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난방 유통 체계 믿는 쌀에 밥맛 버릴라
  • 안기옥 (신기술마켓넷 대표) ()
  • 승인 2007.08.0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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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쌀 가격에 혼란스럽다. 쌀 가격 차이가 왜 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또 적정 가격을 판단하기도 힘들다. 쌀 제품의 포장 단위도 제각각이어서 가격 비교는 더욱 헷갈린다.
쌀 가격은 미곡종합처리장이 단독으로 매기는 것이 아니다. 상대역인 바이어가 있다. 미곡종합처리장은 원료곡 수매 가격과 수확 후 품질 관리 비용, 도정수율, 유통 비용, 관리비 등을 감안해 받을 가격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 바이어는 매장 수익과 유통 비용을 감안하고 소비자들의 지급 가능 가격을 감안해 소비자 가격을 결정한다.
품질인증 쌀은 계약 재배한 쌀로 품종과 재배 방법 그리고 원료곡 품질 검사 과정을 거친 쌀이다. 이 쌀은 지역과 품종, 쌀의 가공 상태를 눈대중이나 기계에 의한 평가를 거쳐 미곡종합처리장이 받으려고 하는 가격과 소비지 시장이 팔 수 있는 가격과의 사이에서 가격이 매겨진다.
청결미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같은 브랜드 쌀이지만 계약 재배에서 불합격한 원료곡이나 계약 재배를 하지 않고 수집된 원료곡으로 가공된 쌀이다. 품질인증 쌀보다 품질이 낮기 때문에 가격도 2천~3천원 싸다.
친환경 쌀은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원료곡으로 생산한 쌀이다. 재배 방법에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간다. 원료곡의 가격이 일반 쌀보다 2천~3천원 비싸다. 원료곡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쌀 가격도 당연히 비싸다.

쌀 가격, 소비자 판단 흐려…‘기준’마련 시급
완전미는 쌀을 도정해 싸라기를 선별해낸 후에 골라낸 제품이다. 완전미는  몇 번의 선별 과정을 거쳐 상품화하기 때문에 도정수율이 일반 쌀보다 낮다. 일반 쌀 도정수율이 72%라면 완전미 도정수율은 그보다 낮은

 
68%이다. 또 시설 투자도 더 필요하다. 완전미 가격이 일반 쌀보다 비싼 이유이다.
저온 저장을 한 쌀도 있다. 저온 저장은 원료곡을 연중 10℃ 이내로 저장해 원료곡의 호흡 작용 등 생리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수확기 밥맛을 최대한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다. 당연히 일반 쌀보다 비싸다.
배아미는 도정할 때 쌀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배아미 도정기로 도정한 것이다. 배아는 몸에 좋으며 특히 당뇨 환자에게 좋다. 배아는 유통 중 산화 위험이 있어 진공 포장을 한다. 이런 비용이 가격에 부가되는 것이다.
즉석 쌀도 있다. 현미를 소비지 시장으로 유통시켜 소비자가 보는 앞에서 즉석 도정기를 통해 도정해주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쌀의 가격은 농민과 미곡종합처리장이 고품질 쌀을 생산하기 위해 투입한 노력과 시설비, 즉 생산비를 중심으로 미곡종합처리장이 가격을 제시한다. 그 다음은 시장의 몫이다. 소비지 시장 바이어들은 그 만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지, 가격 차별화 요소가 시장의 요구에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지 따져 보고 가격을 결정한다.
이러한 가격 발견 과정에서 소비자의 판단을 현혹시키려는 시도들은 철저하게 감시·감독되어야 한다. 쌀은 무게로 거래되는데 포장 단위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아 실제로는 비싼데 싸게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다른 제품과 비교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지난 7월20일 농협유통 하나로클럽 창동점의 쌀 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쌀 포장 단위를 조사한 결과 명품 양곡 코너에 5kg, 4kg, 3kg, 2kg, 1kg짜리 유기농 백미, 유기농 현미, 씻어나온 쌀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친환경 쌀 코너에는 700g, 1kg, 1.5kg, 2kg, 3kg, 3.5kg, 4kg, 4.5kg, 5kg, 7kg, 8kg, 9kg, 10kg 단위의 쌀 포대가 진열되어 있다.
물론 많은 제품은 4kg, 8kg, 10kg 포장 단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브랜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단위를 사용한다. 감독 기관은 적어도 포장 단위의 기준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수입 쌀은 국내 쌀 가격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특히 중저가 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수입 쌀은 미국쌀 1등품이 7월 말 현재 10만7천원 선에 소매상에 넘어간다. 중국산은 소매상 인도 가격이 11만4천원이다. 국내산 중저가미인 충청미의 쌀 소매상 인도 가격 14만8천원에 비해 3만4천~4만원 싸다. 미질은 국내 중저가 쌀보다 낫다는 평가이다. 서울 양재동 양곡도매시장 박용상 중도매인협회 회장은 “미국산은 이물질이 포함되는 등 관리에 신경을 덜 쓰는 반면 미질은 일정하고, 중국 쌀은 선적되는 배에 따라 미질이 들쭉날쭉하다”라고 말했다. 이들 수입 쌀은 주로 식당으로 판매되면서 국내 중저가미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가공용으로 반출되는 수입 쌀이 국내 쌀로 둔갑하면서 국내 중저가 쌀 가격을 더 떨어뜨리는 일도 있다. 가공용 쌀은 태국산 장립종 20%와 중국산 중단립종 80%를 혼합해 6만원(80kg)에 팔리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불법으로 수입된 찐쌀 등은 쌀의 색깔을 희게 만들기 위해 표백제를 사용한다. 이런 쌀은 일부 식당이나 김밥체인점 등에서 사용되면서 소비자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소비자들은 쌀 유통 과정에도 불만이 있다. 그 불만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포장지에 쓰인 글과 포장 내 쌀이 같은 것으로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안전 문제이고, 셋째는 쌀의 품질 문제이다. 쌀의 ‘신뢰’와 ‘안전’과 ‘품질’ 정보는 곧 미곡종합처리장의 품질 관리 문제이다.
신뢰 문제의 근간은 쌀의 원료, 즉 벼 시장에 대한 관리가 아직도 잘 안 되고 있다는 데 있다. 산지 벼 시장에는 품질을 확인할 수 없는 벼가 거래된다. 계약 재배는 미곡종합처리장과 농민이 계약해 재배하는 것이다. 산지, 품종, 재배, 건조, 저장, 가공, 상품, 유통 전과정의 품질 관리 상황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미곡종합처리장이 원료곡 구입처와 구입량, 상품량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물타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미곡종합처리장의 이익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계약 재배마저도 원료곡의 양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품질관리 과정에서 다른 쌀이 얼마든지 혼입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올바른 쌀 품질 정보를 원한다. 2년 전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쌀 품질에 대한 불신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은 적이 있다. 소비자들은 쌀의 포대에 기재되어 있는 정보와 내용물이 같은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유통 과정에서 ‘안전·품질’ 확보해야
쌀 포대는 1년에 한두 번 인쇄해 연중 사용한다. 도정할 때마다 쌀 품질평가를 해도 그 결과가 표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소비자들은 안전에 관심이 많다. 국내 쌀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지만, 폐광산 지역의 쌀에 기준 이상의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는 보도도 있다. 수입 농산물 안전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우리나라 농산물은 안전한가 하는 생각도 들게 마련이다.
최근 농림부는 소비자 중심의 행정을 펴나가고 있다. 소비자들이 문제 삼는 쌀의 신뢰·안전·품질의 개선을

 
위해 농림부는 ‘잘하고 있는 미곡종합처리장을 더욱 잘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다.
예컨대 농림부는 쌀 품질인증 제도를 폐지하고 우수농산물관리인증 제도(GAP)를 적용했다. GAP는 농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배 단계부터 수확 후 저장·가공·포장 단계까지 토양·수질 등의 환경과 쌀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중금속 또는 유해생물 등의 위해 요소를 관리하는 것이다.
GAP 인증 농산물은 의무적으로 이력 추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른바 ‘논에서 밥상까지’의 안전에 대한 이력을 제공하도록 한 것이다. 쌀 제품에는 이력 추적 고유번호가 주어진다. 소비자들은 쌀을 구입한 후 인터넷으로 고유번호 제품의 재배 내용과 미곡종합처리장의 안전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력 추적 관리 시스템은 안전뿐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것들을 반영해야 한다. 즉 신뢰 문제와 품질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을 갖춰야 한다. ‘원료곡을 혼입하지 않는다. 제대로 건조하고 저온 저장했다. 최종 쌀의 품질은 이러하다’라는 내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곡종합처리장의 원료곡 품질 검사 데이터와 구분 저장과 건조 온도 데이터, 저온 저장고 온·습도 관리 데이터, 원료곡 입출고 데이터, 쌀 품질평가 데이터 등이 준비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구입하기 전에 매장에서 모니터나 휴대전화를 통해 정보를 보려 한다. 상품을 구입한 후 집에 가서 정보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농림부의 이력 추적 관리 시스템은 아직은 이러한 시장의 요구 사항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미곡종합처리장은 이러한 내용을 다 갖춘 이력 추적 시스템을 적용해야 시장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김동철 한국식품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곡종합처리장에 꼭 필요한 정보가 없어서 마치 물류 창고 자료를 보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쌀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벼 재배 단계가 있다. 재배 단계에는 품종을 고르고 논을 갈고 비료를 뿌린다. 볍씨를 틔워서 어린모를 육묘하여 이것을 이앙한다. 비료를 주는 것과 병충해 방제와 물 관리 작업이 있다.

미곡종합처리장 관리 시스템도 점검을
벼는 수확된 후 1년 동안 저장해두고 필요한 때 쌀로 가공해 유통한다. 이를 위해 건조가 필수적이다. 농업 인구가 고령화되고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면서 건조의 많은 부분을 미곡종합처리장이 맡고 있다. 건조를 잘못하면 벼가 아무리 좋아도 좋은 쌀을 만들지 못한다. 건조는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어서 하는데 이 열풍 온도가 45℃를 넘어가면 죽는 벼가 많아진다. 열풍 온도가 높으면 건조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지만, 쌀에 금이 가는 동할미나 싸라기가 많이 생기고 밥에 끈기가 없이 푸석거린다. 그래서 건조 온도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모르는 미곡종합처리장은 없다. 그러나 건조되지 않은 벼가 마당에 쌓이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건조되지 않은 벼는 8시간 이상 그대로 두면 품질이 상한다.
건조 작업은 수확기에 한 달 이상 하루 24시간 계속된다. 이 과정이 너무 힘든 작업이어서 농협 직원이 미곡종합처리장 근무를 기피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음은 저장이다. 살아 있는 벼는 이듬해 3월부터 온도가 상승하면 호흡 등 생리 작용을 시작한다. 벼가 호흡하게 되면 양분이 소모되면서 쌀 무게가 감소한다. 벼의 호흡은 쌀의 밥맛이 떨어지도록 한다. 그래서 현재 미곡종합처리장들이 3월 이후 공급량을 저온 저장하는 것으로 바꾸고 있다. 저온 저장은 3월 이후 저장 온도를 평균 10℃ 정도의 냉풍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도정 과정인 현미부→백미부→선별부→포장을 거치면서 원료곡인 벼가 쌀 상품이 된다. 현미부는 벼 껍질을 벗겨 현미로 만드는 과정이고, 백미부는 현미를 마찰식 도정기 등을 사용해 백미로 만드는 것이다. 백미 과정에서 마찰열을 최소화하는 것이 미질 유지에 중요하다. 선별부는 싸라기, 색깔 있는 쌀 등을 골라내는 일이며 싸라기 선별의 경우 선별체 망의 간격이 중요하다. 선별체 간격에 따라 싸라기 함유율이 결정된다. 쌀에 묻은 쌀겨를 털어내고, 외관을 문질러서 윤기있게 만들거나 싸라기나 크기가 다른 쌀알을 골라내어 완전미를 만드는 등을 통해 쌀의 상품 가치를 높인다.
판매도 미곡종합처리장이 맡고 있다. 미곡종합처리장은 재배 이후 수집·건조·저장·도정·판매, 즉 수확 이후 모든 처리 과정을 맡고 있다. 물론 농민들이 생산하는 원료곡의 상태가 쌀 상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러나 농민은 원료곡의 품질 관리와 상품화 관리에 대해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이 과정이 재배 과정보다 더 중요하다. 미곡종합처리장이 쌀을 생산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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