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신영철 SK 와이번스 야구단 사장
  • 왕성상 편집위원 ()
  • 승인 2007.07.0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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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행복해져야 야구와 구단이 산다"

 
요즘 프로야구에서 팬들을 열광케 하는 구단이 있다. 바로 SK 와이번스다. 지난해 성적이 8개 구단 가운데 6위에 그쳤으나 지금은 1위를 달린다(6월26일 현재 36승 25패 5무). SK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 수도 32경기 만에 지난해 관중 수(33만명)를 넘어서고, 평균 관중 수도 지난해의 두 배를 웃돈다(2006년 평균 관중 5천2백56명, 2007년 1만4백70명).
한마디로 SK 와이번스는 ‘성적’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SK의 이런 행보는 다른 구단과 국내 스포츠계에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SK 와이번스 야구단의 신영철 사장(53)과 코칭스태프·선수·직원들이 똘똘 뭉친 결과다. 특히 신사장이 지난해 10월 처음 화두를 던지며 실천 중인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가 야구판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SK 돌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1년도 채 되기 전에 스포테인먼트는 국내 스포츠계의 유행어가 되었다. “도대체 스포테인먼트가 뭐기에 SK가 이렇게 확 변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SK를 벤치마킹하려고 인천 문학구장을 찾는다. KBS 국제방송 등을 통해 일본에서도 인터뷰 요청을 해올 정도이다.
“스포테인먼트는 단순히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것만은 아니다. 성적과 선수 중심의 구단 운영 시대는 지났다. 이제 프로야구는 팬 중심으로 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경기만 잘해서 이기면 된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구단 운영 방식을 고집한다면 프로야구는 존재 가치를 잃을 수밖에 없다. 팬들에게 재미와 감동까지 주어야 한다. 요즘 볼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야구가 그렇다. 경기도 보고 즐길 거리를 주어야 팬들이 늘고 야구단도 산다. 더불어 전체 야구판도 살고….”
인천 문학야구장 내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스포테인먼트에 대한 확신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고려대 대학원(신문방송학 석사)을 거쳐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모기업인 SK텔레콤 홍보실장, 스포츠단장을 거쳐 2005년 4월부터 야구단 사령탑을 맡고 있다.
왜 스포테인먼트 개념을 도입했나?
국내 야구판이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프로야구 역사가 25년이 되었지만 변화에 둔감했다. 세상이 달라졌고 팬들의 욕구가 다양한데도 야구는 그대로였다. 체질 개선 의지는 물론 위기의식도 부족하다. 1995년을 정점으로 관중 수가 끊임없이 떨어졌지만 야구계에서는 근본적 변화를 꾀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구단부터라도 스포테인먼트 개념을 야구에 접목시켜 프로야구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제2의 르네상스를 안착시켜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스포테인먼트는 이제 시작이고 진행형이다.
스포테인먼트를 SK 와이번스에 접목시킨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SK 와이번스는 지난해 시즌 6위의 팀 성적과 전년 대비 28% 관중 감소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국내 8개 프로야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우승을 하지 못한 팀, 연고지에 아직도 뿌리내리지 못한 구단의 현실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이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고민한 끝에 구단 전체 틀을 바꾸는 차원의 개혁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선수단과 구단 개혁의 핵심 테마로 스포테인먼트를 도입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변화로는 SK 와이번스를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팬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서 얻어낸 것이 바로 스포테인먼트다(SK 와이번스는 2000년 3월 창단했다. 인천 연고 야구단은 1982년 출범한 삼미를 시작으로 청보→태평양→현대 순으로 바뀌었으나 현대가 서울로 가는 바람에 SK가 인천을 택한 것이다).
생소한 스포테인먼트 개념 도입에 대해 거부 반응은 없었나?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야구단 식구들이 잘 따라주었다. SK가 1위를 달리고 관중 수가 대폭 늘어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김성근 감독, 이만수 코치와 선수들이 잘 뛰어주었고 이들을 받쳐준 직원들 노력 덕분이다. 모두 ‘스포테인먼트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이만수 수석 코치의 ‘팬티 퍼포먼스’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SK 홈구장인 문학구장이 ‘흥행의 메카’가 되었다고 들었다.

2002년 개장된 문학구장은 국내 최고 시설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천은 야구 변방에 머물러왔다. 그러나 지금은 확 달라졌다. 갖가지 이벤트가 펼쳐지면서 팬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3거리(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로 찾고 싶은 곳이 되었다. 이코치의 퍼포먼스 날에는 입장권이 바닥나고 4천여 명이 표를 사지 못해 돌아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야구는 팬을 위해 있고, 선수는 팬을 향해 먼저 다가서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팬들은 스타와 이슈에 열광한다는 사실도 입증되었다. 팬은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팬을 주인으로, 야구장을 공연장화해야 한다. 낡은 구장에다 우승을 못해도 팬들의 사랑이 꾸준한 미국 시카고 컵스 야구단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얼마 전 설문 조사에서도 야구장을 찾는 이유로 경기 성적과 ‘3거리’ 때문이라는 답이 반반씩 나왔다.
경기장에 눈길을 끄는 시설들이 많은데….
앞서 말한 ‘3거리’에 따른 고객 위주의 시설들이다. 야구장 3루 쪽 72m 가로 띠 전광판은 메이저리그 스타일이다. 팬들이 야구장 안에서 선수나 가족, 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보내면 전광판에 곧바로 메시지가 뜬다. 팬들은 그것을 보고 자신들이 경기를 만들어가는 일원이라고 여긴다. 게다가 야구장의 놀이공원화를 위한 와이번스 랜드, 먹을거리를 위한 인천의 명물 이화찹쌀 순대, 체험 존을 설치했다. 단순히 야구를 보는 것에서 직접 해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투구 스피드, 타격 체험 공간 등이 그것이다. 또 야구장을 찾는 것에서부터 인천 시민들이 야구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지하철역 이름도 ‘SK 와이번스역’으로 바꿨다  
관중에게 다가서기 위한 이색 팬 서비스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우선 지난해 10월15일 감독 취임 행사를 들 수 있다. 프로구단 최초로 김성근 감독의 취임식을 인천시청에서 3백여 팬들과 함께 했는데 인터넷 생중계까지 되었다. 와이번스 걸(이현지)도 선정했다. 다른 구단의 얼굴마담식 연예인 홍보대사와 달리 구단 행사 및 경기 때 직접 선수 소개도 하고 팬들과 함께 관중석에서 응원도 하니 팬들이 너무 좋아한다. 또 국내 최초로 팬 축제도 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을 올 3월25일 인천 앞바다 유람선에서 펼쳤다. 프로야구 인기를 되살리자는 뜻에서 ‘출항’이란 컨셉트를 담았다. 5백50여 명이 승선해 우승 기원 고사, 인기 선수들의 즉석 댄스, 선수와 팬이 함께 한 림보 게임 및 춤 경연이 있었다. 이 밖에도 매주 토요일 경기 후 불꽃놀이, 주말 경기 때  선수단 전원의 ‘팬 사랑’ 유니폼 입기, 홈런을 쳤을 때 영상 분수 쇼, 연안부두와 함께 펼치는 불꽃 응원 등이 있다.
게임 관람에 재미를 더하기 위한 경기장 이벤트도 있는가?
팬들은 야구만 보러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야구장을 자주 찾는다. 수훈 선수들의 경우 종래는 운동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팬들에게 간단한 인사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선수가 응원 단상에 올라가 관중과의 대화, 사진 촬영, 테마송에 맞춰 춤추기 등으로 즐거움을 주고 있다. 선수들의 이런 세리머니 동영상이 팬들 사이에서 인기다. 클리닝 타임 때 선수와 관중이 함께 하는 운동장 이벤트, MBC-ESPN과 함께 하는 연예인 야구 리그전도 빼놓을 수 없다.
드러난 모습과 행사들 못지않게 실속이 더 중요할 텐데 SK 고정 팬 확보 방안이 있는가?
잠재 고객인 어린이 회원 확보를 위해 올봄 가입비(2만원)를 받고 선물(점퍼·모자·배트 등)과 현장 체험 기회를 주자 하루 만에 1천명이 마감되었다. 하도 문의가 빗발쳐 추가 모집(5백명)에서도 3시간 만에 접수가 끝났을 정도로 인기였다. 일반 팬을 위한 것으로는 63경기를 다 볼 수 있는 연간 회원권을 10만원에 판매해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28명이던 연간 회원을 올해는 1천2백60명 확보해 시즌 전 1억3천만원가량의 입장 수익을 올렸다.
야구단 사장은 어떤 자리이며, 스포테인먼트가 그룹 경영에 얼마나 도움을 준다고 보는가?
야구단 사장은 스포츠맨이라기보다 경영자다. 회사 조직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끌고 가고, 나아가 모기업에 도움을 줄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리다. 기존 스포츠 패러다임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가미한 이유는 팬을 왕으로 여기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구단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이는 ‘고객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SK그룹의 행복 경영’과도 통한다. 따라서 스포테인먼트는 그룹 경영 이념을 스포츠 현장에 성공적으로 접목시키는 경영의 도구(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일들을 해내려면 내부 결속이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시도를 하며 나타난 결실은?
대화와 교육이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사장이라고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없다. 감독과 코치·선수·프런트·구단 직원별로 맞춤형 교육에 나서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몇 차례 이런 기회가 있었다. 그 결과 팬을 왕으로 받들고 있다. 경기가 있는 날은 모두 비상이다. 직원들의 경우 경기를 보는 대신 팬들을 쳐다보고, 경기장 곳곳을 돌며 시설도 챙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직 활성화, 일에 대한 자신감, ‘다 같이 해보자’는 자율적 분위기가 싹트고 있다.
지난해까지 SK 스포츠단장을 겸하며 프로농구팀까지 맡았다. 야구단과 농구단의 차이는?
농구가 더 역동적이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하다. 야구는 복잡하고 지루한 것 같지만 그 안에 열정과 감동이 있다. 야구가 인생과 닮았다고 하지 않는가. 농구에도 반전이 있지만 대개 4쿼터로 끝난다. 반면 야구는 성공과 실패가 이어지는 삶과 같다(그는 지난해 골프선수 미셸 위를 초청하는 등 야구, 농구, 골프, 펜싱과 e게임단까지 맡아 뛰었다).
몸매가 단단해 보이는데 과거에 했던 운동이나 좋아하는 스포츠는?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의정부시로 와서 살 때 권투를 했다. 서울 청량중, 경신고까지 기차 통학을 하면서 남들에게 맞지 않으려고 했다. 그 무렵 합기도, 유도 등도 좀 했다. 야구는 원래 좋아한다. 한때 인기였던 전국 고교 야구대회를 자주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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