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 잃고 헤매는 ‘뒷걸음 축구’
  • JES 제공 ()
  • 승인 2007.07.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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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 아시안컵에서 고전…공격 패턴·위기 관리 등 허점 ‘숭숭’

 

한국 축구 위기론이 솔솔 새어나오고 있다. 아시안컵 조별 예선전에서의 부진 때문이다.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우승을 노리고 나선 아시안컵 D조 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전 1-1 무승부에 이어 바레인전 1-2 역전패로 망신살이 뻗쳤고, 인도네시아전에서 간신히 승리(1-0)하며 기사회생해 8강에 턱걸이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에 오른 이후 축구에 대한 열기와 관심은 더욱 높아져갔지만 2006 독일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 실패 등 국제 대회 성적표는 축구 팬들에게 한 차례도 만족감을 전해주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현대 축구는 전술 싸움
현대 축구는 90분 동안 끊임없이 시스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상대의 허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선수들의 기량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발전적 모색이 현실로 드러난 결과이다.
과거와 같이 한자리에 고정해 지역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고 선수 모두 전후 좌우로 자리를 이동하며 공간을 창조해 틈을 만들어야 한다. 최전방 공격수가 최후 수비수가 될 수도, 수비수가 최전방 공격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좌우 측면의 자리 이동도 심하다. 선수들은 경기 내내 벌어지는 이러한 변화에 흐르는 물처럼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하며 부족한 부분은 팀 훈련으로 메워야 하는 것이다. 실제 유럽 리그 초일류 클럽들의 경기를 살펴보면 선수들이 고정된 자리를 벗어나 끊임없이 자발적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처럼 자유 분방한 움직임 속에서 안정된 수비력이 가능한 이유는 상당 부분이 약속된 플레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술 변화를 꾀하기 위해 가장 선호되는 방법 중 하나는 선수 교체이다.
팀의 색깔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선수의 투입은 전술에 익숙해진 상대의 허점을 유도하게 된다.
하지만 현 한국 축구 대표팀은 이같이 유기적인 움직임이 약하다. 미드필드에서의 패스력은 상당 수준에 와 있지만 상대를 무너뜨릴 날카로운 골까지 연결시키는 데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러한 전술이 상대에게 익숙하다는 점도 문제이다. 수년 동안 한국 축구의 공격 패턴은 단일화되어 버렸다.
성인 대표팀은 물론 올림픽 대표팀까지 일정 패턴의 전술 외에는 선보이지 않는다. 롱패스에 의한 수비 뒷공간 활용이나 측면 돌파를 통한 크로스 마무리가 대표팀이 보여준 공격방식이다.
프리킥·코너킥 등 세트플레이에서의 공격 전술 또한 직접 슈팅 외에는 크로스밖에 안 보인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창의적인 탐구가 필요했지만 완성된 전술은 없었다.

 

차라리 선제골을 내줘라
요즘 대표팀은 일찌감치 선제골을 넣어 신바람을 내다가 어느새 주도권을 내준 뒤 동점, 역전골을 허용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축구에서는 골을 넣는 것뿐 아니라 넣은 골을 지키는 것도 실력이다. 특히 축구는 지고 있는 쪽이 맹렬한 기세로 나오기 마련. 차분히 리드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핌 베어벡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고 약점을 진단한 바 있다. 실력으로 약점을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앞선 두 경기는 어린 선수들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난 경기였다. 베어벡 감독이 그토록 강조하는 ‘볼을 소유하는 시간을 늘리면서 경기를 주도하는 축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유리한 상황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어린 선수들은 몰랐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은 세계 일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기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힘과 체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 전체를 아우르는 압박 축구를 펼쳐 4강의 성과를 내놓았다. 특히 국제 대회에서 지배력과 장악력을 높이려면 기량도 중요하지만 경기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승부의 추가 한쪽으로 기운 상황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심리적 안정감은 승패의 척도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해놓고도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 채 주도권을 넘겨준 것은 위기 관리 능력 부재에서 비롯됐다. 베어벡 감독은 베테랑 이운재를 주장으로 삼아 약점을 메우려 했으나 필드에서 이들을 이끌어줄 선수가 부족했다.
이동국은 바레인전 뒤 “강팀이라면 이기고 있을 때 추가골을 넣어 확실하게 이길 수 있어야 한다”라고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베어벡호는 그 반대였다. 상대를 코너로 몰아놓고 오히려 펀치의 빈도를 줄였던 것이다. 공격 페이스는 떨어졌고 백패스는 더욱 늘어났다. 상대에게 심리적 회복 시간을 주고 있으니 땅을 칠 노릇이다. 또 중동 선수들에 비해 개인기에서 열세를 보여 공격 패턴은 더욱 단순해졌다. 페이스는 떨어졌고 패턴은 상대에게 쉽게 읽혔다. 역전의 빌미는 항상 존재했다. 과거 선제골을 내준 채 악착같은 집념으로 동점골을 터뜨리며 활력을 더했던 한국 축구가 지금보다는 충격과 아쉬움이 덜했다.

장·단기 팀 운영 계획 서둘러 완성해야
일반 기업으로 치면 프로스포츠 감독은 전문경영인(CEO)이다. 자산(선수) 운영을 극대화해 이익(승리)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단기적인 방향성과 장기적인 방향성을 모두 산정한 뒤 로드맵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 축구 대표팀 CEO 핌 베어벡 감독은 이러한 부분에서 한계를 여지없이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베어벡 감독도 할 말이 많다. 그는 국내 K리그와의 일정 문제 등 잦은 마찰로 인해 충분한 훈련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또한 자기 스스로도 선수들의 무기력한 플레이에 실망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 축구 대표팀 수장으로서의 책임있는 말 한마디가 아쉬울 따름이다. 한국 축구는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토트넘) 설기현(레딩) 이동국(미들즈브러) 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이루며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팀 자체로는 세계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지 못한 셈이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눈에 띄는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몇년 전까지만 해도 두세 수 아래로 평가받던 동남아 팀들의 약진과 여전히 그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일본·중국의 기량은 한국 대표팀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한국은 여전히 아시아의 호랑이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몇년 뒤에도 아시아의 호랑이로 자리하고 있을지는 지금부터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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