORUS(Korea+USA)가 21세기 선진 한국을 향한 도전의 시작이었다면, KOREU(Korea+EU)는 도전의 승기를 굳히는 작업이다. KOREU에 이어 KOR 뒤에 캐나다·일본·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 공업국)를 붙이면 세계 시장을 거의 다 갖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KOREU는 KORUS를 보완해 우리의 개방 체제를 안정적으로 확대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EU는 역외국 차별이 심한 편이다. EU와의 FTA 체결은 역외국으로서의 불이익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 미국과 중국에 지나치게 편중된 우리의 교역 상대를 다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EU와의 협상은 좀더 신중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협상에서 드러났던 ‘졸속 협상’ ‘밀실 협상’ ‘전략 노출’ 등의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주요 사안 하나하나에 대해 이해 관계자 및 전문가들과 충분히 내부 토론을 해서 묘안을 찾아내야 한다. 미국과의 협상에서처럼 공청회도 제대로 열지 않고 국민과 국회가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가는 협상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보안을 유지해야 할 사안과 문제점이 아닌 것들은 과감히 공개해서 EU 현지 교포들을 포함한 각계 각층의 중지를 모으고, 그런 가운데 여론의 지지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회원국 간 이해관계 고려한 접근 필요
특히 회원국들의 이해가 서로 다르다는 특성을 고려한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서비스 협상에서는 허용 품목을 일일이 나열하는 포지티브(positive) 접근법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 분야에서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외할 것이다. 개성 공단의 역외 가공 문제는 남북 경제 협력이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도움이 되어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EU 대외 정책의 기본 정신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EU와의 협상은 신중하고 치밀하되 신속할 필요가 있다. EU와의 협상 및 국회 비준 절차가 발 빠르게 진행되면 미국과 EU의 경쟁 구도가 나타나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설사 미국과 재협상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협상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게 되어 국내 소비자 후생이 크게 늘기 때문이다.
EU는 금융·통신 등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술·치즈·생수 등 식품 분야와 의약품도 만만치 않다.
명품에 약한 우리의 소비 성향으로 볼 때 명품 브랜드를 많이 갖고 있는 자동차·화장품·패션 용품 분야는 살얼음판이다. 농업 분야도 미국보다는 유연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EU의 낙농·축산품·원예는 우리보다 몇 수 위이다. 칠레·미국에 이어 연타를 맞는 농업 분야이고 보면 결코 방심할 수 없다.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특소세 폐지·우편 택배 시장 민영화·기술 장벽 제거 등 국내 제도의 큰 변화가 뒤따라야 하는 요구도 많다. EU의 환경 규제와 표준에 관한 협상도 인내를 요하는 부문이다. 이런 점을 알고 최대한 우리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신중한 협상 전략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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