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국정원 덕 보나
  • 정락인 기자 ()
  • 승인 2007.07.2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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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정치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강화하는 이 전 시장의 ‘전세 역전’ 전략은?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정치 공작’ 정국이 심상찮다. 선거 때마다 불거진 정치 사찰 망령이 되살아났다. 국정원이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 친·인척의 개인 정보를 열람한 것이 불씨가 되었다. 이는 작은 불씨에 불과하다. 정치 사찰 논란을 불러온 ‘부패척결 태스크포스(TF)팀’의 존재는 메가톤급 폭탄이다.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터진 것도 문제이다. 현재로서는 국정원의 정치 사찰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 불허이다. 청와대 연계 또는 개입설이 드러날 경우 그 폭발력은 엄청날 전망이다. 더욱이 국정원의 구악이라고 하는 ‘정치 공작’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래저래 국정원은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반면 이명박 후보는 국정원 정국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국정원 정치 사찰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이후보는 잇단 검증 공세에 녹초가 되었다. △차명 재산 의혹 △서울 천호동 뉴타운 지정 관련 개발 정보 유출 의혹 △BBK 금융 사기 관련 의혹 △병역 면제 등이 그를 괴롭혀왔다. 이런 와중에 터진 국정원 사태는 최대의 호재가 되고 있다.
우선 검증 공세를 잠시 피해갈 수 있는 ‘피신처’가 생겼다. 국민들에게 정치 사찰의 피해자라는 동정심을 불러, 각종 의혹에 맞춰진 시선을 돌릴 수도 있다. 잘만 하면 정국 주도권을 쥘 수도 있다. 하락세를 보이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시사저널>이 7월10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이명박 후보(34.3%)와 박근혜 후보(22.3%)의 지지율 차이는 12%포인트였다. 지난 2월 <시사저널> 조사에서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25.9%포인트였다. 박후보는 지지율이 상승세인 데 반해 이후보는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정치권과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이명박이 위험하다’‘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어렵다’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보는 지지율 차이를 좁혀오고 있는 박근혜 후보를 따돌릴 수 있는 큰 계기가 필요했다. ‘국정원 정국’은 이후보에게는 가뭄에 단비가 되었다. 실제로 효과는 지지율에서 나타났다. CBS와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티가 지난 7월16~18일 실시한 대선 주자 주간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이 조사에서 이후보는 이전의 여론조사 때보다 2.6%포인트 오른 39.1%를 기록했다. 동일한 지지율을 보인 박후보(28.3%)와의 격차를 8.2%포인트에서 10.8%포인트로 약간 벌려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정원이 이 전 시장을 도와준 셈이다. 이후보측은 ‘국정원 정국’의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이명박 죽이기 광풍이 불고 있다’며 불법 정치 사찰의 희생자임을 최대한 강조하고 있다. 남은 선거 기간 중 국정원의 선거 개입 자체를 막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TF팀 존재’ 제보 받고 폭로 시점 치밀하게 저울질
국정원의 ‘부패척결 TF팀’이 드러난 것은 내부 고발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국정원

 

도 내부에서 새는 비밀은 막지 못했다. 이후보측과의 정보전에서 국정원은 주도권을 잃었다. 정보 기관 특유의 치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대로 이후보측은 철저한 계산 아래 정국을 유리하게 끌고 나갔다. 국정원 TF팀 정보를 입수하고 최대한의 약발을 노렸다. 폭로 시기와 방식을 놓고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첫 포문을 연 것은 이후보측의 이재오 최고위원이다. 이최고위원은 지난 7월8일 “이명박 X파일을 만드는 데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구체적 제보를 받았다. 2005년 3~9월 국정원 지시로 X파일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으며 3~4명의 TF팀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낚싯대를 한 번에 드리우지 않고 미끼부터 던진 꼴이다.
그러다가 7월12일 국회 정보위가 열리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혹의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김만복 국정원장에게 “정부 전산망에 접근할 수 있느냐”와 “국정원이 정부 전산망의 접속 기록을 파악할 수 있느냐”를 따져 물은 것이다. 김원장은 “국정원이 토지·건물·세금 등 17개 아이템에 대한 행정 전산망과 연동되어 있다”라고 답했다. 이는 국정원의 개인 정보 열람이 단순 업무 차원인지 아니면 조직적인 정치 사찰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는 것이었다. 김원장의 말은 국정원이 국세청, 행정자치부 등 14개 국가 기관의 17개 전산 자료망에 접속해 해당자의 주민등록·세금·주택·병역 등에 관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음을 확인해준 셈이다.
이후 한나라당이 공개한 ‘국정원의 전산 자료 활용 방안’ 등을 보면 국정원이 광대한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의 신상 정보가 국정원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의 ‘정보 접근권’이 무소불위의 힘에 비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정원의 정보 접근권을 확인한 다음날 이후보측은 구체적인 폭로전을 시작했다. 이후보측의 박형준 대변인은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의 이명박 TF팀 구성과 이명박 X파일 작성에 대한 구체적 제보를 입수했다”라며 국정조사와 국회 정보위 소집을 요구했다. 개인 정보를 열람한 국정원 고 아무개 직원(5급) 이름까지 들먹였다. 뒤이어 국정원 내부의 ‘이명박 TF팀’의 존재가 폭로되었다. 이후보측 폭로에 국정원 반응은 ‘부정-인정-해명’을 거듭했다. 한나라당과 이후보측이 TF팀을 정치 쟁점화하자 국정원은 자체 조사를 벌인 뒤 TF팀 존재를 시인했다. 2004년 5월부터 설치된 ‘부패척결 TF팀’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명박 TF팀’이 아니라 부패 사범을 적발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개인 정보 열람이 불법 정치 공작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정치 공작이나 정치 사찰로 몰고 가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부패척결 TF팀’의 활동 내용을 공개하면서 정치 사찰과 무관함을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이 TF팀이 수집한 부패·비리 첩보를 검찰과 경찰 등에 제공함으로써 군납 비리, 조직폭력, 제이유 사건 등 8대 민생 경제 침해 사범 18만3천4백여 명을 적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부패척결 TF팀의 실적을 내보이며 오해를 말아달라고 했다. 이후보 관련 자료에 대해서도 부패척결 TF팀 직원이 지난해 8월 정상 업무 수행으로 행자부 자료를 열람했지만 절대 외부 유출은 없었다고 밝혔다. 자료는 2006년 8월 행정자치부를 통해 한 차례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과 이후보측은 개인 정보 열람을 불법 정치 사찰로 규정짓고 있다. 국정원법의 ‘정치 관여 금지’ 규정을 명백히 어겼고, 정부 조직법상 국정원을 지휘·감독해야 할 대통령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가 청와대의 정권 재창출 태스크포스팀을 통해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넘어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청와대는 정치 사찰 논란이 불거진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청와대 개입설’을 차단하는데 힘쓰고 있다. 청와대는 ‘부패척결 TF팀’ 존재는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다며 발을 뺐다. TF팀이 생산한 정보를 보고 받았을 수는 있으나 출처는 몰랐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후보 관련한 보고는 받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의 부패척결 TF팀에 대해서도 ‘국정원의 고유 업무이자 통상 업무’라며 국정원을 거들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정보 기관의 정보에 무슨 실·과에서 만든 것이라고 적지 않는다. 정책 정보 차원에서 민정수석실로 보고해온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태도에 대해 ‘청와대 개입설’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국정원은 ‘내부 고발자’ 찾기 나서
한나라당은 부패척결 TF팀의 정보가 당연히 청와대에 보고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최대 관심 사안인 이후보에 대한 보고를 빼먹었을 리가 만무하다는 얘기이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청와대 주장은 조사 결과를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국정원장 얘기와 전혀 다르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라고 공격했다. 이후보측의 진수희 대변인도 “정황상 청와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상을 밝히고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라고 촉구했다. 국정원은 부패척결 TF팀 운영 사실이 한나라당측에 유출되자 대대적인 내부 감찰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에 정보를 제공한 ‘내부 고발자’ 적발에 나선 것이다. 선병렬 열린우리당 의원은 7월1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한나라당이 국정원 인맥을 줄 세우기 시켜서 정보를 빼내려 한다. 정치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 기관을 선거판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국정원 정국’을 정치 쟁점화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엿보이고 있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김승규 전 국정원장, 이상업 전 국정원 2차장, 부패척결 TF팀 관계자 3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에 배당해 국가 정보 유출 의혹 사건과 함께 수사하도록 했다. 검찰 수사의 향방에 따라 정치·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점쳐진다. 이는 대선 정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문민정부 이후에도 정치 공작을 계속해왔다. 1997년의 북풍 조작 사건을 비롯해 1998년 이대성(안기부 해외공작실장) 파일사건, 2005년 안기부 X파일(미림팀 도청) 사건 등이 있었다. 특히 안기부 X파일 사건은 김영삼 정부의 ‘미림팀’에서, 김대중 정부의 불법 도청으로 번졌다. 이 사건으로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이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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