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축구’ 킥오프
  • JES ()
  • 승인 2007.06.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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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회 등 10개 팀 참가한 ‘3부 리그’ K3 출범

NYR FC.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전세계에서 가장 자산 가치가 큰 축구단으로 평가받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백29년 전인 1878년 창단할 당시의 명칭이다. Newton Health Lancashire and Yorkshire Railway Football Club의 약자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클럽의 시작은 미약했다. 말 그대로 랭카셔·요크셔 지역 철도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조기 축구회 같은 팀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이처럼 오랜 역사와 풀뿌리 축구팀을 토대로 발전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K리그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1983년 스포츠 진흥책을 편 정부의 주도로 탄생했다. 대기업들은 서슬 퍼런 정권의 눈치를 보며 떠안듯 팀을 창단해 리그를 급조했다. 경제 분야에서 한국은 대기업을 통한 집중 성장 정책을 펴면서 서구의 산업화를 30년 만에 이루어냈지만 프로 축구에서는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출범 24년째를 맞이했으나 지역의 프로축구팀에 연고 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팬들이 연고 의식을 느끼며 승리에 함께 기뻐하고 패하면 더불어 눈물을 흘리는 팀은 국가 대표팀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축구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축구협회는 지난해부터 ‘생활 체육과 엘리트 축구의 만남’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그동안 제도권 밖에서 소외되어 있던 풀뿌리 축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4월에는 10개의 클럽팀이 참가하는 K3 시범 리그가 출범했다. K리그와 내셔널리그에 이은 한국 축구의 3부 리그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학원 축구를 기반으로 발전해온 한국 축구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 클럽팀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등장한 셈이다. 선수단은 학창 시절 축구 선수로 뛰었던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지금은 지도자·회사원 등 본업을 따로 가진 이들도 절반 가까이 된다.


 
서포터스들의 시민 구단 ‘서울 유나이티드’
가장 눈길을 끄는 팀은 서울 유나이티드이다. 서포터스들이 서울을 연고로 하는 진정한 시민구단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해 2001년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의견을 나누며 창단을 준비해왔고, K3 리그 출범과 함께 창단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국가 대표 출신 임근재 대신고 축구부 감독이 서울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겸임하고 있다. 성지고 감독을 맡았던 1997년 K리그 선수 신진원, 안양 LG에서 활약하다 은퇴하고 지금은 유소년 클럽을 지도하는 제용삼 등이 선수로 뛰고 있다.
K리그 톱스타들은 수억원의 연봉을 받고, 승리 수당으로 한 경기에서 2천만~3천만원을 가져가기도 하지만 서울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출전 수당과 승리 수당을 각각 10만원씩 받는다. 구단의 수익이 없기 때문에 연봉은 없다. K리그는 선수들의 ‘몸값 거품’으로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며 모기업에 기생해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지만, 순수한 시민 구단을 표방하는 서울 유나이티드는 냉혹한 시장 경제의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서울 유나이티드는 입장료로 성인 1만원, 학생 5천원을 받는다. K리그의 인천 유나이티드가 4만5천원을 내면 유니폼을 주며 1년 동안 치러지는 20여 차례의 홈경기를 모두 무료로 볼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가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치른 세 차례의 홈경기에 평균 8백명의 관중이 들어왔다. 경기당 관중 수익은 5백만원 정도다. 출발은 미약하지만 서울 유나이티드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나이키와 KTF는 기꺼이 스폰서가 되어주었다.
서울 유나이티드 장부다 경영지원이사는 “100년 후에도 살아남는 팀이 되겠다. 단기적으로는 10년 이내에 K리그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재정을 맞출 수 없는 구조라면 한 해 20억원 정도의 운영비가 필요한 내셔널리그에도 진출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팀을 이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르셀로나 등 세계적인 명문 구단이 그랬던 것처럼 기초를 다지며 한 걸음 한 걸음 내실 있게 성장해나가겠다”라는 것이 서울 유나이티드의 경영 철학이다. 월드컵 조직위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최창신씨, 전 KBS 스포츠 캐스터 서기원씨가 서울 유나이티드의 회장과 고문으로 참여해 힘을 실어주는 등 뜻있는 축구인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K3 상위 팀, FA컵 출전 가능성
창원 두대 FC도 눈길을 끄는 팀이다. 창원시 두대동의 조기 축구팀이 겁없이 K3 무대에 뛰어들었다. 어떤 면에서 서울 유나이티드보다 더 풀뿌리 축구팀에 가까운 팀이다. 1998년 두대동의 동네 선후배들끼리 맥주 한잔 걸치다 의기투합해 창단한 두대 FC의 선수들은 노래방 주인, 체육용품 판매점 주인, 공장 노동자 등 직업도 제각각이다. 35세의 노장 이정갑씨는 “학교를 졸업한 뒤 축구 선수의 꿈을 접었다. 내가 지금 K리그나 내셔널리그에서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팀이 K3에서 잘되면 후배 중에는 두대 FC를 통해 선수의 꿈을 이어가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0년 프랑스 FA컵에서는 정원사·페인트공·회사원·대학생 등이 주축이 된 4부 리그 아마추어팀이 결승까지 오른 바 있다. 두대 FC가 그같은 기적을 이루어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올해 K3에서 성적이 좋은 상위 4개 팀에 내년도 FA컵 출전 자격을 주는 방안을 조심스레 검토 중이다. 두대 FC는 K3 리그에서 2승4무로 무패 가도를 달리며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주대의 저학년 선수를 주축으로 하는 전주 EM코리아도 눈여겨볼 팀이다. 고교 시절까지 축구를 하다가 대학에 진학한 후 학업과 축구를 병행하는 선수들이다. 한 해 고교를 졸업하는 축구 선수 8백~9백여 명 중 약 4백명이 축구와 인연을 끊는다. K3 등 풀뿌리 축구가 활성화되면 이들을 흡수하는 안전판이 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은평 청구성심병원·대구 파워트레인·아산 FC·천안 FC·용인 FC·화성 신우전자 등 지역을 연고로 하는 시민 구단이나 기업을 모태로 하는 구단들이 K3에 참가하고 있다.
유영철 축구협회 홍보국장은 “2002 월드컵 4강이 한국 엘리트 축구의 가장 큰 성과라면 K3 리그 출범은 한국 축구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기틀을 마련한, 작지만 중요한 첫걸음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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