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눌린 도시 아이들 숨통 틔운 ‘산촌 유학’
  • 하은정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8.0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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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체험 위주 감성 교육…교과 수업도 질 높여

 
전북 임실군 섬진강가에 있는 덕치초등학교는 전교생이 48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 학교이다. 그런데 이 중 17명이 서울·경기·부산 등지에서 전학왔다. 이른바 ‘산촌 유학’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산촌 유학’이란 대안 교육의 한 형태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 시골 학교에 다니며 농촌의 생활과 교육을 체험하고 돌아가는 프로그램이다.  학원 순례로 상징되는 도시 교육에 싫증을 느끼고 아이의 감성을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덕치초등학교에 도시 학생들이 몰린 것은 지난해 11월부터이다. 도시 학생들에게 자연 체험의 기회를 주고,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에 몰린 농촌학교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취지로 교사들과 교육장, 생태 건축가 등이 머리를 맞대고 ‘도시 학생을 위한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짠 것이 계기가 되었다. 특별한 제한이나 학비 외 추가 비용도 없다.
도시에서 전학 온 아이들은 대부분 어머니와 함께 학교 근처 농가나 숙직실, 관사를 리모델링한 공간에서 생활한다. 아직은 숙박 시설이 부족해 대기 중인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많다. 주말이 되면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아빠가 내려와 온 가족이 시골 체험을 한다. 아이와 더불어 부모들의 삶도 새로워진다. 아이를 유학 보낸 학부모들의 직업은 공무원·은행원·사업가·회사원 등 다양하다. 시골 생활의 불편함쯤은 감수해야 한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매일 먹을 수는 없지만 보리를 튀겨 먹고, 뒷산에 올라 오디와 앵두를 따먹는 것으로 그것을 대신한다.
올 초 공직 생활을 청산하고 초등학교 1학년 딸과 1년 유학을 계획하고 시골행을 택한 주부 강연우씨(33)는 이곳에서 딸을 중학교까지 졸업시킬 작정이다. 적어도 어릴 때만큼은 대한민국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 속에서 지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강씨의 생각이다. 학원 순례에 지친 도시 아이들 틈에서 학습지 교육조차 시켜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아이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심성은 따뜻하다. 강씨는 “공부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도시 아이들은 지식이 많지만 진짜 아는 건 없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자연의 일부로 살며 인간의 존귀함을 서서히 깨달으며 살아간다”라고 말했다. 아이도 그렇지만 강씨도 시골 생활이 만족스럽다. 아이가 짜증을 내며 울어도 ‘너는 네 인생을 그렇게 사는 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강씨는 시골 생활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을 연결할 때도, 도시가스를 설치할 때도 도시보다 시간과 비용이 배로 드는 등 감수해야 할 불편함도 많다.
서울 반포동에 사는 진회숙씨도 올 초 초등학교 6학년 딸을 시골로 보냈다. ‘8학군’으로 불리는 강남에서 산골 마을로 유학을 보낸 이 ‘엉뚱한’ 엄마는 강남의 교육 환경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강남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일부 학생들 중에는 이미 명품 중독에 빠진 학생도 있는 등 다른 지역에 비해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뛰어날 수는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안 좋은 점도 많다는 것이다. 평소 말수가 적고 책을 좋아했던 딸아이는 서울에서의 ‘학원 순례’ 대신 텃밭 가꾸기, 계곡 탐사 등을 하며 방과 후 시간을 보낸다. 진씨는 “외국에서는 ‘시골 유학’이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국내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보니 아직까지는 교육 시설이나 프로그램, 기숙사 등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천국 같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 내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도시에 뒤떨어질라’ 고민 벗어나야
시골 유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부모들의 첫 번째 고민은 “우리 아이가 또래 도시 아이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게 아닐까?”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씨의 생각은 다르다. 부모가 억지로 시키는 과외가 학습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명문대 진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명문대를 보내려는 부모의 욕심 때문에 갈등하고 싸우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시골이냐 서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씨는 딸에게 “꼭 대학에 다니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말로 아이의 선택에 응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덕치초등학교 교사이자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의 말에 따르면 도시에서 온 어린이들은 시골 학교를 다니면서 정규 수업 외에 계절별 농사, 생태를 체험한다. 봄에는 텃밭에 나가 감자·상추·고추 등을 키우고, 섬진강변의 들꽃도 관찰한다. 뒷산에 올라가 새싹이 돋아나는 나무를 관찰하고 도랑에도 간다. 섬진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강의 모습도 관찰한다.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고 가재·송사리도 잡는다.
학원을 전전하던 도시 아이들이 섬진강가 천혜의 자연 경관을 느끼며 생태 체험 교육을 즐기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김진태 생태학 박사가 동행하는 생태 체험은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프로그램이다.
교과 수업의 질도 도시 학교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전교생이 원어민이 가르치는 영어·중국어 수업을 듣고, 매일 아침 태권도도 배운다. 바이올린·컴퓨터·종이 접기와 김용택 시인이 지도해주는 독서와 글쓰기 프로그램도 들어 있다. 어린이와 어머니를 위한 주말도서관도 운영할 계획이다. 방과 후 스쿨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김시인은 “아이들에게 억지로 자연과 생태를 체험하게 하기보다는 자연 속에 넣어두고 사계절이 바뀌고 새가 우는 현상을 몸과 마음으로 스스로 익히게 하는 게 진짜 교육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 자연 체험을 한 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하는데, 아이들의 눈으로 본 자연은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이다”라고 말했다.
공부에 짓눌려서 풀죽어 지내던 도시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진다. 아이들이 활달해지고 당당해지고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에 부모들도 만족스러워한다.
하지만 김시인은 시골 유학을 생각하는 학부모에게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라고 당부한다. 뭔가 대단한 효과를 얻겠다고 기대하면 유학을 권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아이로 키우겠다는 욕심만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 유학 생활이 될 것이다. 시골에서의 삶은 부모의 삶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소한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된 모습은 알지 않는가.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은 바로 자연이니까.” 

우리 아이 어디 보낼까

고산산촌유학센터(063-262-3336)
전북 완주군 고산면. 국내 처음으로 10인 이상 학생들이 기숙하는 센터형 산촌 유학을 시도했다. 황토 흙집 짓기, 텃밭 가꾸기, 과수 농사 체험, 숲 계곡놀이, 산나물 공부, 원어민과 함께하는 생활영어교실(주 1회) 등 자연 체험과 생태적인 생활 양식을 체험한다.

농사철 아저씨의 산촌 유학(blog.naver.com/nongsachul)
경북 상주시 화북면. 귀농자 이명학씨와 몇몇 농가가 손잡고 인근 화북초등학교와 함께 산촌 유학을 하고 있다. 농사 체험과 예술 활동, 생태 살림살이 등이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사람을 억압하거나 자유를 빼앗거나 신경질 나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이명학씨의 교육 철학이 눈길을 끈다.
햇살과 거닐며 놀다(blog.naver.com/hieri)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 마을의 몇몇 농가가 학생들을 모집해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작은 학교인 마천초등학교와 서하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방과 후에는 전통놀이, 생태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한드미마을 산촌 유학(handemy.org)
소백산 자락에 자리한 충북 단양 한드미 마을의 몇몇 농가가 손잡고 센터 형식의 산촌 유학을 하고 있다. 대곡분교 학생들을 위해 일본어 교실, 전통 음식 체험, 영화 보기, 자연 체험 학습 등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은 인근 농가에서 기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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