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를 우습게 보지 말라”
  • 이재명 편집위원 ()
  • 승인 2007.07.0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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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신약 소액주주 모임, 모든 상장·등록 기업 ‘주주 포럼’으로 확대 추진

 
"우리는 태산을 옮기는 우공(愚公)이 되겠습니다." 지난 6월18일, 주요 일간지에는 눈길을 끄는 전면 광고가 실렸다. “우리 일성신약이 코스피200지수 편입과 더불어 자산 3천억원과 시가총액 3천억원의 시대를 열었습니다”라는 굵은 제목은 주식시장 호황을 타고 일성신약이 낸 광고인 듯한 이미지를 풍겼다. 하지만 깨알 같은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일성신약 경영진들에게 불만을 표명하는 소액주주들의 의견 광고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일성신약주식회사 주주협의회 회원일동’명의로 된 광고에는 “우리 회사 경영진의 경영 마인드를 변화시켜 불합리한 경영과 주주 홀대 정책을 개선토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나가겠다. 주주 중시의 투명 경영! 그 누구도 시대의 요청을 거스를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저배당 정책과 지배 주주 지분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의 광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에는 ‘일성신약 주주 표형식’ 명의로 지배 구조 개선, 배당금 증액 등을 요구하고 두 달 후인 4월19일 일성신약 주주협의회(일성신약을 사랑하는 모임)를 출범시켰다. 당시 일성신약 주식을 갖고 있던 소액주주 80여 명이 모였는데 사회적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 주축이 되고 국내에서는 생소한 소액주주 운동이 본격화되었다는 점 등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들은 지난해 2월24일에는 일성신약 정기 주총에 참석해 감사 선임의 안을 63.5 대 29(기권 7.5)로 부결시키기도 했다.
이 운동을 제안하고 이끌고 있는 사람은 이른바 ‘슈퍼 개미’로 알려진 표형식씨(53). 그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대현·제일테크전자·대원제약 등 상장회사의 ‘주주 자격’으로 신문 광고를 통해 투자 회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곤 해서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현재 제일약품 주식을 3년째, 일성신약 주식을 1년7개월째 보유하고 있다. 제일약품은 주총에 참석하고 다른 소액주주들과 교류는 하지만 주주협의회는  구성하지 않고 있다.
그가 현재 갖고 있는 주식은 일성신약 13만여 주로 일성신약 전체 발행 주식의 4.99%, 시가 1백60억원에 이른다. 제일약품은 44만 주(3%)로 40억원어치. 두 회사 주식을 합치면 2백억원이 넘는 재산이다. 항간에서 쓰는 표현 그대로 ‘슈퍼 개미’이다.


슈퍼 개미 표형식의 ‘3·3·3:1 법칙’


 
그의 주식 투자는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 대현 주식을 샀다가 배당금을 5백원밖에 주지 않는 데 실망해 ‘주주가 주인’이라며 1천5백원을 요구해 결국에는 관철시켰다. 이것은 소액주주 운동의 효시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직업이 ‘주주’이다. 그의 명함에는 ‘일성신약 주주 표형식’, ‘제일약품 주주 표형식’이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그 회사가 생산하는 의약품을 열거하고 있다.
“주식 투자란 장래가 유망한 기업에 투자해 주주로서 경영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며 행복하게 잘살기 위함인데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시세만을 좇아 단기 매매에 임하다가 정신은 황폐해지고 투자 손실마저 입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표씨는 자신의 행동이 개인적인 욕심에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3·3·3:1’ 법칙이라는 것을 만들어 전파하고 있다. “맨 앞의 3은 최소 3년 이상 장기 투자하는 마음가짐으로 투자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 3은 재무제표나 주가수익배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세 가지 이상의 지표를 분석한 다음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3은 3명 이상의 지인들과 함께 투자하다 보면 의견 조율 과정에서 굴곡이 심한 시장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비교적 합리적인 판단을 함으로써 성공 투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1은 주주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너와 내가 아닌, 공동체의 하나라는 의미이고 동시에 투자해서 얻은 이익의 일정 부분은 또 다른 나인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자는 뜻이다”라며 소액주주 운동이 올바른 주식시장 풍토 조성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주식 투자에서 번 돈의 상당액을 기부하고 있다. 참사랑장학회를 만들어 30여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안승남 목사가 이끄는 한국천사운동본부와 제휴해 지역별로 소년 소녀 가장, 독거노인 돕기 등의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모교인 중동고와 아들이 다니는 연세대에도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나눔에 적극적인 편이다.
그러나 표씨의 잇따른 광고 공세에 곤혹스러워하는 곳은 다름 아닌 일성신약이다. 일성신약측에서는 표씨에게 주요 주주 신고 기준인 지분율 5%를 넘지 않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고 표씨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5%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표씨가 경영권에 위협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성신약측이 주주들에 대한 배당 증액 등에 소극적이라며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표씨와 함께 소액주주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전략컨설팅 업체 (주)에프앤비젼의 김지승 대표는 “최근 주가가 뛰니까 너도나도 몰려들어 개미들이 상처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식시장의 역사가 선진국에 비해 일천하므로 일반 투자자들은 투자 대상이나 투자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무조건 사면 오르는 종목을 추천해달라고 한다. 소액주주 운동은 그런 일반 소액투자자들을 위해 투자 방법을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건전한 주식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주식 투자를 하면서 주주들이 모여서 힘을 합치자는 것이다. 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는 회사들은 배당이 적고, 기업 투명성이 낮으며, 지배 주주 지분이 많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점을 개선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주가가 상승하고 주식시장이 건전하게 평가되도록 하자는 운동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 주주들은 외국인 투자가들의 말은 잘 들으면서 국내 주주들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런 경영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주식 투자의 기본 목적인 배당을 정당하게 받으려는 것이다. 시세 차익보다는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도록 장기 투자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일성신약측은 구체적인 견해를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다. 이 회사 최임석 총무부장은 “기본적으로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노코멘트이다”라고 밝혔다. 최부장은 “개인적으로 말한다면 주주협의회의 활동을 지켜보는 입장이며 사주인 윤병강 회장께서 올해 주총에서 지난해보다 2%포인트 많은 10%의 배당을 실시했으나 주주들의 요구를 더 이상 수용하기는 무리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주주들의 광고로 인해 특별히 불편하거나 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없으나 일반인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일은 원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표씨를 비롯한 주주협의회 간부들은 “오는 9월에는 ‘행복한 주주 포럼’을 만들 계획이다. 일성신약뿐만 아니라 모든 상장·등록 기업의 주주들에게 투자 마인드를 계도하는 주주 운동으로 확대시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일로 소액주주 운동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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