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인증 마크 밥맛은 그거나 저거나
  • 노진섭 기자 ()
  • 승인 2007.08.0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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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인증 제도 유명무실…내년부터 폐지하기로
 

농림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품질을 인증하는 제품’‘○○시장 품질인증 A+’‘○○도지사 우수 농특산품’‘미곡종합처리장 인증품’‘자체 검사필 제품’‘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우수 브랜드 선정 제품’….
쌀 포대마다 붙어 있는 품질인증 표시와 함께 그럴듯한 표현들이 눈길을 끈다. 이런 표시는 소비자에게 쌀 품질이 우수할 것이라는 인식을 준다.
서울 양재동 농협유통 하나로클럽에서 쌀을 구입한 이천우씨(42)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품질인증을 많이 받은 쌀이 밥맛도 좋은 것이 아니냐. 그래서 품질인증 표시가 많이 붙어 있는 쌀을 구입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품질인증 표시가 쌀 품질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전국적으로 생산되는 쌀 품질이 과거와 달리 거의 비슷해졌기 때문에 품질인증 표시는 홍보 수단에 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가장 밥맛이 좋은 쌀은 어떤 것일까. 되도록 최근에 도정한 쌀을 구입하면 큰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농협 양곡유통센터 정대훈 바이어는 “밥맛은 쌀에 함유되어 있는 수분 함량에 따라 결정되므로 최근에 도정된 쌀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맛있는 쌀을 구입하는 요령”이라고 귀띔했다.
쌀 포대에 붙어 있는 품질인증 표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농림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품질인증 마크가 있다. 품(品)자 모양의 마크로 가장 공신력이 있는 표시이다. 도지사·시장·군수 등 지자체장이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쌀에 붙이는 품질인증 표시도 있다. 경기도의 G마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쌀을 저장·처리하는 미곡종합처리장의 인증마크도 있다. 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농림부와 공동으로 실시하는 ‘우수 브랜드 선정’ 표시도 있다. 게다가 생산자단체품평회의 표시, 자체 검사필, 친환경 인증 등도 난립해 있다.

공급자가 임의로 붙일 수 있는 것이 문제
이 가운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부여하는 품질인증 마크는 공신력이 있다. 단위 농협이나 개인 농가가 품질인증 신청을 하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등급·상품성·품종·산지·실사 등을 심사해 품자 마크와 인증번호를 부여한다. 품질인증 제도는 효율적인 쌀 관리와 품질 향상 등을 위해 정부가 1992년부터 시행해왔다. 그러나 전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쌀의 품질이 전체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에 품질인증의 의미가 희석되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은 2004년 5월과 10월에 전국 6백67개 매장에서 파는 4천2백여 개 쌀 제품에 대해 포장 양곡 표시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등급 표시를 한 제품의 92%에 해당하는 1천8백여 개 제품이 최고 등급인 ‘특등급’으로 조사되었다.
충남 서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유영만씨는 “품질인증은 말 그대로 쌀의 품질을 인증하는 제도로 시행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쌀 품질이 좋아지고 평준화되어 인증 자체의 의미가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품질인증을 붙이는 쌀도 많이 줄었다. 100개 쌀 브랜드 중 세 개 브랜드 정도가 이 마크를 붙이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안전성관리팀의 이연섭 농업사무관은 “전체 신청 건수의 3% 정도가 품질인증 마크를 붙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후 지자체가 해당 지역에서 생산한 쌀에 대해 공동 브랜드를 붙이면서 시장·도지사·군수 등 지자체장이 부여하는 품질인증 표시가 유행처럼 번졌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평가해 지자체장이 품질인증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평가보다는 해당 지역 쌀의 홍보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지자체마다 평가 기준이 있지만 지자체장이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인증하지 않을 리 없기 때문에 신뢰성에 의문 부호가 붙는다.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은 “그 지자체에서 생산된 쌀 인증을 외면할 지자체장이 있을지 의문이다. 또 여러 곳에서 생산된 쌀에 지자체가 공동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지자체장의 품질인증 마크를 붙인다. 여러 곳에서 생산한 쌀 품질이 다름에도 모두 우수 품질 표시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반입에서부터 선별, 계량, 품질검사, 건조, 저장, 도정을 거쳐 제품 출하와 판매, 부산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미곡의 모든 과정을 처리하는 미곡종합처리장의 마크도 있다. 이 마크도 쌀 품질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다만 설비가 비교적 허술한 개인 정미소가 아닌 설비가 잘 갖추어진 미곡종합처리장에서 도정했다는 의미이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미곡종합처리장 관계자는 “이 마크는 건조·저장·가공 등 설비를 잘 갖추고 있다는 표시이지 이것이 쌀 품질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5년 전부터 농림부와 공동으로 우수 브랜드를 선정하고 있다. 우수 브랜드로 선정된 쌀은 포대에 우수 브랜드로 선정되었다는 문구나 표시를 하고 홍보에 활용한다. 평가를 거쳐 매년 50여 개 브랜드 중 12개 브랜드를 선정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박인례 사무총장은 “품종·밥맛 등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상위 12개 브랜드를 선정한다. 또 매출 기준을 두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가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별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006년 기준 10억원 이상 매출을 이룬 브랜드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매출 자료가 없는 신규 브랜드나 소규모로 재배된 쌀은 품질이 좋아도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작황이 나쁜 해에 재배된 쌀 중에서도 12개 브랜드가 선정된다. 소비자 주혜령씨는 “12개 브랜드가 그 해 우수 품질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상위 12개를 무조건 우수 브랜드라고 선정하는 것은 소비자로서 혼란스럽다. 그해 작황이 좋지 않은 경우, 좋지 않은 품질의 쌀 중에서 12개 브랜드를 선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인증 표시, 의무 아닌 선택 사항
이러한 품질인증 표시 외에도 생산자단체품평회의 표시, 자체 검사필 등은 소비자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 품질이 좋은 쌀이라도 품질인증 표시는 없을 수 있다. 품질인증 표시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 선택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쌀 포대에는 여전히 각종 품질인증 표시가 붙어 있다. 쌀 생산자 또는 단위 농협은 자신들의 쌀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 품질인증 표시를 사용하고 있다.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쌀 포대 앞뒷면과 옆면까지 표시한다. 네 가지 이상의 품질인증 표시가 되어 있는 쌀 포대도 눈에 띈다. 딱히 홍보 수단이 없는 쌀 제품은 쌀 포대가 홍보 전단지인 셈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품질인증 마크, 도지사 추천특산물 지정, 미곡종합처리장 인증, 자체 검사필 등 여러 품질인증 표시를 포대에 붙인 충청남도의 ㅊ쌀. 이 쌀을 생산한 ㄱ농협 관계자는 “도지사, 미곡종합처리장, 자체 검사필은 쌀 품질과 무관하다. 홍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쌀 포대에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품질인증 표시가 홍보 효과는 있는 것일까. 서울 시내 할인점 두 곳에서 만난 소비자 20명 중 쌀 포대에 표시된 품질인증을 보고 쌀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2명에 불과했다. 지난 번에 구입했던 쌀을 다시 구입한다는 소비자가 대부분이었다.
쌀 브랜드를 바꾸어 구입한 적이 있다는 소비자도 품질인증 때문이 아니라 가격이나 입소문 때문이라고 했다. 쌀 품질보다 밥맛에 따라 쌀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쌀 품질 마크를 보고 구입한 적은 없다. 브랜드를 보고 계속 그 쌀을 찾거나 어쩌다 바꾸더라도 아는 사람이 추천해주면 바꾼다”라고 말했다.
쌀은 충동 구매 상품이 아니라 목적 구매 상품이므로 더욱 그렇다는 것이 쌀 유통업자의 설명이다. 농협유통 하나로클럽의 이정숙 양곡부장은 “품질인증 때문에 먹던 쌀을 바꾸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쌀은 필수품이므로 목적구매를 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가격·입소문·밥맛으로 결정
오히려 품질인증보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품질을 개선한 브랜드가 인기를 얻고 있다. 품질인증 표시는 없지만 소리 소문 없이 소비자의 입소문을 타는 브랜드가 있다. 충남 서산농협이 생산하고 있는 ‘STR’이라는

 
쌀은 품질인증을 받지 않았지만 다른 브랜드에 비해 인기가 좋다. 농협유통의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만 한 달 새 2천 포대가 팔렸다. 다른 브랜드의 두 배이다. 서산농협 관계자는 “간척지에서 재배된 쌀은 5~10년차가 가장 맛있을 때인데 STR이 현재 5년차에 접어 들어 밥맛이 좋다. 그러면서도 가격이 경기미에 비해 싸기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잘 팔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쌀은 지난해 20kg짜리 30만 포대, 약 100억원어치가 팔렸다고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매달 약 2만 포대가 팔리고 있다. 이 쌀은 농협에서만 판매된다. 홍보를 위해서라도 품질인증을 받고 개인 도매상을 통해 유통망을 늘리면 더 많이 판매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서산농협 관계자는 “품질인증을 받으면 홍보에 다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품질과 무관한 품질인증에 매달리기보다 농민이 생산한 쌀을 제값에 파는 데 주력했다. 또 개인 도매상에 판매를 맡기면 덤핑 처리되는 경우가 있다. 소비자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 농협을 통해서만 판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STR은 ‘서산 톱 라이스’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브랜드이다.
전북 김제에 있는 백구농협이 내놓은 ‘옛바다이야기’ 쌀도 품질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다. 그럼에도 이 브랜드 역시 다른 제품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이 팔리고 있다. 농협유통 하나로클럽의 이원일 홍보팀장은 “20kg짜리 한 포대에 3만8천8백원 하는 이 쌀은 농협유통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만 한 달새 2천 포대가 팔리는 효자 브랜드이다. 다른 브랜드가 평균 1천 포대 팔리는 것에 비해 두 배 정도 많이 팔린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품질인증 제도가 유명무실해지자 정부는 이 제도를 2008년부터 폐지할 계획이다. 대신 2006년부터 우수농산물인증(good agricultural practices, GAP)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쌀 관리에 중점을 두었던 품질인증 제도에 사후 관리와 안전성을 강화한 제도이다.

공신력 있는 인증 제도로 통폐합해야
GAP는 생산 단계부터 수확 후 포장 단계까지 농약·중금속·미생물 등 농식품 위해 요소를 관리하는 제도이다. 1백10개 항목의 관리 기준에 농산물 이력추적관리제(Traceability)까지 의무화하고 있다.
이력추적관리제는 농약·중금속 등 유해 물질이 허용 기준을 초과해 검출되었을 때, 역추적을 통해 신속한 원인 규명 및 조처를 하기 위한 것이다. GAP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서 기준이 마련되었으며 현재 유럽·미국·중국 등 농산물 주요 수출국들이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2013년까지 쌀·과실·채소 생산량의 10% 이상을 GAP로 관리할 계획이다.
농림부 소비안전과 조동근 사무관은 “1992년부터 시행해온 품질인증 등 여러 인증제도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고 너무 난립해 있어 통폐합할 필요에 따라 GAP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 품질인증이 관리에 초점을 둔 것이라면 GAP는 안정성에 초점을 둔 제도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자체장이 부여하는 품질인증 등 기존 표시는 계속 사용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각종 품질인증 표시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림부와 농협 관계자들은 “품질인증이 너무 난립되어 정부의 품질인증 제도마저 희석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를 통폐합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품질인증이 권위를 갖춰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전국적으로 판매되는 쌀 브랜드는 8백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농림부 소득관리과 이재갑 사무관은 “전국에 있는 미곡종합처리장은 2백80여 곳이다. 한 곳에서 평균 3개 브랜드를 생산하므로 8백여 개 브랜드가 넘는다”라고 말했다.
쌀 가격은 20kg을 기준으로 최저 3만6천8백원에서 최고 6만2천원까지 약 두 배 차이가 난다. 농협 양곡유통센터 정대훈 바이어는 “밥 한 공기 가격은 1백50원, 비싸야 2백50원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쌀값이 비싼 것은 아니다. 또 브랜드별 쌀 가격 차이도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 경기미는 고급 쌀이고 충청도 이남 쌀은 하품 쌀로 여기던 인식도 많이 사라졌다. 쌀을 가격으로 선택하기보다는 도정 일자가 최근인 쌀을 고르는 것이 밥맛이 좋은 쌀을 고르는 요령이다. 또 전국적으로 쌀 품질이 비슷하므로 선호하는 지역 쌀을 선택하면 좋다”라고 말했다. 

 

“도정 후 보름 안에 드세요”

쌀을 도정해서 저장하면 점점 수분량이 떨어져 맛이 덜하므로 도정한 지 15일 이내의 쌀로 소량씩 사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또 쌀을 고를 때 쌀알의 색이 희고 깨끗하며, 반질반질 광택이 나면서 투명한 것이 좋다. 타원형으로 길이가 짧은 것이 좋고, 쌀알에 금이 가지 않아야 한다. 또 쌀알에 심복백(흰 부분)이 없고, 변색미나 착색미가 섞이지 않은 것을 고르면 좋다.

1. 가공 일자 최근 가공일자가 찍힌 쌀을 고른다. 아무리 브랜드가 좋아도 가공된 지 오래되면 밥맛이 떨어진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쌀 수분 함량이 15~17% 일 때가 가장 밥맛이 좋다. 보통 15일, 늦어도 30일 이내 쌀이 좋다. 
2. 적은 용량 20kg짜리보다는 10kg짜리 쌀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오래 두면 쌀은 수분을 잃어 밥맛이 떨어진다.
3. 완전미 쌀 모양이 둥글고 절미가 없는 완전미를 고른다.
4. 선호 지역 소비자가 선호하는 지역의 쌀을 구입하면 후회가 없다. 
5. 중간 가격 최고가와 최저가 제품의 중간 가격 제품을 고르면 가장 무난하다. 
6. 품종 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품종을 확인한다. 혼합 품종보다 단일 품종이 좋다. 
7. 보관 쌀을 골랐다면 보관에도 유의해야 한다. 신선한 곳에 보관하되 햇빛과 습기를 피해야 좋은 밥맛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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