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는 지금 M&A의 계절
  • 서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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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통법 통과 앞두고 은행·증권사 ‘호시탐탐’…현대·하나 증권 등 매물로 거론

 

 
요즘 주식 시장의 최대 이슈는 증권사들을 놓고 벌어지는 합병·매수(M&A) 전쟁이다. M&A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다. 이 법이 시행에 들어가면 증권 업계는 지금까지 벌여왔던 판을 걷어치우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금융 시장 전체적으로는 그야말로 ‘빅뱅’에 휘말리는 것이다.
자통법의 골자는 이렇다. 증권사들은 우선 일정한 시장 진입 요건을 갖춰 금융투자은행으로 다시 인가를 받거나 등록을 한 뒤 기존에 취급해온 업무 외에 선물 회사나 자산운용사가 하던 영역까지 다룰 수 있게 된다. 골드만 삭스나 메릴린치 같은 초대형 투자은행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하는 것이다.
증권 업계에서는 향후 금융 시장의 판도가 기존의 은행 중심에서 ‘은행-보험-투자은행’ 3두 체제로 개편되고 업권 간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허경욱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자통법이 통과되면 1년 반 이후에는 우리나라 금융 시장에서도 영국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빅뱅’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형 증권사들이 최근 잇따라 증자를 실시하면서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것도 이같은 금융 빅뱅 속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이다. 법이 통과되면 규모나 영업력에서 월등히 앞서 있는 은행이나 보험사와도 자산 관리 부문 등에서 지금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기자본을 늘려 규모 면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열세인 중소형사들은 다른 견해이다. 어지간한 증자가 아니면 덩지를 불리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시간도 꽤 걸린다. 대형사들과 맞붙을 상황이 코앞에 닥쳤는데 내부적인 자본 확충에 나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전략이 아니다. 그래서 아예 모기업의 든든한 자본력을 배경으로 자신보다 몸집이 큰 증권사를 사들이는 쪽을 택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증권 업계에 불고 있는 M&A 폭풍의 진원지가 바로 이들 중소형 증권사들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자본 시장의 사이즈를 감안할 때 앞으로 4~5곳 정도의 대형 투자은행이 각축을 벌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굿모닝신한증권·대우증권·우리투자증권·대한투자증권 등 모회사가 은행인 증권사들과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 등 자산운용사, 보험사를 끼고 있는 증권사들 사이에 각자의 장점을 살린 업무 영역 분화도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 ‘큰손’들 잇단 선전포고:M&A의 첫 포문은 우리투자증권이 열었다.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지난 5월3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투자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현재 2조5천억원 수준인 자기자본을 5조원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라며 “M&A를 통해 자기자본을 늘리는 방법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박사장은 “중소형 증권사를 인수해서는 자기자본을 크게 늘리기 어렵다. 국내외 증권사를 구분하지 않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회사를 찾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대우증권 등 일부 대형 증권사 주식이 10% 이상 뜀박질하는 등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이어 농협중앙회가 계열 증권사인 NH투자증권을 ‘빅 5’증권사로 키우기 위해 증권사 M&A에 나설 뜻을 공식화했다. 증권 업계에서는 농협중앙회가 대형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농협의 풍부한 자금력을 동원해 자본 규모 1조원 안팎의 대형사를 인수해 일거에 ‘빅 5’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시장에서는 대기업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추세와 맞물려 현대증권 등도 M&A 가시권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 밖에 유진그룹이 인수한 서울증권도 최근 비전 선포식을 갖고 업계 7위권의 증권사로 도약하기 위해 2009년까지 다른 증권사 인수를 성사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KGI증권사 인수전에 나섰다가 도중 하차한 국민은행이 증권사 인수를 위한 전열 정비에 나서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재 증권사 인수 가능성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간 시장에서는 국민은행이 회계 처리와 관련해 지난 2004년 기관 경고를 받아 증권사 인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관 경고가 9월이면 3년을 경과하는 만큼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열 증권사가 없는 기업은행과 SC제일은행도 호시탐탐 증권사 인수를 노리고 있다.
 
매물은 어떤 것이 있나:
일단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매각이 불가피한 증권사가 매물 대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얼마 전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금융 자회사 매각 유예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되면서 그룹 입장에서 SK증권과 CJ투자증권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다만 CJ가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밝히면서 CJ투자증권을 매각하지 않고 기업 공개 등을 통한 성장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 향후 독자 생존 움직임이 주목된다.
현대증권의 경우 현대엘리베이터가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현대그룹이 매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와 함께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상선의 주인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잠재적인 M&A 대상이다.
교보증권은 대주주인 교보생명이 상장을 앞두고 재무 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매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면서 가장 먼저 M&A 대상이 되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나증권의 경우 하나금융그룹 내에 대한투자증권이 있기 때문에 매각 대상이라는 설이 증권가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밖에 한양증권과 부국증권 등 소형 증권사도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치솟는 몸값:인수 대상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주체가 굳이 서둘러 매각해야 할 이유가 없는 데다 증권업 호황으로 수익성과 성장성이 부각되면서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비상장 증권사의 경우 증권선물거래소 상장 이후 순자산 가치가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측되는 데다 최근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개선되면서 순자산 가치 대비 2배 이상의 프리미엄을 줄 수 있는 상황이어서 매각가가 더 높아지기 전에 빨리 사들이는 것이 매수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수 대상은 느긋한 입장인 반면 인수자는 조급할 수밖에 없어 인수 가격이 과도하게 부풀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M&A를 추진했던 증권사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에 대해 실사를 해왔는데 가격 조건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라면서 매각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직원이 70명에 불과한 KGI증권의 M&A 프리미엄이 5백억~6백억원에 달해 이 증권사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여러 금융 기관들이 도중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시 전문가들은 “자본금이나 영업 실적 등 규모에 비례해서 본다면 자기자본 1조원이 넘는 대우증권은 프리미엄만 1조원을 상회할 수 있다. 과도하게 몸값이 치솟는다면 설사 M&A를 한다고 해도 대형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는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증권사의 대형화는 자통법 시행 이후 외국계 증권사와 경쟁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높은 증권사 몸값에 대해 금융 당국이 조속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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