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될까, ‘쓰레기’가 될까
  • JES ()
  • 승인 2007.06.25 10: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테로이드 홈런왕’ 배리 본즈, 홈런 신기록 세워도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

지난 6월19일(이하 한국 시간) 미국 애틀랜타의 델타항공 본사.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 행크 애런을 기념하는 ‘행크 애런 755’ 비행기의 진수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보잉사가 제작한 이 비행기에는 탑승구 쪽에 홈런을 때려낸 뒤 타구를 바라보는 애런의 커다란 사진이 비행기 외부에 도색되어 있다. 7백55 홈런을 때려낸 행크 애런의 1970년대 기록을 왜 지금 기념할까.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가 7백55호에 근접하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 흥미롭다.
본즈는 이미 지난주 최다 홈런 기록에 -10을 넘어선 터.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을 계속 사고 있는 본즈는 현재 연방 대배심으로부터 청문회 증언 내용과 관련해 위증 혐의를 수사받고 있다. 이전 기록 보유자 행크 애런은 “그가 홈런을 깨는 것에 관심 없다”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심지어는 본즈를 지칭하며 “내가 누구를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플로리다로 골프나 치러 가겠다”라고 시큰둥한 반응까지 보였다. 지난해 베이브 루스의 기록(7백14호)을 넘어섰을 때도 버드 셀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와 MLB 사무국은 이렇다 할 이벤트를 벌이지 않았다.
셀릭 커미셔너는 임박한 그의 홈런 신기록 게임에 참석할지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가타부타 말이 없는 상태. 7백56을 넘어서는 날, 본즈는 기립 박수를 받을 것인가, 저주의 야유를 받을 것인가.


 
본즈에게 빈볼 던지면 기립 박수받아
묵묵히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 신기록에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지만 본즈가 홈런을 때려내는 날 풍경은 정말 가관이다. 지난해처럼 상대 팀 투수가 작정하고 빈볼을 던지면 관중들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친다. 홈런을 치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면 주사기 바늘(스테로이드를 상징)을 투척한다. 홈런 기록이 점점 가까워지자 비난의 플래카드가 무성히 나부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5월에는 공교롭게도 뉴욕 메츠의 배트 보이 출신으로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을 대규모로 공급해오다 적발된 밀매상이 감형을 조건으로 수사 당국에 협조를 약속했다. 그 밀매상은 FBI는 물론 본즈의 위증 혐의를 캐고 있는 연방 대배심과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이 이끌고 있는 MLB 약물조사위원회의 조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오는 8월쯤에 본즈의 스테로이드 혐의는 좀더 베일을 벗을 것으로 보여 홈런 신기록을 세운 해에 야구계의 ‘쓰레기’로 완전히 낙인찍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스테로이드의 개인 복용이 왜 문제가 되는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본즈는 매일 수 백 개의 미디어에 노출되는 스포츠 스타다. 공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에게 미칠 폐해가 크다. 미국 청소년들이 십수년 전부터 앞다투어 헬스를 통해 근육을 가꾸는 것은 스포츠 스타들이 육중한 상체 근육을 키워 홈런을 날리는 것에 큰 영향을 받은 측면이 크다.
여기에 본즈는 여러 차례 거짓말까지 해 정치인들이 ‘이것 봐라’ 하고 나서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1백20년 넘는 미국의 야구 역사에서 역대 최고의 분수령으로 꼽힐 만한 최다 홈런 신기록의 순간을 과연 기념해야 할지 여부를 놓고 모두가 고민하는 것이다.
버드 셀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지난 5월 중순 구단주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말 본즈가 신기록에 다가섰느냐?”라고 실없이 농담하며 “오늘도 달리 말할 게 없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결정하겠다”라는 종전 입장만 되풀이해 밝혔다. 스테로이드 복용을 커미셔너 스스로 용인하는 꼴이 되어 더욱 거센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 때문에 계속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약물 문제를 안고 있는 본즈의 홈런 잔치에 참석한 커미셔너라는 이미지를 남길까봐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저 꾸준히 홈런 행진을 선보이는 수밖에 없다. 본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가 예전에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확인된 상태에서 꾸준히 홈런을 터뜨린 뒤 이후의 역사와 평가에 맡겨보는 것이다.


 
본즈, 스테로이드 끊은 뒤 홈런 수 급감
본즈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 2백92홈런, 한 해 평균 48.7개를 터뜨렸다. 약물 문제가 불거진 2005년과 2006년에는 단 31개의 홈런만 터뜨렸다. 물론 부상과 여론 등의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약물 복용 증거의 또 다른 사례로 남는 기록의 흐름이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본즈는 따가운 여론 속에서도 매 타석, 매 경기에 분을 참으며 나서고 있다.
홈런 기록은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깨지게 되어 있다. 메이저리그 전체가 이를 잘 알고 있다. 기록 이후의 상황에 대해 논의가 불가피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현재 여러 옵션을 놓고 논의와 반박이 진행 중이다. 첫 번째, 본즈의 기록을 완전히 레코드북에서 지우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다. 팀 기록과 상대 투수 기록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본즈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느냐도 논란이 된다. 이른바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 즉 공의 반발 계수가 크게 차이 났던 시점의 조건을 모두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기록은 그저 기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는 쓰레기통 속으로 처박아야 할 기록일지라도 현실은 현실이고 역사는 엄연한 역사라는 차원의 시각이다.
두 번째는 아무런 방침도 세우지 않고 그냥 방치하는 것이다. 본즈 이전에도 라파엘 팔메이로(스테로이드 복용 고백 뒤 은퇴)의 5백69홈런과 3천20안타는 여전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사실 버드 셀릭 커미셔너의 재임 15년 동안 여러 차례 스테로이드 복용 문제에 대해 조처를 취할 수 있었는데도 그냥 놓아두었던 것은 커미셔너와 사무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세 번째는 본즈의 기록을 부기를 달아서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모두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행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래저래 본즈의 7백56홈런 이후는 메이저리그에서 뜨거운 감자로 남을 전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