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법의 통치이다
  • 허 영 (명지대 초빙교수) ()
  • 승인 2007.07.0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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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헌법의 통합 규범 무시하고 위헌·위법적 언행 ‘큰 문제’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이다. 통치권의 민주적 정당성과 자유·평등·정의의 실현이 강조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가 기관의 권한은 선거를 통해서 주권자인 국민이 한시적으로 위임한 권한이다. 헌법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실현해서 사회 통합을 이루도록 통치권을 위임한 것이다. 대통령부터 헌법·법률이 정한 원칙과 규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고 그 결과는 국민에게 심판을 받고 책임져야 한다.
법치의 본질은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사람의 통치가 아닌 법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적법한 절차 및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합리성이 요구된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정당 국가적 대의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헌법이 정당을 보호하고 정당에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요구한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가 헌법 소송을 통해 해산시킬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헌법 현실은 헌법상의 기본 원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의 헌법 감각이 결여되었거나 헌법 경시 때문이다. “그놈의 헌법”이라는 대통령의 표현이 단적인 증거이다. 

 
대통령의 헌법 소원 제기는 ‘소가 웃을 일’


 
노대통령은 헌법의 통합 규범성을 망각하고 편 가르기식 통치를 하고 있다. 추종자와 비판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강남 거주자와 비강남 거주자, 자유 신봉 세력과 평등 추구 세력, 친미주의자와 반미주의자, 친북 세력과 북한 비판 세력, 개혁 세력과 수구 세력, 좌파와 우파, 사용자와 근로자, 우호적 언론과 비우호적 언론, 방송과 신문, 호남과 영남, 서울과 지방 등. 이러한 이분법적 분파 정책으로 헌법이 지향하는 사회 통합에 역행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 번도 통합적 리더십과 통치력을 보여준 일이 없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편을 가르고, 어느 한쪽 편에 서서 다른 쪽을 공격하거나 골탕 먹이려고 했다.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회를 갈기갈기 분열시켰다. “모든 세력과 계층을 두루 아우르라”는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통치 행태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기록된 2004년의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비롯해서 행정수도이전특별법,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 등 위헌적인 정책을 양산했다. 최근에는 공직선거법이 정하는 선거 중립 의무를 어기면서도 중앙선관위의 준법 요구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이러한 대통령의 발언은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 한 발짝 더 나아가 헌법 소원까지 제기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독선적이고 위헌·위법적인 노대통령의 정치 행태는 임기 초부터 시작되었다.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은 정당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어긴 것이다. 자신을 후보자로 공천해서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정당을 깨고 새 정당을 만든 일이나, 임기 말에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행위는 정당 정치의 뿌리를 흔드는 일이다. 정당의 이름으로 정책 공약을 하고 집권했으면 정책을 성실히 수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책임을 지고 심판을 받는 것이 정당 정치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집권 직후 탈당이나, 임기 말 탈당은 일종의 정치적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과 여당의 위헌적이고 인기 없는 정책이 탈당과 정당 개편으로 합법화되고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탈당한 정치 집단의 재집권을 돕기 위해 공직선거법을 어기면서까지 편파적인 대선 개입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탈당을 하지 말든지, 탈당했으면 제3 자의 입장에서 중립을 지키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재신임 국민투표를 강행하려다 좌절된 일이나, 전효숙 헌법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위헌적인 편법을 동원하다가 실패한 일도 있다. 올해 초의 엉뚱한 개헌 발의 소동은 노대통령의 헌법 의식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합리적인 공직 임명이나 사면권 행사의 헌법적인 틀을 무시하는 일도 잦았다. 코드 인사를 일삼거나, 보은 사면을 위한 특별사면권을 남용했다. 선출된 권력의 고유 권한을 내세운 것도 같은 유형이다.
대통령의 통치권은 비록 민주적 정당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헌법과 기본권에 묶인 권한이다. 우리 헌법과 국민은 대통령에게 그런 코드 인사권이나 보은 사면권을 위임한 일이 없다. 노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경시는 우리의 법치주의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법질서를 무시하는 정치적 폭력 시위나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불법적인 노조 파업이 일어나도 우리의 공권력은 미온적인 대처만을 반복했다. 이 때문에 공권력이 무력화되고 위법·불법 행위의 내성만 키워주고 있다.


자유 무시한 평등 만능주의의 함정


자유를 무시한 평등 만능주의는 조세 정책과 노동 정책뿐 아니라, 교육 정책 등 곳곳에 존재한다.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고 하향식 평준화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기업과 교육은 국제 경쟁력을 상실했다. 평등은 소중한 가치이다. 그러나 평등은 자유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허상에 불과하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평등을 위해 자유를 희생시키면 평등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와 평등을 함께 잃게 된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유를 전제로 한 평등, 자유 속의 평등,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한 평등만이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통일을 위한 대북 정책도 마찬가지다. 헌법이 지향하는 통일은 맹목적인 통일이 아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가치지향적 통일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시장경제 질서를 훼손하는 통일 정책과 대북 정책은 우리 헌법 정신과는 조화될 수 없다. 노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좌파적 이념 과잉 및 교조화가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 이념에 위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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