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반’하다 만만한 세금 축낼라
  • 유근원 기자 ()
  • 승인 2007.08.1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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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반값 정책’, 실효성 검증 없이 ‘속도전’…“표심 의식한 공세” 비판도

정부의 ‘반값 정책’ 논리는 간단하다. 시장 참여자들을 늘려 경쟁 체제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가격을 끌어내리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업계에서는 물론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가격을 내리기 위해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들게 해서 경쟁을 부추겼다가 생겨날 부작용을 보지 못한 즉흥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서둘러 반값 정책을 내세우며 부채질하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일련의 반값 정책은 임기 말이면 흔히 등장하는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다. 김성배 숭실대 행정학 교수는 “정치권의 반값 아파트 주장들은 국민 다수의 부담으로 일부 계층에 특혜를 주는 정책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제시한 정책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관행의 정착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한나라당의 공세를 들 수 있다. 지난해부터 한나라당이 내놓고 있는 민생 정책은 정부가 반값 정책을 서두르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나라당은 쟁점을 선점한다는 입장에서 일찌감치 반값 아파트 공급과 반값 등록금을 당론으로 정하고 나섰다. 모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취지를 앞세운 민생 정책들이다. 정부가 반값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야당에 더 이상 선수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도라고도 볼 수 있다.

 

새삼스럽지 않은 반값 아파트의 귀환
논란이 되고 있는 반값 아파트 정책 제안은 지난해 말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선수를 쳤다. 이에 질세라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도 비슷한 주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반값 아파트의 원조는 고 정주영 회장이다. 1992년 대선 때 통일국민당 후보였던 정회장이 내건 공약의 하나였다. 개발 이익을 배제하고 인허가 비용과 건설 원가를 절감하고 도시 조성비를 국가가 부담하면 당시의 45% 가격으로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올해 정부는 ‘반값 아파트’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논의되었던 ‘반값 아파트 모델’을 실제로 선보일 예정이다. 오는 10월 초 경기 군포 부곡택지지구에 분양되는 아파트는 그동안 나온 반값 아파트의 실험판임에 틀림없다. 이 아파트는 분양 방식도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방식을 따른다. 토지임대부 분양을 한나라당이 밀고 환매조건부를 열린우리당이 제안하자 정부는 두 개를 한꺼번에 도입한 것이다.

 
토지임대부는 기존의 아파트 분양 방식과 달리, 토지는 사업 주체인 국가나 공공 기관이 소유한 채 건물만 팔겠다는 방식이다. 환매조건부는 토지와 건물을 모두 분양하지만 일정 기간 공공 기관이 아닌 제삼자에게 팔지 못하고 나중에 공공 기관에 되파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현실성을 따지기는 쉽지 않다.
토지임대부 분양은 분양가에 땅값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시세의 50% 수준으로 분양이 가능하지만 막대한 토지 매입비를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국가 부담은 말하나마나 세금이다. 실효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반값 분양에 국가의 막대한 세금을 쓰자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환매조건부 분양은 시세 차익을 차단하고 토지 매입비를 국가가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집값이 떨어졌을 경우 보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반값 골프장 정책은 중산층과 농민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는 노림수를 깔고 있다. 골프장 이용료를 반값으로 끌어내리겠다는 전략은 골프를 즐기려는 중산층의 골프 수요를 겨냥했다.
현재 골프장 이용료(그린피)는 지역과 시설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주말 10만~24만원(18홀 기준) 선이다. 서울 인근의 경우는 주말에 20만원 안팎이 보통이다. 여기에 캐디피와 카트 이용료로 4만~5만원이 더 든다. 주말에 서울 인근에서 골프를 한번 치려면 1인당 25만원 정도는 들기 때문에 부담이 작지 않다. 계획대로라면 10만원 선에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저가형 골프장이 등장하는 것이다. 골프장 공급 방안은 크게 세 갈래이다. 시설 규제는 풀고 골프장은 늘리며, 세금은 내리겠다는 것이다.

농지 전용 방안에 관계 부처도 난색

 
경작 환경이 열악한 지방 농지를 대중 골프장으로 만든다는 복안에는 농민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가 녹아 있다. 정부는 농민이 농지를 현물로 출자하고 개발 업자가 골프장을 지은 뒤 골프장 사업자가 이를 위탁·운영하는 것을 허용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관계 부처는 난색을 표명했다.
농지를 보유한 농민 중 어느 정도나 골프장 경영상의 위험을 떠안으면서 출자할 의사가 있는지, 전국 농지에 골프장은 몇 개나 지을 수 있는지 수급 조사도 없었다. 더구나 수도권의 공급 부족, 지방의 공급 과잉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골프장 사용료의 절반을 차지하는 세금 문제가 임기 말에 쉽게 풀리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반값 골프장 방안은 지난 8월6일 통계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표한 한국의 서비스 수지 적자 추이 통계 결과와도 관계가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서비스 수지 적자 규모는 독일·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올 상반기에도 한국의 서비스 수지 적자는 이미 1백억 달러를 넘어섰다.
골프장경영협회의 관계자는 “반값 골프장이 해외 골프 여행 행렬을 부분적으로 막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인 대안은 아니다. 국내 골프장 이용료가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선 골프장에 대한 중과세 문제가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손재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정책실장은 “휴경지가 분포된 지역과 골프장 수요 지역이 얼마나 맞아 떨어질지 의문이다. 이미 수도권 인근 지역은 비농민의 농지 소유가 50%가 넘기 때문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현물 출자할 수 있는 여력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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