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는 지하철 광고
  • 유근원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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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입찰제·무료 신문 등에 밀려 ‘퇴조’…버스·택시로 물량 몰려

 

 
최근 지하철 내부나 역 구내를 유심히 살펴보면 광고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쉽게 눈에 띈다. 듬성듬성 광고가 빠져나간 자리는 썰렁함 그 자체이다. 관리가 안 되고 방치된 광고물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서울지하철 1~4호선의 광고를 관장하는 서울메트로 부대사업팀은 “2002년을 정점으로 지하철 광고가 줄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광고 효과가 떨어지는 포스터 및 조명 광고 등을 위주로 3백74개를 철거했다”라고 밝혔다. 올해는 더 많은 광고물이 철거될 예정이다. 서울메트로는 오는 6월 말부터 추가로 7백40개의 광고물을 없앨 방침을 세웠다.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의 자료에서도 지하철 광고 시장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하철 광고 시장 규모는 2004년 9백12억원에서 2005년 7백75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2006년과 올해의 광고 시장은 더욱 나빠졌을 것으로 광고업체들은 분석하고 있다.
지하철 광고가 급감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견해들이 다양하다. 지하철 2호선의 광고를 대행하는 그린미디어 이재선 이사는 “올해 지하철 광고는 점점 바닥을 향해 주저앉고 있다. 지하철 광고 단가 인상을 부채질하는 최고가 입찰제, 버스·택시 광고의 선전, 넘쳐나는 무가지 등이 지하철 광고 급감의 주요 요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지하철 광고 시장 침체의 주범으로 지목된 최고가 입찰제는 일찌감치 그 폐단이 예고되어왔다. 지하철 광고 공간을 임대해 광고주를 유치하는 매체 회사의 무리한 입찰 경쟁은 2003년에 절정을 이루었다. 이때 낙찰가는 전년보다 무려 2배 이상 높은 가격으로 형성되었다. 이후 지하철 광고료는 해를 거듭하면서 올랐다. 광고주는 점차 지하철 광고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후 일부 옥외광고 대행사는 사업권을 다시 반납하고 재입찰에 도전하는 등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지하철 전동차 상단 모서리에 부착하는 광고를 중단했다는 한 광고주는 “지하철 광고는 정확한 광고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광고비 대비 효과를 못 봤기 때문에 더 이상 광고를 진행할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다.
도시철도공사 5~8호선은 서울메트로 1~4호선보다 사정이 더욱 어렵다. 이용자 수가 1~4호선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광고주의 눈길을 끌기가 쉽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시철도공사가 지하철 광고와 관련해 야심차게 추진해오던 ‘S-비즈 프로젝트’마저 홍역을 치렀다. S-비즈 프로젝트는 지하철 5~8호선 1백48개 역사의 광고와 유통·임대 등 각종 부대 사업을 통합하는 신개념 사업이다. 협상 추진 과정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지면서 사업이 지금까지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결국 공사는 지난 3월 말 이사회에서 S-비즈 프로젝트의 중단을 결정했다. 그러는 동안 5~8호선의 광고 영업은 자의 반 타의 반 중단되다시피 하며 방치되었다.
지하철 광고 시장이 주춤한 사이에 버스와 택시 광고는 황금기를 맞았다. 지하철과 달리 버스·택시 광고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4년 7월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과 버스 중앙차로제 시행 이후 특별법으로 묶여 있던 버스 외부 광고가 일반 광고물로 바뀌면서부터 시장이 확대되었다. 버스 차량의 색상 통일에 따라 외부 광고 크기가 커진 것도 주요 요인이다.
버스·택시 광고 시장은 불과 3년 전인 2004년 8백억원대에서 2005년 1천1백27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지하철 광고와 대조되는 현상이다. 제일기획의 <대중교통수단 광고 효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버스가 비용 대비 광고 효율성이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대기업이나 영화 수입사들은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광고할 때 버스 외부 광고를 동반한다.


 
‘불황 뚫기’ 이색 변형 광고도 속출
지하철 광고가 줄어드는 또 다른 이유로 무료 신문을 지목하는 사람도 있다.
지하철 안에서 무료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늘면서 전동차 안에 부착된 광고들의 효과는 상대적으로 반감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광고주들은 지하철 광고판보다 무료 신문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입구 등에서 배포하는 무료 신문은 모두 7종이다. 여기에 무료 경제신문 데일리이코노미가 창간을 추진 중이고, 서울메트로(서울지하철공사)는 무료 주간지 <M25>와 지하철 ‘역내 무인 홍보대’(배포대) 설치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6월14일 창간된 <M25>는 <벼룩시장>을 발행하고 있는 미디어윌의 자회사가 발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5~34세의 남성 직장인이 타깃인 <M25>는 매주 52쪽 분량으로 30만 부를 발행할 예정이다. <M25>측은 “1~4호선의 주요 지점 1백70곳에 무인 홍보대를 설치했다. 지하철 이용자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라고 밝혔다.
<M25>는 서울메트로와 5년간 ‘운영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며 임대료로 20억1천여 만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같은 구역에서 지하철 광고 영업을 해오고 있는 매체 회사들의 표정은 울상이다. 지하철 광고영업 사원인 강 아무개씨(41)는 “가뜩이나 광고 영업이 안 되는 판이다. 무가지로 머리가 아픈데 이제 서울메트로까지 무료 주간지를 배포하고 나섰다. 많은 광고주가 중복이 될 텐데 잡지 쪽으로 옮아갈 소지가 많다. 믿고 있던 서울메트로가 뒤통수를 친 격이다”라고 불평했다.
법무법인 청목의 이주헌 변호사는 “서울메트로와 지하철 광고 임대 계약을 체결한 광고 대행사는 무료 주간지 <M25> 배포로 인해 타격을 입을 소지가 있다. 대행사측은 영업 환경이 바뀐 사실을 근거로 서울메트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M25> 무료 홍보대 설치는 ‘사정 변경 요인’으로 인한 계약 내용 변경을 주장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지하철 광고 업계로부터 나오고 있다.
“지금 대다수 지하철 광고는 이미 20년 전부터 있었던 형태이다. 지하철 광고 자체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라는 지적이다.
최근에 눈에 띄는 대목은 몇몇 지하철 광고에 이색적인 변형 광고가 속속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런 광고물은 침체된 광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하철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변형 광고가 집행되고 있는 곳은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 2호선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본격 등장한 변형 광고는 기업들의 광고 집행이 활발해지면서 더욱 다양해지는 모습이다.
거울의 이미지를 차용한 미러형 광고, 액자형과 모서리형의 변형 광고, 사각의 틀을 벗어난 입체형 광고, 손잡이 광고 등은 과거에는 볼 수 없던 형태들이다.
특히 최근 선보인 펩시콜라 손잡이 광고와 영화 <스파이더맨3> 광고는 단연 돋보이는 변형 광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펩시콜라는 캔 디자인 변화에 맞춰 지하철 2호선 3백 량에 손잡이 광고를 집행했다. 영화 <스파이더맨3> 광고는 지난 3월 말 시청·을지로입구·신촌·삼성·잠실 등 지하철 2호선 10개 주요 역사에서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스파이더맨이 천장에 매달린 듯한 모습에 지하철 승객들은 신선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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