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직원, 흔들리는 회사
  • 명운화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2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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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업체, 근무 환경 열악→잦은 이직→기술 유출 심각

 

지난 5월9일 서울경찰청은 엔씨소프트가 개발 중인 온라인 게임 <리니지3>의 영업 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3개 업체 전·현 직원 1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용의자들은 주요 문서 및 기술 자료를 전달받아 일본어로 번역한 후 일본 업체에 e메일을 전송한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측은 이들 <리니지3> <프로젝트M> 두 게임 기술 정보만으로도 이들이 엔씨소프트측에 5천억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경찰 수사 결과 이들은 지난해 8월에는 <리니지2>의 프로그램 소스 파일을 하드디스크에 옮겨 외부로 빼돌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서 엔씨소프트 홍보팀은 “일본은 전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미국과 함께 우리나라의 가장 큰 경쟁 상대이다. 자칫 한국 게임산업계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안을 경찰이 신속하게 조사, 검거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엔씨소프트는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핵심 기술 및 인력 보호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전세계 온라인 게임 리더로서 더욱 정진해나가도록 하겠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 게임 업계는 저임금 3D 업종”
게임 기술 유출은 엔씨소프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에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의 <미르의 전설 2>, 애니파크의 <A3> 등에서 유출된 소스 코드가 중국으로 넘어가 <전기세계> <제왕시대>라는 이름의 게임으로 출시되어 해당 게임 개발 업체에 큰 타격을 주었다. 애니파크의 <A3>의 경우는 클로즈 베타테스트 단계에서 복제 게임이 등장해 큰 파문을 낳기도 했다. 또 <뮤> <열혈강호> 등도 소스가 유출된 후 불법 서버가 생겨 게임 개발 업체에 피해를 입혔다. 기업의 대외적 이미지와 투자자들을 고려해 크고 작은 기술 유출을 쉬쉬하고 덮어버린 경우를 감안하면 게임 업계에서의 기술 유출은 알려진 것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다른 산업 또한 기술 유출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보는 상황이지만 대다수 자본을 기술 개발에 쏟아 붓는 게임 업체의 특성상 기술 유출은 곧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리만치 중대 사안인 것이다.
게임 업계의 잦은 인력 이동 또한 기술 유출의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마디로 개발자는 살아 움직이는 하드디스크인 것이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 핵심 개발자가 일본의 유명 게임 업체로 이직을 한다면 한국 게임 업체는 그에 상당하는 만큼 타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국내외 온라인 게임들이 비슷한 시스템, 비슷한 캐릭터에 비슷한 아이템을 갖고 있는 것 또한 게임 개발자들의 잦은 이직과 관련되어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왜 게임 업계에서 기술 유출이 반복되는 것일까? 핵심 기술이 유출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요인 하나로 현재 게임 업체에 근무 중인 게임 개발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부실한 인력 시스템이 지목되고 있다. 특히 온라인 게임의 경우 ‘인력은 곧 기술’이라는 점에서 인력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점은 기업은 물론이요,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커다란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화려하게 각광받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는 게임 업계에 대한 외부의 시선과 달리 개발자들 자신은 3D 업종에서 일하는 근로자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한·미·일 3국의 중급 소프트웨어 개발자 임금을 비교하면 한국은 2백3만원, 미국은 6백53만원, 일본은 5백99만원이다. 각국의 물가 수준이나 환율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받고 있는 처우는 열악한 수준이다. 이러한 그늘의 뒷면에는 홀대받는 이공계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근무자들 중에는 50대가 넘는 게임 개발자들이 다수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40대가 넘는 중견 게임 개발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는 ‘35세가 정년’이라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 젊은 감각을 요구하는 게임 업계 분위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의 정년이 짧다는 것이 통설이다. 40대가 넘어가면 자의 혹은 타의로 기획자나 영업관리 쪽으로 인사 이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게임 업계에서는 7년 이상 일한 중급 게임 개발 업자들은 찾기 힘들 정도이고, 개발자들의 인력 수급 또한 기형적으로 바뀌었다. 게임 개발 업자들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부족하고 그 인력마저 열악한 근무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한탕주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일본·중국, 한국 인재 스카우트 ‘혈안’
경우는 다르지만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이 세계적으로 대박을 터뜨렸을 경우 성과급에서 소외되었다는 불만을 갖고 개발자들이 경영진과 갈등을 빚다가 집단 사퇴를 한 경우도 있다.  엔씨소프트의 일부 개발자들이 경영진에 독립 법인을 요구한 근간에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번다는 식의 공평치 않은 이익 분배와 대우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온라인 게임의 종주국인 한국은 후발 주자인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맹추격을 받는 양상이다. 특히 일본·중국은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려고 브로커를 동원해 불법적인 기술 이전과 고급 인력 스카우트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마당에 한국 게임 개발자들은 헤드헌터 시장에 맡겨져 철저하게 시장 논리대로 움직이고 있는 형편이다. 게임 개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한 게임 개발자의 자조 섞인 말은 단지 개인적인 푸념만은 아닐 것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개발자들의 공통된 심사이다.
“게임? 상당히 힘들다. 게임 쪽에서 6년 동안 일하면서 두 군데 회사에서 합계 1년치 정도의 월급을 떼였다. 회사가 망해서 그런 것이다. 게임으로 밥 벌어먹기 힘들다. 좋아서, 정말 게임을 좋아해서 한다면 모를까. 프로그래머에게 가장 돈이 안 되는 직업이 게임이다. 회사가 재력이 좀 있지 않으면,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다. 외환위기 이후 MMORPG(온라인 롤플레잉 게임)가 뜨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벤처가 생겼다. 살아남은 몇 빼고 수많은 회사가 망했다.”
자본주의의 엄연한 현실 앞에서 좋아하는 일이라고 무조건 직업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 개발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 자기 계발 혹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며 인내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당연히 사회·경제적으로 개발자들이 마땅한 대우를 받는다면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수많은 미래의 개발자들이 직종 선택에 주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인력 왜곡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손쉽게 돈을 벌겠다며 기술 유출 유혹에 빠져들지도 않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게임을 즐기면서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수많은 청소년이 있다. 그들의 꿈이 헛되지 않도록, 더불어 IT 강국이라는 위상과 차세대 성장 동력 게임 산업이 위축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게임 개발자 및 IT 개발자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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