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타사라티 주한 인도대사
  • 김세원 (언론인·고려대 초빙교수) ()
  • 승인 2007.07.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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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깨워낸 2천년 전 ‘사랑과 운명’
 
서기 42년 금관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은 즉위 후 수년이 지나도록 배필을 맞이하라는 주변의 청을 물리치고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멀리 서남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붉은 색 깃발을 나부끼며 다가와 가야국의 해안에 상륙한다. 김수로왕은 친히 해안에 나가 배에서 내린 공주를 맞이한다. “소녀는 아유타국의 공주인데 이름은 허황옥이며 나이는 열 여섯입니다. 부왕 꿈에 상제께서 나타나 ‘가락국의 왕 수로를 하늘에서 내려보내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 그의 배필로 삼게 하라’고 명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그대가 멀리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오래 전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소.” 얼마 후 두 사람은 혼인해 왕자 아홉과 공주 둘을 낳았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실린 김수로왕과 인도 공주와의 러브스토리가 2천년 후에 주한 인도대사에 의해 장편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나게시 라오 파르타사라티 주한 인도대사(53)가 최근 출간한 <비단 황후>는 고대 한국과 인도의 특별한 인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대사가 영어로 쓴 원문을 시인 김양식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인도에서 <망설이는 자객>이라는 스릴러 소설을 펴낸 적이 있는 파르타사라티 대사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인도를 국빈 방문했을 때 인도 외무부 국장으로서 영접 준비를 하다가 허왕후의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었다.
2005년 9월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공교롭게도 김해시로부터 ‘김수로왕과 허황옥 왕후의 혼인을 기념하는 축제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고 그의 생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해의 허왕후릉에 들른 파르타사라티 대사는 붉은 색 파사석으로 지어진 능 앞의 진풍탑을 보고 마치 탑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풍탑은 허왕후가 인도를 떠나 가야로 올 때까지 뱃길의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배에 싣고 왔다는 석탑이다.
파르타사라티 대사는 10개월 동안 이 소설을 썼는데 집필을 위해 아유타국으로 추정되는 인도 중부 갠지스 강 유역의 아요디아와 한국의 경상남도 일대를 둘러보고 영문으로 번역된 <삼국유사>를 구해 읽는 등 꼼꼼하게 자료 조사를 하고 많은 이들의 조언을 들었다.
“김수로 왕릉의 정문에 있는, 물고기가 마주 보는 문양인 쌍어문은 한국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으나 인도의 힌두사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고, 파사석도 한국에서는 나지 않지만 인도에서는 흔한 돌이며, 인도 남부 지방에서 쓰는 타밀어와 한국어는 놀랄 만큼 공통점이 많습니다. 특히 ‘가야’는 고대 인도어인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라는 뜻이라며 부다가야처럼 지금도 인도의 지명에 남아 있습니다. 모두 고대 인도와 한국 간에 실제로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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