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 살아 있는 인술의 현장
  • 노진섭 기자 ()
  • 승인 2007.07.30 10: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방 보건소 르포/ 고령화된 농어촌 의료 수요에 ‘맞춤 노력 봉사’…노인정 역할도

 
한바탕 비가 쏟아질 듯 잔뜩 흐린 7월19일, 경북 영양읍 내에 5일장이 섰다. 할머니들이 장터 바닥에 전을 펴고 오이·고추 등 갖가지 찬거리를 팔고 있었다. 그 중 한 할머니가 팔던 고추를 옆에 있던 할머니에게 잠시 보아달라고 한 후 자리를 떴다. 그 할머니는 인근 보건소로 향했다. 비만 오면 쑤시는 무릎 때문에 약을 타러 가는 것이다.
보건소 1층 로비는 많은 노인들로 북적거렸다. 대부분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전동 안마기에 앉아 쉰다. 딱히 진료를 받거나 약을 타지 않더라도 삼삼오오 모여 자식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의료 기관이 아니라 영락없는 동네 사랑방 모습이다. 영양군 보건소 정준배 소장은 “장날에 맞춰 약을 타러 겸사겸사 보건소에 들르는 노인들이 많다. 장날이면 보건소는 노인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환자 대기실 옆에 있는 한 진료실. 노인 환자와 공중보건의가 마주 앉아 박장대소했다. 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는 탓에 진료 시간도 도시 병원보다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시설이 뒤떨어지는 시골 의료 기관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또 다른 방법은 ‘수다’이다. 환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진료가 시작된다.
잠시 후 보건소 직원들이 가방을 여러 개 들고 차량에 올랐다. 보건소까지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직접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영양읍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화천1리 노인회관에 차가 멈추었다. 노인 20여 명이 보건소 직원들을 반갑게 맞았다. 보건소 직원들도 마치 친할머니를 대하듯 스스럼없이 손을 맞잡고 인사를 건넸다. 진료 중 오가는 대화도 할머니와 손녀가 나누는 대화 같다.
 
“할머니, 이 약은 식후에 먹는 약이에요.”
“응. 알았어. 그런데 어제부터 허리가 아파.”
도시 병원에서는 사라진 ‘왕진’이 지방에서는 아직도 남아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로서는 1주일 만에 만나는 보건소 직원들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또 급할 경우 전화만 하면 언제든지 왕진을 나온다고 한다.
3년 전 척추 수술을 받아 다리를 잘못 움직이는 이 아무개 할머니(78)는 “보건소 직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와서 진료도 해주고 약도 주니까 고맙기만 하다. 또 아무 때나 전화해도 와서 아픈 데를 봐준다”라고 말했다. 황용순 보건진료원은 “5개 마을을 매일 차례로 찾아다닌다. 과거 있었던 왕진과 같다”라고 말했다.
노인정까지도 나올 수 없거나 외진 곳에 사는 환자들은 보건소 직원들이 따로 왕진을 간다. 김 아무개 할아버지(81)는 거동이 불편해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노인회관까지 나오지도 못했다. 9개월 전 넘어져 영양읍 내 병원에 갔을 때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라는 말과 함께 치료 불가능 진단을 받았다. 그 후 안동시에 있는 대형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하면서 물리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김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서울 병원에 갈 생각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치료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소규모 병원, 전문의 못 구해 환자들에게 외면당해
보건소 물리치료사는 김할아버지 손을 잡고 걸어보도록 했다. 이어 다리에 전기 자극 치료를 시작했다. 그 덕에 얼마 전만 해도 전혀 걷지 못했지만 지금은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다리에 힘이 붙었다.
보건소 직원들은 또 차로 15분 떨어진 두메산골에 있는 한 집으로 들어섰다. 이 집에 사는 신정식씨(66)는 2003년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지만 이듬해 식도암으로 전이되었다. 몸이 허약해 수술을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신씨는 음식을 삼키지도 못했다. ‘이젠 죽었다’라고 생각할 때 만난 사람들이 지금의 보건소 직원들이다.

 
신씨는 “보건소 직원들이 집까지 찾아와 치료도 해주고 약도 준다. 또 가끔 목욕까지 시켜준다. 이것이 치료이지 다른 것이 치료인가”라며 웃었다. 그는 항상 웃는다. 방 벽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은 ‘웃자. 크게 웃자. 더 크게 웃자. 푸하하’라는 글이 눈에 띈다. 보건소 직원들이 항상 웃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요즘 식사도 곧잘 할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 신씨는 “보건소 직원이 자주 방문해서 웃고 운동하라고 자극해준다. 서울 병원에는 형편이 되지 못해 가지 못하지만 갈 수 있어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 멀리 간다고 낫는다는 보장도 없고…” 하며 웃었다. 마당에서 콩을 다듬고 있던 할머니는 콩을 가져가라며 방을 나서는 보건소 직원들을 붙잡았다. 콩처럼 구수한 정이 묻어났다.
경북 안동에서 차로 40분가량 떨어진 영양군은 인구가 1만8천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변변한 의료 시설이 없다. 의료 시설은 보건소를 포함해 모두 여덟 곳. 그나마 절반은 치과와 한방의원이다. 진료 과목도 다양하지 않다. 산부인과·안과·이비인후과 진료는 아예 받을 수 없다. 잘해야 인근 도시 병원에서 초빙해온 전문의의 진료를 받으면 다행이다.
그나마 영양 읍내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면 단위 마을에서는 보건지소가  유일한 의료 시설이다. 3천명도 안 되는 면에 개인이 운영하는 의료 시설이 들어설 형편이 되지 않는다. 의원이 없기 때문에 약국조차 없다.
지방에 개인 의원이나 병원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양군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다는 영양병원에서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이 병원에는 원장을 제외하면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 병역 의무 대신 3년 동안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 지구에서 공중보건 업무에 종사하는 공중보건의가 두 명 있을 뿐이다. 그나마 길어야 3년 정도 근무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연봉 1억원을 준다고 해도 오려는 의사가 없다. 한마디로 영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병원 박병수 원장은 “인구 2만명도 안 되는 지역에 10만명 지역에 필요한 의료 설비를 갖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 의원이나 병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으니 진료가 되질 않는다. 이 때문에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환자가 없으니 의료 시설이 없고, 거꾸로 진료가 되지 않으니 환자가 외면한다. 악순환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 지방 병원의 현실이다. 
하지만 시골 병원에서 지켜본 환자와 의사, 직원들의 모습은 가족의 모습과 별반 다름없다. 단순히 진료하고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진료비 외상’ ‘이자는 사과와 배’가 통하는 지방 병원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