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의 깃발 다시 드는가
  • 박상남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
  • 승인 2007.07.1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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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국가’ 불명예 딛고 초고속 성장 계속…에너지 자원 무기로 패권 재탈환 별러

 
러시아는 부활하고 있는가?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끝없이 추락할 것 같은 암울한 국가였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한 정국 안정과 막대한 오일 달러 유입에 힘입어 도약의 계기를 만들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우리나라 평창보다 늦게 뛰어든 러시아 소치가 결정된 데에도 석유·가스 수출로 돈방석에 앉은 러시아 에너지 기업의 전방위적 로비가 큰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이다. 러시아는 더 이상 경제난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1991년 옛 소련과 함께 사회주의 복지 제도가 붕괴되면서 냉혹한 생존 경쟁에 내몰린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불안과 좌절의 시기를 보냈다. 국가로부터 집과 직장·무료 교육 등 모든 것을 보장받았던 과거와 달리, 갑자기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시장경제 시스템에 내몰린 대다수 러시아인은 절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러시아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생활고를 탈피하기 위해 전세계를 떠돌던 러시아 무희들이 사라지고, 세계 유명 휴양지는 돈 많은 러시아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2백~3백 달러에 불과하던 대졸 신입사원 초임이 1천5백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공무원과 군인들의 임금조차 제때에 지급하지 못하던 러시아 정부가 이제는 출산 장려금으로 둘째 아이를 낳는 가정에 약 1만 달러를 일시불로 지급하고, 매달 별도의 육아 보조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불과 7년 동안에 일어난 변화치고는 놀라운 결과이다.
푸틴은 집권 후 ‘국가자본주의’라는 자신만의 자본주의 방식을 확립해가고 있다. 국가 주요 산업에 대한 강력한 국유화 정책과 국가 주도의 경제 운영, 국영 기업들의 규모 확대를 통한 단시간 내의 경제성장 추구, 강력한 중앙 집권을 통한 정치 안정과 일사 분란한 추진력 등으로 요약된다. 푸틴 정부의 ‘국가자본주의’가 없었다면 러시아의 회복은 불가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임기 말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 70% 상회
이제 ‘국가자본주의’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특유의 국가 통치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경제 회복에 힘입어 푸틴은 2004년 3월 대선에서 무려 70%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푸틴의 통치 방식이 러시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권위주의화함으로써 러시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국내외적으로 일고 있다. 위압적인 권력 행사, 체첸에 대한 강경 진압, 언론 통제 및 지방자치 축소 등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통치 행태로 인해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국가 발전 방향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논쟁이 러시아 내에서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임기 말인 지금도 푸틴에 대한 지지도가 여전히 70%를 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높은 지지를 빌미로 푸틴이 2008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3선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다시 선거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보다는 자신이 지목한 후계자를 통한 정권 재창출에 나설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현재 푸틴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부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부총리가 거론되고 있다. 푸틴 정권 내 ‘실세 중 실세’로 통하는 이바노프는 이론과 추진력 등 모든 부분에서 ‘푸틴의 분신’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메드베데프는 최근 에너지 관련 인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인물로 1990년대 초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 시절 푸틴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비중이 큰 에너지 국영기업이며, 이번 동계올림픽 소치 유치의 로비를 맡았던 가스프롬 사의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러시아의 최근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7년 전에 비해 여섯 배 가까이 성장했다. 푸틴은 최근 수년 안에 국민총생산을 현재의 2배로 늘리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1998년 경제 위기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파산했던 러시아는 2006년 기준으로 수출 규모가 3천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무역수지는 1천4백억 달러, 경상수지는 1천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또 3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 보유고를 확보함으로써 중국·일본의 뒤를 이어 세계 3위의 외환 보유 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축이 될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 중 하나로 세계의 이목을 끌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외국인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독일·일본 기업은 물론 중국도 대규모 러시아 투자에 나서고 있다.
 

현재 러시아의 핵심적인 대외 정책 중 하나는 자국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이용해 세계적인 영향력 복원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석유 30%, 가스 40%)는 날로 증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에너지 자원을 둘러싸고 일본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한국 역시 이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같은 전세계적 에너지 영향력을 바탕으로 러시아는 자국의 국제적인 힘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겨울 가스 공급을 일시 중단해 유럽 전체를 혼란에 빠트린 것도 자국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평가이다.
러시아는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새로운 ‘석유-가스 동맹’(Oil -Gas Union)을 창설하려고 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구상이 성공한다면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21세기 국제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국제기구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푸틴은 강대국 간 협조 체제(러시아-중국-인도)와 상하이 협력 기구(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및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으로 구성된 기구) 강화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에너지를 통해 냉전 붕괴 이후 추락해온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다시 미래에 대한 희망적 전망과 자신감으로 꿈틀대고 있다. 더불어 한때 약화되었던 러시아의 한반도 평화와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영향력 역시 다시 증대할 것으로 보인다. 길게 내다보는 한국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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