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앞세워… “줄을 서시오”
  • 노진섭 기자 ()
  • 승인 2007.07.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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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시설 경쟁력 갖춘 지방 병원 늘어… 입소문 타고 서울 환자까지 몰리기도

 
경남 마산에 사는 유경문씨(61)는 2005년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이 급성백혈병을 잘 치료한다는 소문을 듣고 6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병세가 호전되기는커녕 더욱 악화했다. 결국 골수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병원측의 통보를 받았다. 유씨는 수소문 끝에 한 지방 병원에 우리나라 최고의 급성백혈병 전문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2006년 초 지방 병원으로 옮겨 입원했다. 이후 골수이식 수술을 하지 않고 항암 치료만 받고 완치되었다.
미국 시민권이 있는 김소피아씨(37·여)는 2년 전 국제 변호사인 한국인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부모·친척과 가까이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쁨도 잠시, 맹장암 선고를 받고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암이 복막과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다. 결국 암 말기(4기) 선고를 받았다. 국내 최고의 암 수술 권위자는 그녀에게 다시 수술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이 분야 전문의에게 상담했더니 자신의 제자인 김 아무개 교수를 추천해주었다. 그러나 지방 병원에 근무하는 그 의사를 찾아가려니 망설여졌다.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오랜 망설임 끝에 결국 그 병원을 찾아가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현재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단지 지방 병원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의술을 의심했었다. 이제는 지방 병원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지방 환자들이 서울 병원으로 몰리는 한편으로 지방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전문화를 꾀한 지방 병원들이 나름의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환자들도 치료 효과에 만족하며 지방 병원의 전문성의 실력을 인정한다.
지역민은 물론 서울 환자들까지 끌어들이는 지방 병원들의 공통점은 전문성이다. 백화점식 진료보다 특정 진료 과목을 발전시켜 전문성을 갖추었다. 서울 병원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경쟁력을 갖추고 지방과 서울의 환자들을 유치한다. ‘암’하면 A병원, ‘척추’하면 B병원 하는 식이다. 환자들이 지방 병원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제 지방 병원 가운데는 지역민들의 신뢰를 받는 데서 더 나아가 권위를 인정받는 병원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구에 있는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는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1992년 세계 최초로 모낭군 이식술을 개발한 김정철 교수가 이 센터를 이끌고 있다. 모낭군 이식술은 모심기처럼 한 구멍에 10여 개의 머리카락을 심는 기존 방법을 발전시켜 머리카락의 모낭군을 하나씩 분리해 심는 방법이다. 김교수가 모발 이식 수술을 시작한 1996년부터 10여 년 동안 국회의원 13명을 포함해 3천여 명이 그의 시술로 머리카락을 심었다. 김교수의 이식술은 해외에도 알려져 아르헨티나·이스라엘·그리스·이탈리아 등에서 온 30여 명의 외국인 의사가 이 병원에서 연수를 받았다. 김교수는 “지금 예약해도 2008년 9월에나 겨우 수술받을 수 있다. 진료만 받으려고 해도 5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중소 병원은 고사 위기…“가정의 제도 도입이 살 길”
전남대병원 화순병원은 지방 병원으로는 유일하게 암 전문병원으로 인정받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5월 발표한 ‘2006년 전국  병원별 6대 암 수술 건수’ 분석 결과 화순병원은 6대 암 모두에서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화순병원은 갑상선암(4백27건) 6위, 위암(3백74건) 7위, 대장암(2백58건) 7위, 간암(34건) 8위, 유방암(2백26건) 9위, 폐암(51건) 10위를 차지했다. 6대 암 모두에서 10위권 안에 든 병원은 화순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연대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등 다섯 곳뿐이다. 김영진 화순병원장은 “개원 3년 만에 서울의 초대형 병원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암 분야 수술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우수한 의료진과 전국적인 협동 진료 체계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지방의 일반 병원들도 전문성을 갖춰 독보적인 위치를 굳히는 곳이 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로봇 인공관절 수술을 도입한 수원 이춘택병원은 국내 최대의 정형외과 전문병원을 표방한다. 초정밀 로봇 인공관절 클리닉과 척추, 뼈엉성증(골다공증) 및 관절염 클리닉으로 특화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전 선병원은 척추 전문병원이다. 척추관절센터 등으로 전문성을 갖춘 지방 병원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꼽힌다. 광주 미래로21병원은 최근 심장 수술 1백 건을 돌파해 지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소화기센터, 관절척추내시경센터, 폐암식도암센터, 건강증진센터 등 센터를 특성화했다. 광주 다사랑병원은 알코올 전문병원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남대병원 김상형 원장은 지방 병원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병원 경영의 전문성 확보, 진료 기능의 전문화 및 특성화 등을 꼽았다. 김원장은 “지방 환자들 사이에는 ‘서울 병원이 낫다’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잘 살수록 자신의 거주 지역 병원을 이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지방 병원도 전문성을 갖추면 얼마든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 인구 고령화와 만성 퇴행성 질환의 증가로 지역 밀착형 지방 병원이 더 많이 필요해질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경북대병원 이상흔 원장은 지방의 중소 병원들은 좀더 지역 친화적 의료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대구와 경북 지역에 84개 병원이 있다. 그러나 일부 대형 병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소 병원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밤중에라도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가정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상흔 경북대병원장 인터뷰

“서비스·환경 개선해 최고 병원 만들겠다”

올해로 개원 100주년을 맞은 경북대병원을 이끌고 있는 이상흔 병원장은 서울 환자가 지방 병원으로 발길을 옮기는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구·경북병원회 회장이기도 한 이원장은 2005년 4월 경북대병원장에 취임했다. 이비인후과 전공의인 그는 특히 귀 수술에 능해 ‘귀박사’로 통한다.
지방 병원의 의료진과 시설을 서울 병원과 비교한다면.
“지방 병원의 의료진이나 의료 시설은 서울 병원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시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 몇 대 없는 양전자단층촬영기 등 대형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서울 병원에서 배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친절 등 서비스 부문에서 서울 병원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 또 환경도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지방 병원이 리노베이션 등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구·경북 지역 병원 응급센터들 간에 핫라인을 구축했다는데.
“응급 환자가 몰릴 경우 여유가 있는 인근 병원 응급센터로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핫라인을 구축했다. 적절한 병원을 찾아주는 등 지방 병원의 활성화를 위한 공동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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